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토마토… 새파란 모종시절 금지옥엽 길러 신선먹거리 변신
꽃들과 열매, 그 모든 것들이 새롭게 돋아나려고 안간힘을 쓰는 계절, 봄이 돌아왔다. 그 봄을 반기듯 농가마다 한해살이를 위한 손길이 분주하다.
손마다 정성과 땀방울이 깃든다. 우리의 삶을 더욱 건강하게 해주는 신선한 채소와 과일은 겨울을 이겨내고 어떻게 봄을 맞이하고 있을까. 먹거리의 탄생기와 성장기가 궁금해졌다.
농가로 옮겨지기 전 첫 생애를 보내는 모종을 만나러 도시를 잠시 떠나 이천 육묘장으로 향했다. 시인 릴케도 ‘갖가지의 기적을 일으키는 봄을 그대에게 보이리라. 봄은 숲에서 사는 것, 도시에는 오지 않네’라고 하지 않았던가.
■ 건강한 모종 키워 농가 보급하는 ‘육묘장’
꽃샘추위가 물러난 지난 16일 오전 10시 이천시 모가면 소사리 CS육묘장(대표 신언철)에 도착했다. 이곳은 화훼 모종 전문 육묘장으로 출발했지만, 현재는 사계절 내내 채소 모종도 전문적으로 생산하고 있다.
육묘장은 종자를 들여와 싹을 틔우고 건강한 모종으로 성장시켜 농가에 보급한다. 모종 농사가 ‘반농사’라고 할 만큼 농사의 기초를 담당한다.
CS육묘장은 봄에는 토마토, 오이, 가지, 호박, 수박 등 채소와 엽채류를 생산하고 여름에는 꽃도라지 등 화훼 모종을 기른다. 화훼를 생산하는 여름에는 1만3천200㎡, 겨울에는 8천250㎡의 규모로 육묘 작업을 한다. 연간 주문량은 1천500만본 이상, 단골은 300여 농가에 달한다.
농사를 막 준비하는 시기이다 보니 CS 육묘장도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자연과 도시에서의 계절이 봄이라면, 이곳의 계절은 사실 여름이다. 봄철 영농을 준비하는 농가에 모종을 납품하려면 항상 두 달 먼저 계절을 앞서야 하기 때문이다.
이곳 역시 올봄 농가에 제때 모종을 출하하려고 지난 1월부터 종자를 심고, 정성스럽게 가꿨다고 한다.
바쁜 일정에 초보 작업자의 방문이 반가울 리 만무했을 테지만, 신 대표는 기자를 반갑게 맞았다.
육묘업에 종사한 지 20년째에 접어든 신 대표는 지난 2013년 경기도 농업전문경영인으로 선정돼 지역에서 기술 개발 등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신 대표는 작업에 앞서 중요한 사항을 몇 가지 일렀다. “육묘는 신경 쓸 게 많아요. 공산품이 아닌 탓에 정해진 틀대로 제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날씨 등 변화무쌍한 자연의 섭리를 따르다 보면 출하 시기가 제때 맞지 않을 때도 있거든요.
농가가 필요한 시기에 건강한 모종을 제때 납품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집에서 기르는 화분 하나 제대로 건사해본 적 없었던 지라 괜한 긴장감이 몰려왔다. 이런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신 대표가 한 마디 던졌다. “기술도 중요하지만, 사람의 정성이 반이에요. 부담 갖지 말고 잘 돌봐주세요.”
작업을 위해 들어선 3천300㎡의 유리온실은 적정 온도를 조절할 수 있게 시스템이 작동돼 있다. 이곳의 비닐하우스와 유리온실은 지열 시스템과 보과등이 설치돼 있어 날씨 변수에도 무리 없이 모종을 제 날짜에 출하할 수 있다.
유리온실은 바깥과는 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따뜻한 실내 온기와 함께 신선한 흙내음이 코를 간지럽게 했다. 조그마한 상판 위에 발아한 모종들은 이제 막 태어난 갓난아기처럼 흙의 찬기운을 이겨내고 파릇파릇한 얼굴을 내밀었다. 오이, 호박, 배추, 고추, 토마토 등 없는 게 없다.
모종판은 모종이 자란 주기별로 크기가 달랐다. 배추는 25일, 오이는 30~35일, 토마토는 55~65일, 꽃 모종은 120일가량 이곳에서 유아기를 보내다가 농가에서 새로운 성장을 위해 출하된다. 엽채류나 채소, 과일별로 품종도 여러 가지다 보니 제각각 상판마다 주문 농가의 이름과 종자를 심은 날, 출하 예정일 등이 적혀 있다.
이후 물 주기와 비료 주기 작업이 이뤄지고 출하할 모종을 선별하는 작업도 진행된다. 물을 줄 때도 매뉴얼이 있다. 고추는 20℃ 정도의 미지근한 물을 못자리 밑까지 스며들도록 충분히 주고, 주기별 물의 양도 달라야 한다.
육묘 작업은 크게 4번의 과정으로 나뉜다. 종자를 심은 이후 성장 주기에 맞춰 옮겨심고, 건강한 뿌리로 접목 과정을 거친 이후 각각 온도에 맞는 하우스로 이동했다가 농가로 출하된다. 첫 번째 도전은 옮겨심기였다.
그린맛 품종의 고추 모종을 모판흙이 고르게 담긴 육묘 상자 한 칸에 한 포기씩 세심하고 꼼꼼하게 똑바로 심기를 했다. 옮겨심기는 모종의 밑 부분을 들어내 옮길 상판의 흙을 한 숟가락 뜨고 나서 한가운데에 심어 흙으로 다시 단단히 덮어줘야 했다. ‘이 정도쯤이야’하고 생각했지만, 착오였다.
모종은 한가운데가 아닌 모서리에 자꾸 뿌리가 박혔다. 단순해 보이지만, 섬세함이 필요한 작업이다. 종자를 옮겨 심으면, 다시 온도에 맞게 다른 하우스로 이동해야 한다. 수백 개의 모종판을 옮기는 작업도 수십 번이다. 이 시기의 생육상태에 따라 이후 개화시기, 꽃의 수, 과실의 형질 등이 결정되는 만큼 어느 것 하나 세심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 농사 기초 닦는 육묘산업… 기술인력 육성 애로
바쁜 일정 탓에 작업은 쉴 새 없었다. 하지만, 식물과 함께한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은 고요해졌다. 식물을 가다듬고 옮기고 물을 주는 작업자들의 손길도 재빨랐지만, 표정은 여유롭고 온화했다. 다음으로, 진행된 작업은 접목이다.
보통 모종은 발아된 이후 2주 뒤 접목 작업이 진행된다. 토마토 모종 뿌리 부분을 칼로 잘라내 미리 심어진 접목 전용 뿌리에 맞대어 집게로 고정했다. 서툰 솜씨에 접목되는 부분이 일치하지 않거나 집게가 후두두 흘러내렸다.
역시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접목은 사람으로 치면 수술 작업이나 마찬가지다 보니 회복 시간도 필요하다. 접목 작업을 마치면 24시간 실내온도가 27도로 유지되는 접목 탈착실에 옮긴다. 탈착실에는 수분이 빠지지 않도록 비닐을 씌어둔 모종이 즐비했다.
이후 일주일 뒤 23도의 하우스로 옮겨져 일주일, 또 회복이 되면 출하 직전 17~18도의 온도가 유지되는 곳에서 1주일을 보내고 나서 농가로 가게 된다. 선별 작업도 중요하다. 트레이를 꼼꼼하게 살펴보고, 작은 묘가 있다면 다른 묘로 교체하고, 뿌리를 잘 살펴 건강한지 살펴본다. 선별된 건강한 모종만이 농가로 출하된다.
신 대표는 외국인 근로자 11명, 한국인 근로자 4명과 함께 육묘장를 꾸려나가고 있다. 그는 “육묘장은 식물에 대한 이해가 필요해 농업에 관심이 있고 전문적인 기술을 훈련할 인력이 필요하다”면서 “젊은 친구들이 이 분야에도 관심을 두고 많은 도전을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신 대표는 육묘업이 여전히 좋다고 한다. 시민들을 위해 ㈔한국육묘산업연합회와 함께 채소 모종을 무료로 나누어 주는 행사를 열기도 했다. 신 대표는 “육묘업은 농사의 기초를 닦는 작업”이라며 “사람들에게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농사의 반이 시작되는 곳이고, 건강한 생명을 가꾼다는 보람도 크다”고 말했다. 육묘장에서 묻혀 온 봄 냄새가 온종일 온몸을 감쌌다.
정자연기자
사진=전형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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