[1일 현장체험] ‘한복 만들기’ 도전

고운빛 풍성한 옷감 한땀한땀… 예를 지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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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 전통문화원에 전달될 인형에 한복을 입히고 있다.
사각사각한 비단 스치는 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설렌다. 설날이면 입던 한복이 생각나서다.

 

시골에 살던 어릴 적, 동생과 같이 빨간색 한복을 맞춰 입고 마당에서 장난감 칼을 가지고 놀고 있으면

 

큰아버지와 고모들, 형, 누나, 동생들이 내려왔다.

오래간만에 친척들을 만난다는 즐거움과 한복을 입었다는 두근거림이 동시에 겹쳐 잊을 수 없는 순간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시내를 돌아다니거나 장을 보려고 시장을 찾을 때 한복 집이 보이면 눈길이 가고 걸음을 잠시 멈추게 된다. 오색빛깔로 화려함을 뽐내는 한복에서부터 중후하고 기품있는 멋을 드러내는 한복까지 모두 아름답다.

 

고운 자태의 녹의홍상(綠衣紅裳)을 볼 때면 결혼 후 신부가 한복을 입고 아침밥을 차려주는 꿈도 꿔본다. 장가갈 때가 된 모양이다.

 

다가오는 설, 한복 때문에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 없어 한복연구가로서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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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만들기에 마지막 과정인 고름을 달기위해 바느질을 하고 있다.
■ 기품과 멋을 입는 우리옷

지난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에 있는 ㈔우리옷제대로입기협회를 찾았다. 한복 만들기뿐 아니라 우리옷의 의미와 바르게 입는 법을 알고자 한복연구가인 박창숙 혼품 대표가 회장으로 있는 ㈔우리옷제대로입기협회를 선택했다. 

한복은 모양과 형태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한복 디자이너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연구가라는 표현을 쓴다. 옷을 입는 사람에게 어떤 색이 어울리고 어떤 소재를 써야 하는지, 어떤 수를 놓고 어떤 무늬를 찍을 것인지 연구하기 때문이다.

 

협회 입구에 도착했을 때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박 대표를 만날 수 있었다. 협회에서 운영하는 카페를 지나 한 층 내려가니 박 대표의 연구실이 있었다. 연구실에는 다양한 옷감과 한복들이 가득했다. 한복 만들기에 앞서 한복에 대해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박 대표는 “일반적으로 한복이라고 하면 바지와 치마, 저고리를 생각하는데 우리 선조는 때와 지위에 따라서 격식을 차려 옷을 갖춰 입었다”며 “우리옷을 제대로 아는 것이 한복 만들기에 시작”이라고 설명했다.

 

풍성한 옷감으로 온몸을 감싸게 한 한복은 예의범절을 중시한 우리 조상의 유교적 도덕관이 숨어 있다. 색에 배합에서도 시각적인 조화에만 국한하지 않고 사신(四神) 사상과 음양오행의 이치를 따랐다. 특히 한복은 앞 중심이 트여 있어 안감이 보이기 때문에 안감과 겉감의 색깔 배합에도 신중을 기했다.

 

한복은 기본적으로 정예복, 준예복, 약예복, 기본예복 등으로 나뉘고 관혼상제(冠婚喪祭)에 따라서도 옷이 달라졌다. 정예복으로 남자는 도포, 여자는 당의를 입는다.

 

도포는 소매가 넓은 것이 특징이고 옷의 뒤가 터져 있어 말을 탈 때 편하도록 만들었다. 당의는 사대부가 여성의 예복으로 소매 끝에 흰 천으로 덧대는 특징이 있다. 준예복으로 남자는 답호를 여자는 장유를 입었고 약예복은 남녀가 모두 배자를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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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의 소재와 명칭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답호는 소매가 없고 겉에 띠를 둘러 입는 것이 특징이고 장유는 긴 저고리라는 의미로 저고리 위에 덧입는 옷이다.

 

 배자는 답호와 마찬가지로 소매가 없는 조끼 형태지만 답호보다는 길이가 짧아 활동하기 편하다. 기본예복은 우리가 알고 있는 저고리, 바지, 치마로 이뤄진 한복을 의미한다. 외출 때는 남녀가 모두 두루마기를 입었다.

 

관례복으로 남자는 난삼을 여자는 장배자를 착용했다. 결혼식 때는 영화나 드라마의 혼례장면에서 볼 수 있는 청단령(남자), 녹원삼(여자)을 입었다. 상중에는 참최복을, 제사 때는 천담복을 입었다.

 

■ 옷감 선택부터 신중… 色을 입는 우리옷

한복에 대해 배우고 나서 본격적인 한복 만들기를 시작했다. 한복 만들기에 첫째는 바로 옷감 고르기다. 한복의 옷감은 계절에 따라서 봄ㆍ가을, 여름 비단과 여름 복(伏) 중에 입는 모시, 겨울에 입는 양단 총 4가지로 나뉜다.

 

 옷감을 고른 후에는 옷을 입을 사람에 맞춰 색깔을 고르는 작업을 한다. 한복은 색을 입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의 생김새와 낯빛에 따라 색을 고르는 작업이 가장 중요하다고 박 대표는 강조했다.

 

그는 “요즘 사람들은 한복을 화려하게만 입으려고 하는데 사람의 얼굴색에 따라서 어울리는 옷이 다르다”며 “색깔의 선택에 따라 사람의 기품이 달라지기 때문에 색 선택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복의 색깔은 크게 붉은색, 푸른색, 갈색 3종류로 나뉘었다. 나에게 어울리는 색은 노랑이 섞인 따뜻한 붉은색이었다.

 

설명을 들은 후 노랑이 섞인 붉은색 배자를 입고 작업을 시작했다. 소재와 색 선택 후에는 모든 한복 만들기 과정이 같았다. 

우선은 치수를 재고 옷감을 재단한다. 재단한 후에는 남자는 품을 넓게 잡아 바지를 만들고 여자는 치마 윗부분에 주름을 잡아 치맛말기를 한 후 바느질을 하면 된다.

 

저고리는 고름이 달릴 가슴 쪽 앞길과 등 쪽 뒷길을 만들고 아름다운 곡선을 드러내는 배래를 바느질해 소매를 붙인다. 그다음에는 깃과 흰 동정을 달고 끝으로 고름을 달면 한복이 완성된다.

 

가장 어려웠던 작업은 바느질이었다. 가위로 재단한 후에 바느질을 잘 못하면 옷감이 울어 비뚤배뚤한 모습이 됐기 때문이다.

 

한 땀 한 땀 꼼꼼히 바느질을 해야 해 재봉틀로 순식간에 만들어내는 양장과는 차이가 컸다. 비단이 겹쳐진 고름을 달 때는 엄지손가락이 뾰족한 바늘 머리에 눌려 금세 빨개졌다. 바늘이 잘 들어가지 않았고 중간에 실이 엉키는 일도 생겨 실을 모두 잘라내고 다시 바느질을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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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준예복인 답호를 입고 있는 모습
■ 잊혀져가는 우리옷 자랑스러운 명맥… 세계로 뻗어나가다

한복을 만들면서 잠시 쉬는 동안 박 대표가 사용하던 가위를 봤다.

 

한복 업계 입문할 때부터 쓴 가위라고 하니 30년은 된 듯하다. 그는 종로를 지나가던 길에 우연히 주단(紬緞, 명주와 비단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가게를 봤고 그때 비단 색감에 매료돼 한복 업계에 입문하게 됐다고 귀띔해줬다. 검은색이었던 가위 손잡이는 이미 칠이 다 벗겨져 가위 날과 같은 색깔이 됐다.

요즘은 전동 가위 등 편한 제품이 많이 있지만, 오랫동안 손에 익은 가위는 이것 하나뿐이어서 여전히 이 가위만 쓴다고 한다. 국민의 눈에서 멀어진 한복을 다시 마음속에 밀어 넣으려는 한복 명장의 고집과 우직함을 느낄 수 있었다.

 

반평생을 한복 연구가로 지낸 그가 가진 가장 큰 불만은 사람들이 우리옷을 입지 않고 우리옷에 대해 잘 모른다는 점이다. 그래서 한복을 입는 사람이 드물고, 입더라도 격식에 맞춰 입지 않는 일이 많은 문제를 해결, 한복을 제대로 입는 문화를 만들고자 우리옷제대로입기협회를 지난 2012년에 만들었다.

 

지금 가장 중점을 두는 우리옷 알리기 활동은 전 세계 28개국에 있는 전통문화원에 한복을 전달하는 일이다. 이미 지난해 필리핀, 벨기에, 스페인, 중국 북경 등 4곳의 전통문화원에 한복을 전달했다. 올해는 3월 20일 카자흐스탄을 시작으로 인도네시아와 일본 오사카, 중국 상해에 한복을 전달할 예정이다. 또 일반 사람들이 쉽게 한복에 대해서 알고 제대로 우리옷을 입도록 하려고 기준서도 제작했다.

기준서에는 언제 어떤 한복을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 정보를 담았다. 그림으로 한복을 입은 모습을 표현했고 한복 입는 순서부터 옷감의 소재, 한복 부분에 대한 명칭 설명도 자세히 알려준다. 쉽게 틀리는 고름 매는 방법과 대님 매는 법도 그림으로 설명해서 따라하기 쉽다.

 

한복 만들기를 마친 후 완성된 채 걸려 있는 한복을 바라보니 한 층 더 아름다워 보였다. 한복을 만드는 과정에 들어가는 노력과 수고에 대해서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박 대표는 “우리옷, 한복은 알면 알수록 아름다운 옷인데 요즘 사람들은 한복에 대해 관심이 없다”며 “한복을 더 사랑해주고 자주 입어주기를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이정현기자

사진=김시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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