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오는 길목, 호접란 꽃눈이 틔었습니다
연분홍 치마 두르고 사뿐~ 사랑을 부르는 꽃말처럼 참말같이
겨울이 녹고, 봄이 깨어나면, 흙은 헐거워진다.부드럽고, 유해진다. 가벼워진 흙을 머리에 이고 가장 먼저 봄을 증명하는 건 ‘꽃’이다.
저 먼 바다 건너 남쪽부터, 봄볕을 따라 천천히 밀려온다. 그러면 겨우내 움츠렸던 아이들의 웃음도, 연인들의 속삭임도 활짝 핀 꽃망울처럼 지천으로 퍼진다. 그 봄을 먼저 만나러, 경기도 화성의 호접란 농장을 찾았다. 그러고 보니, 꽃말도 ‘사랑이 날아온다’다.
입춘(立春)이 지났지만, 찬 기운은 가시지 않았다. 제법 쌀쌀했다. 칼바람도 여전했다. ‘꽁꽁’ 동여매고 집을 나섰다.
이 추위에 ‘화훼농장 체험은 시기상조 아닐까?’도 싶었다. 수원에서 40분을 달려, 화성 팔탄면에 소재한 화훼농장 ‘세제난원’에 도착했다. 주로 관상용, 선물용인 ‘호접란’을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농가다.
생각보다 규모가 있었다. 일일이 세어보니 길게 연결된 비닐하우스만 10여 동에 달했다. 하우스 이곳저곳을 탐색(?)하는데, 농장의 대표 박정근씨(55)가 문을 열고 나와 기자를 맞았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꽃과 함께 해온 탓인지 표정에서 온화함이 묻어났다. 본격적인 체험에 앞서 전반적인 프로세스를 알아야 한다며 기자를 하우스가 아닌 사무실로 데리고 갔다.
박 대표의 사무실에는 책들로 가득했다. 호접란에 관한 것이라면 뭐든 있었다. 국적도 언어도 다양했다. 단순하고 소박해 보이는 ‘난’(蘭) 하나에도 그만큼의 이야기가 있었다.
“꽃에 대해 관심을 가지다 보면, 자연스레 다른 나라의 언어나 문화에도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어요. 특히, 호접란의 경우 주로 대만이나 네덜란드, 뉴질랜드에서 전량 종묘를 수입해 쓰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죠.”
하나 둘, 틔는 꽃망울처럼 박 대표의 하우스도 하나 둘 늘었다. 화성 팔탄면으로 온 것은 1992년 일이다. 실패한 호접란 농장을 인수받아 세제난원을 차렸다.
고비용 탓에 초반 꿈도 꾸지 못했던 온ㆍ습도 조절기부터, 태양광 개폐기까지 자동화설비도 갖췄다. 그러면서 출하량도 크게 늘었다. 연간 30만 본. 서울 양재 화훼공판장을 거쳐 전국 각지로 판매되는 세제난원 호접란 숫자다. 일상에서 한번쯤은 지나쳤겠다.
■ 분갈이 쯤이야? 생육에 직접적 영향… 꼼꼼함은 필수!
말보다, 몸으로 부딪쳐 보는 게 좋을 것 같아 박 대표를 재촉했다. 막상 하우스 안으로 들어가 보니 규모가 더 놀라웠다. 각양각색 수십만 본의 꽃들이 각자의 크기에 맞는 화분에서 성장하고 있었다. 3월 첫날, 공휴일임에도, 6~7명의 직원들이 각자 맡은 위치에서 역할하고 있었다.
하우스 안은 생각보다 더웠다. 개화 이전까지 생육과정에서 26~32℃를 유지해야 하다 보니, 바깥과 기온차가 컸다. 땀이 삐질삐질 났다. 아침, 날이 춥다며 히트텍에 와이셔츠, 니트에 점퍼까지 챙겨 입고 온 수고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기자에게 처음 주어진 일은 분갈이였다. 꽃 생장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일. 사람으로 치면, 크기에 맞는 살 집을 골라주는 일이다. 어렸을 때 꽃을 키운 경험이 있어 능숙치는 않아도 분갈이 정도는 쉽게 생각했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쉽지 않았다.
일단 재료부터 달랐다. 호접란 분갈이는 흙을 쓰지 않는다. ‘수태’라고 불리는 이끼를 사용한다. 국내에서는 재배되지 않아 칠레산을 쓴다. 이끼 자체 특성 덕분에 습도조절의 장점이 있다.
분갈이 포인트는 적당량의 수태를 끊어다 뿌리를 감싸는 일이다. 뿌리에 맞춰 걸러야 한다. 또 뿌리와 화분사이 수태가 꼼꼼하게 들어갈 수 있도록 꼭꼭 눌러 담아야 한다. 말은 쉽지만, 힘 조절이 어려웠다. 수태를 넣는 과정에 뿌리가 손상될 수 있는 탓이다. 거기에 수태가 잎 위로 올라와서도 안 된다. 균에 감염돼 자칫 병이 들 수도 있다.
이런저런 주의를 듣고 나니, 분갈이가 더 힘들어졌다. 하나하나 생명인 탓에 허투루 할 수 없었다. 그러다 뿌리가 다치면 죄책감이 들고…. 보다 못한 박 대표가 작업을 멈추게 했다. 겉으로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속으론 안심했다.
“분갈이가 쉬워보이지만, 사실 숙달된 사람도 실수를 연발하는 게 분갈입니다. 집도 어떻게 리모델링을 하느냐에 따라 삶의 만족도가 달라지는 것처럼, 꼼꼼하게 하지 않으면 생육에도 영향을 미치죠.”
생육온실에서 16개월 정도 있으면, 호접란은 싹 틔울 준비를 한다. 성장의 조짐은 유심히 보지 않으면 관찰할 수 없다.
잎 아래 부분에서 좁쌀 크기의 ‘싹눈’의 튀어나올 조짐을 보이면 꽃대가 나올 준비를 끝냈다는 의미다. 꽃대는 꽃이 매달리는 줄기다. 이 줄기를 따라 비로소 호접란 꽃송이가 하나, 둘 매달리게 된다.
“간혹, 생장단계가 끝나지 않았는데 꽃눈이 튀어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른 꽃보다 성장이 빠른 게 아니라, 어딘가 아프다는 의미예요. 종족 번식의 본능이 있다 보니, 죽기 전에 꽃을 피워야겠다는 생각으로 꽃눈을 틔우는 겁니다. 어찌 보면 안타깝죠. 대체로 그런 묘는 얼마가지 않아 죽고 맙니다. 다른 묘에도 영향을 미치기 전에 걸러내는 게 중요해요.”
종묘 전체의 10%가 비정상적 생육으로 걸러진다. 다른 종류의 꽃들에 비해 불량은 적은 편이지만, 30만본 중 3만본가량이 걸러진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다음으로 한 일은 꽃대에 지주를 연결하는 일이다. 꽃망울이 잘 맺힐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교정 작업이다. 대략 꽃대가 10cm정도 튀어나오면 지주를 단다. 꽃대 마디마다 하나씩 세 부분을 연결한다. 이것도 노하우가 필요하다. 우선 꽃대 마디를 찾아야 하고, 적당한 힘으로 연결해야 한다. 너무 헐겁거나 빡빡해도 생장에 악영향을 준다.
직원의 도움으로 몇 본의 호접란에 지주를 연결했다. 분갈이보다는 수월했다. 하지만 역시 힘 조절. 제대로 조였다 싶었어도 스르륵 흘러내렸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간신히 화분 몇 개를 성공했다. 식물이나 사람이나 누군가를 키워내는 건 힘들다.
마지막 일은 살수(撒水)였다. 물주기는 쉽겠지 해지만, 역시였다. 물 온도(23~24℃)는 기계가 자동 조절하지만, 살수는 수작업이다. 일일이 꽃 상태를 보고, 적당량 살수해야 해 완전 자동화는 힘들다. 때문에 다른 작업보다 숙련된 기술과 촉(?)을 필요로 한다.
살수 작업에는 단순 수분 공급만 하는 건 아니다. 물에 비료도 첨가해야 한다. 작업은 기계가 한다.
별도의 비료탱크에서 pH(산성도), EC(전기전도) 등을 고려해 적정 수준의 비료를 동시 살수한다. 수치는 일일이 육안으로 해야한다. 작업이 까다로운 이유다.
이렇게 20~22개월의 과정이 지나면, 출하가 가능한 완성본이 만들어진다. 보통 4~5송이를 출하 기준으로 삼는다. 가격은 보통 7~8천원 대, 경기가 좋지 않으면 5천원 대로 폭락하기도 한다. 종묘로 들여올 때 1천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7~8배가량 가치가 상승하지만, 2년여의 생육과정이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고수익은 아니다.
그래도 안정적이라는 게 박 대표의 설명이다. “농업이라는 것이 다 그렇습니다. 서서히 성장하는 거죠. 서두르면 반드시 실패하는 게 농삽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관심을 기울여야 해요. 그게 관건이죠.” 박 대표는 호접란 농장을 가업으로 생각한다. 그만큼의 비전도 갖고 있다.
수입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종자부터 개화, 출하, 연구까지 가능한 기술과 시설, 인력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박 대표의 아들, 병욱(26), 병윤(24)에 호접란 농업을 가르치는 것도 이 같은 의지의 표출이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11월에는 화훼분야에서 두 번째, 호접란 분야에서는 첫 번째로 ‘마이스터’(명인) 자격을 받기도 했다.
“어느 나라, 어느 역사를 막론하고 농업을 천대하는 사회는 영속할 수 없습니다. 종자가 국가 경쟁력이 되는 세계 흐름 속에서 제가 하고 있는 영역만큼은 최고가 되는 게 지금 목푭니다.” 박 대표의 봄은 아직이다.
박광수기자
사진=전형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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