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현장체험] 선인장도 죽이는 여자의 플로리스트 도전기

온종일 향기나는 씨름… 꽃집의 아가씨는 힘세요

14-1.jpg
▲ 꽃집 앞 거리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작은 화분들도 매일 닦고 재배치해줘야 한다.
나는 선인장도 죽이는 여자다. 3년 전 임신 사실을 알자마자 작은 선인장 화분을 하나 샀더랬다.

 

‘태아가 건강하게 세상에 나오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난생 처음 식물 하나 잘 키워보자’는 어마어마한 의미를 담아 직접 고른 화분이었다. 

그러나 한달을 채우기 전에 그 선인장이 시들시들 말라 죽어버렸다. 쉽게 포기하고, 버렸다. 꽃다발과 화분을 선물받으면 자연스레 그 때 기억이 떠올라 줄곧 미안했다. 플로리스트의 세계를 체험해보겠다는 결심은 무지한 주인을 만나 생명을 다한 선인장에 대한 뒤늦은 반성이었다.

 

■ 우아한 플로리스트?… NO! 강인한 체력 필수
경기도청 후문에 위치한 꽃집 ‘아리아팜’(ARIA FARM)에서 플로리스트 송윤정씨를 만났다. 참 여리여리하다. 꽃보다 아름다운 오늘의 스승에게 인사를 건네자 미리 준비한 작업복 앞치마를 건넨다.

“숙련된 사람들은 입지 않아도 되는데 초보는 물이나 흙을 옷에 많이 묻혀서 입어야 해요.” 예쁜 작업복이 썩 마음에 든다. 머릿속으로 그렸던 꽃처럼 우아한 일일체험이 가능할 것 같다. 즐거운 기분으로 앞치마를 두르고 ‘무엇을 할까요’ 눈으로 묻자, 자동차 문과 트렁크를 열어 젖힌다. 이날 새벽 서울 꽃시장에서 스승에게 ‘간택’된 꽃과 각종 소품이 한가득이다.

“이것부터 옮겨주세요. 부딪히면 꽃이 상하니까 조심해서요. 생각보다 무거울거예요.” 그래봤자 꽃 아닌가. 헌데 몇 차례 옮기고 나니 손목이 시큰거린다. 10여 단 이상을 한 덩어리로 묶어 놓아 예상 밖으로 무거웠다. 마르고 아담한 송 플로리스트는 버거웠을 것 같다. 

 

14-2.jpg
▲ 꽃시장에서 사온 꽃단을 수작업하기 위해 옮기고 있다.
“플로리스트는 체력이 좋아야 해요. 일주일에 2~3일은 새벽이나 밤 늦게 꽃생화시장이랑 분화시장을 돌고 일일이 차로 다 옮기거든요.”

 

이날 새벽에도 그는 서울의 꽃시장 3곳 정도를 돌면서 상태 좋은 꽃과 각종 포장 소품을 100만원 이상 구매했다. 눈으로 일일이 보고 직접 고르는 것이 그의 원칙이다. 따져야 할 것도 많다. 색의 선명도, 꽃 봉우리의 크기와 단단함, 꽃송이의 비율 등이다. 게다가 갈 때마다 수입종을 비롯해 매번 다른 꽃들을 만난다. 전문 지식을 배우는 것에서 나아가 수 년간 경험과 지혜를 쌓아야만 바로 선택 가능하다.

“꽃집을 차리고 싶어하는 여성분이 많아요. 체계적으로 배워야만 꽃을 제대로 알 수 있고, 디자인과 미학을 토대로 나만의 작업을 해야 손님의 행복과 신뢰를 얻을 수 있어요.” 

 

송씨는 환경디자인을 전공하고 영국 McQ Flower Course를 수료했다. 특히 국내에서 보기 드물게 수 많은 전문 자격증을 취득했다. 독일 IHK 국가공인 플로리스트와 한국 국가공인 화훼장식기사ㆍ조경기사ㆍ컬러리스트기사 등이다.

 

 이처럼 화려한 스펙의 스승이 처음부터 끝까지 강조한 것은 하나다. ‘꽃잎 하나까지도 소중히 다룰 것’. 조심하려니 긴장하게 되고, 신문지에 싸인 꽃단을 옮기는 다리와 손목 등 온 몸에 힘이 들어갔다. 꽃처럼 우아한 일일체험은 ‘글렀다.’

14-3.jpg
▲ 이파리의 상한 부분까지 다듬어줘야 더 이상 썩는 것을 막을 수 있다

■ 잎은 섬세하게… 상한 꽃은 단호하게…
곧 5월이다. 꽃의 계절이고 꽃집의 성수기다. 어버이날, 스승의날, 부부의날, 로즈데이까지 꽃을 선물할 기념일이 가득하다.

 

그래서인지 이날 가게 안으로 열심히 나른 꽃의 대부분 이 카네이션이었다. 나르기에 이어 두 번째 임무는 카네이션 잎 다듬기였다. 꽃송이로부터 아래로 한 뼘 길이까지의 잎만 남기고 그 아래 10여개 잎을 손으로 하나씩 떼어내야 했다.

 

“잎이 많으면 물을 필요없는 곳에 뺏기거든요. 꽃의 컨디션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려면 다듬기 작업이 기본이죠.”

말은 쉬운데, 녹록지 않다. 꽃대가 연약해서 자칫 방심하면 부러지기 일쑤고 꽃잎도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게다가 꽃대가 길기 때문에 일어선 채 작업, 수십단이다보니 꼬박한 두 시간 서서 일해야 한다. 한 시간 꼬박 카네이션 잎 따기를 하다보니, 몸이 먼저 안다. 플로리스트에게 체력이 왜필수인지….

카네이션과 수국, 장미 등 모두 다듬은 꽃을 종류별로 잘 추스려 물이 가득 담긴 큰 화병에 넣는다. 그 전에 꽃의 싱싱함을 좀 더 오래 유지하기 위한 또 하나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물 속에 꽃대 끝을 넣은 후 대각선으로 자르는 것이다. 허공에서 꽃대를 자르면 그 안으로 공기가 들어가버리기 때문에 물 속에 담근 상태로 자른다. 가위질이 끝난 꽃대 안으로 방울방울 물이 쏠려 들어가는 것이 보인다. 이렇게 섬세한 보살핌이 존재했던 것이구나.

 

새삼 그동안 선물받아긴 시간 감상했던 꽃들, 그 뒤에 숨겨져 있던 플로리스트들의 정성이 느껴진다. 헌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꽃님들이 들어가 쉴 수 있는 화병을 닦고 물을 갈아줘야 한다. 화병 무게도 꽤 나가는데 물까지 버리고 새로 담고 옮기고, 장난이 아니다. 족히 30여 개는 된다. 이걸 매일 해야 한다.

 

화병 안에 꽃잎이나 이파리 하나도 떨어지면 안된다. 부패 요인이다. “조금이라도 안좋은 꽃이 있으면, 그 주변의 꽃까지 덩달아 나쁜 꽃이 돼요. 참 신기하죠. 과감하게 좋지 않은 꽃은 빼야 해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더니, 꽃의 세계도 다를 것 없구나 싶다.

14-4.jpg
▲ 꽃대 하나의 끝을 대각선으로 가위질하는 것에도 섬세함이 필요하다.
■ 식물에 진심을 담아라… 꽃처럼 아름다운 마음가짐
작업을 하는 도중 꽃에 이끌려 들어오는 손님도 응대해야 한다. 중간 중간 장갑을 벗고 손님을 맞이하는데, 기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인사 정도였다. 

너무 많은 꽃 종류와 가격, 관리 방법 등

을 외울 수 없는 탓이다. 아리아팜에는 생화만 60여 종에 화분과 각종 꽃꽃이 된 포장 상품까지 더하면 200여 종 이상이 새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귀동냥에 만족하는데, 재미있는 식물도 많다.

“이건 미세먼지 잡는 공중 식물인데 요즘 잘 팔리죠. 허공에 걸어놓으면 돼요. 얘가 작약이에요. 지금이 가장 싸게 살 수 있어요. 국내산이거든요. 철지나면 네덜란드나 외국에서 수입하기 때문에 한 송이에 3만원까지 올라요.”

꽃 한 송이, 화분 하나하나, 모두 ‘처방전’도 다르다. ‘랜디’는 흙의 촉촉함을 따져 물을 주고 꽃이 졌을 때에는 2~3일에 한 번씩 준다. 다육이는 적당히 빛을 받아야 삐쭉 웃자라지 않는다. 다 외울수도 적을수도 없는 지식을 전수받고 있던 중, 중년 남성 한 명이 꽃 포장을 주문했다.

 

전체적인 균형과 색의 조화 등을 고려해 하나씩 다시 적당한 길이로 다듬어 꽂는다. 당연히 기자가 할 수 있는 일은 크게 없었다. 옆에서 알려준 위치에서 꽃대를 잘랐다. 이리 두근거리는 가위질이라니. 누군가 받을 선물이라 생각하니, 좀 더 긴장된다.

송 플로리스트가 그런 기자의 마음을 알아챘는지 웃으면서 따뜻한 말을 건넸다. “꽃은 마음을 전하는 선물이잖아요. 저는 손님들이 누구한테 어떤 의미로 선물하는 지 물어보고 그 상대방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꽃을 만져요. 그 마음이 꽃에 담겨서 분위기와 대상에 맞는 모습으로 완성되는 것 같아요. 그러니, 마음 편하게 자르세요.”

참 마음도 꽃처럼 예쁜 사람이다. 조금 편안한 마음으로 가위질을 하니 사뭇 다른 느낌이다. 기분 좋게 꽃바구니를 들고 나가는 손님의 뒷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그 행복감 그대로 가게 안에 기다리는 식물들의 잎을 닦고, 상한 부분을 찾아 자르고, 보기 좋게 상품을 재배치하는 등 끝없이 자잘한 일을 한다. 이제 퇴근할 시간이다.

송 플로리스트가 가방을 정리하는 기자에게 꽃가게 안에서도 ‘특급호텔’(온습도를 자동 조절하는 꽃냉장고)에 모셔져 있던 작약과 작은 화병 하나를 포장해 줬다. 많이 깨닫고 행복했는데, 우아한 꽃까지 ‘일당’이 참 후하다.

이제 그 꽃은 특급호텔을 떠나 종이먼지 풀풀 날리는 신문사 책상 위에 놓였다. 내 반드시 너만큼은 그 말라비틀어진 선인장 신세로 만들지 않으리라. 

류설아기자

사진=김시범기자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