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아파트 숲이 된 수원 정자ㆍ천천지구는 1998년만 하더라도 드넓은 논밭이 자리하고 있었다. 봄에는 쑥을 캐고, 여름에는 논두렁에 들어가 첨벙첨벙 뛰놀고, 가을에는 화서역을 내달리는 칙칙폭폭 기차 소리와 귀뚜라미의 울음소리를 자장가 삼고, 겨울에는 쥐불을 놓던 논밭은 어린이들의 놀이터였다. 당시 그 주변 초등학생들의 주된 일과는 학교가 끝나고 논밭으로 달려가 곤충을 잡는 일이었다. 벼메뚜기와 방아깨비, 잠자리는 기본이고 논에 들어가 물방개와 소금쟁이를 잡아 여자아이들 눈앞에서 흔들며 놀려대곤 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논두렁에 빨간색 깃발이 꼽히고 출입을 금지하는 끈이 둘러지면서 아이들은 자연스레 곤충과도 멀어졌다. 그렇게 곤충을 잊고 산 지 어느덧 20여년, 최근 차세대 먹거리로 ‘곤충식’이 뜬다는 뉴스를 접하며 자연스레 옛날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어디서 메뚜기를 구워먹으면 맛있다는 소리를 주워듣고 콩잎에 있던 메뚜기를 잡아 성냥으로 직화구이(?)하던 그때가 말이다. 철부지 시절과 다르게 지금의 곤충식은 철저한 관리 하에 키워진 일부 품종으로 한정돼 영양은 물론 위생적으로도 안전하다. 특히 곤충은 적은 공간에서 많은 양을 기를 수 있고, 환경오염을 유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미래 산업으로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식용 곤충 사육사에 도전하기로 한 하루, 살짝 들뜬 마음으로 영농조합법인 ‘아이벅스캠프’를 찾았다.
■무궁무진한 ‘곤충’의 발전 가능성
시흥의 한적한 동네에 위치한 아이벅스캠프 하우스에 들어가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박제된 다양한 곤충이었다. 어린 학생들의 곤충체험 학습을 위해 곤충에 대한 설명도 곳곳에 적혀 있었다. 식사를 막 마치고 나온 전윤석 아이벅스캠프 이사와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12년간 곤충과 동고동락해온 전 이사는 먼저 곤충 예찬론을 펼쳤다. “어린이들의 정서 발달에 곤충만 한 것이 또 없습니다. 살아있는 생명을 바라보면서 자연친화적으로 살아가는 곤충을 보면 마음도 푸근해지죠. 정서적 효과뿐 아니라 이제는 미래 산업으로 곤충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식용, 사료로서의 가치뿐 아니라 화장품 원료나 의학분야로의 발전 가능성도 무궁무진합니다.” 최근 뜨고 있는 곤충식도 그렇다. 오래전부터 우리 조상들은 구황식품이자 건강식품으로 곤충을 섭취해 왔다. 전 이사는 “이제는 먹거리가 풍부해져서 곤충을 잘 먹지 않지만 곤충은 오랫동안 대체식품으로의 역할을 수행해 왔습니다”라며 “적은 공간에서 가축보다 환경오염 유발 요인도 적게 키울 수 있어 미래에는 식용 곤충이 각광을 받을 거라 생각합니다”라고 힘줘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일반식품으로 지정된 대표적인 식용 곤충으로는 ‘고소애’를 꼽을 수 있다. 고소애의 영문 이름인 ‘밀웜(Mealworm)’도 직역하면 ‘식사애벌레’다. 갈색거저리의 애벌레인 밀웜은 해외에서는 레스토랑에서 볼 수 있는 영양식으로, 고단백을 자랑해 에너지바나 과자에 첨가되기도 한다. 전 이사로부터 이 같은 ‘곤충 강의’를 듣고 난 뒤 본격적인 곤충 사육을 위해 사육실로 향했다.
■꾸물꾸물 ‘귀요미’들과의 첫 만남
전 이사를 따라 하우스 한개 동 크기의 사육실로 들어가자 왠지 모르게 몸이 움찔거렸다. 엄지손톱만 한 애벌레 수천마리가 꾸물거린다는 생각에 먼저 떠오른 것은 ‘징그럽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문을 열고 만난 밀웜은 요즘 말로 ‘귀요미’였다! 트레이에 나눠 사육되고 있는 2㎝ 정도 길이의 밀웜들은 반짝반짝 윤기를 자랑하며 마치 갓난아기가 손가락을 꼬물거리듯 힘찬 움직임을 보였다.
밀웜은 통풍이 잘되고 습하지 않은 환경에서 24~28도의 온도만 맞춰주면 잘 자란다. 먹이로는 수분이 많은 채소를 주면 된다. 오늘 할 일은 먹이를 깔아주고 애벌레에서 번데기로 성장한 유충을 선별하는 일이다. 밀웜이 담긴 트레이에 조심스럽게 케일을 깔고,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번데기 선별 작업에 나섰다. 눈으로만 봐도 수천마리에 달하는 밀웜 사이에 하얗게 변한 번데기들이 눈에 띄었다. 아무 생각 없이 번데기를 골라내고 있던 찰나, 전 이사의 말에 눈이 번쩍 띄었다. “밀웜이 번데기로 성장하는데만 최소 7~8번에서 많게는 16번까지 탈피를 반복합니다. 껍질을 벗어내는 고통을 그만큼 감당하고 나서야 성충이 될 준비를 하는 것이죠” 그저 먹는 곤충이라 쉽게만 생각했던 손길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아이벅스캠프는 직접 식용 곤충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곤충 산업 창업자들을 위한 ‘종자 곤충’을 보급하는 역할을 한다. 쉽게 생각하면 식물의 씨앗을 키워내는 일이다. 그만큼 우수한 품종의 종자를 키워내고 선별해야만 품질이 우수한 곤충들을 생산할 수 있다. 그래서 밀웜 자체를 판매하기보다는 이 밀웜을 갈색거저리로 성장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밀웜을 키우는데 많은 공간이나 먹이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만큼 세심한 관리도 필요합니다. 식용으로 이용되는 만큼 위생이나 환경 관리는 필수적이죠.” 전 이사의 말에 곤충 사육도 쉬운 일이 절대 아님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거름이 되는 곤충 배설물, “버릴 게 하나도 없네”
밀웜 다음으로 만난 곤충은 장수풍뎅이 애벌레였다. 언뜻 보면 굼벵이와 흡사하지만 굼벵이보다는 4~5배 큰 크기를 자랑한다. 플라스틱 상자에는 갈색 톱밥이 가득 들어 있었다. 하나를 번쩍 들어 선반에 쏟자 꾸물꾸물 거리는 흰색 애벌레들이 반갑게 인사했다. 뭐가 그리 부끄러운지 톱밥 안으로 몸을 숨기는 애벌레들을 집어 한 자리에 잠깐 모아놨다. 이번에 할 일은 ‘먹이갈이’ 작업이다. 장수풍뎅이 애벌레들은 톱밥을 먹고산다. 그만큼 양질의 톱밥을 항상 제공해야 한다. 지금 있는 톱밥에는 애벌레들의 동그란 배설물이 많이 낀 상태. 1등급 참나무를 갈아 영양소와 배합, 발효시킨 톱밥을 새로 애벌레 집에 담았다.
그럼 기존의 톱밥은 어떻게 할까? 전 이사는 “고영양 거름으로 사용된다”고 설명했다. 좋은 참나무를 발효시켜 만든 톱밥에다 곤충의 배설물이 더해져 양질의 거름이 된다는 것이다. 그만큼 중요한 것이 양질의 먹이다. 사육실 뒤편으로 가자 1등급 참나무로 만든 톱밥이 그득 쌓여 있었다. 포대 하나를 들어 올리려니 족히 쌀 한포대는 되는 무게였다. 배합기계에 톱밥을 쏟고 영업비밀(?)인 여러 가지 친환경 재료를 배합해 솎아준다. 이런 게 만든 먹이는 발효실로 옮겨 숙성시킨다.
일련의 사육 과정을 겪으면서 곤충산업은 ‘친환경 산업’이라는 말이 새삼 떠올랐다. 사육실의 크기는 채 66㎡(20평)도 되지 않았지만 수천~수만마리의 곤충이 이곳에서 자라고 있다. 그만큼 넓은 공간이 필요하지 않다. 먹이도 채소와 톱밥 등 모두 자연에서 나온다. 먹고 난 배설물은 친환경 거름으로 사용된다. 이쯤 되면 정말 버릴 게 하나도 없다.
■직접 먹어보니…‘고소하네!’
잠깐이나마 곤충 사육을 체험하고, 드디어 대망의 시식 시간. 볶은 밀웜을 손에 한 움큼 쥐어 입에 털어 넣자 입에서 고소한 기운이 퍼졌다. 밀웜을 왜 ‘고소애’라고 이름을 붙였는지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식감은 건새우와 비슷했지만 크기가 더 작아 먹는데 불편함이 없었다. 곤충 특유의 고소한 맛에 반해버리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넋을 잃고 계속 주워 먹다 보니 어느새 한 봉지 정도 분량이 사라졌다. 문득 이를 요리에 첨가한다면 곤충을 먹는다는 시각적인 충격도 줄어들고, 음식의 풍미를 더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온라인 쇼핑몰에 가보면 건조된 밀웜 판매가 늘고 있다. 고소한 맛에 반한 이들의 수요가 늘고 있다는 증거일 테다. 그렇지만 모든 먹거리가 그렇듯 그 안에는 농부들의 노력이 서려 있다. 미래 먹거리 산업의 발전을 위해 오늘도 구슬땀을 흘리는 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또 한편으로는 기대감이 든다. 곤충, 어디까지 발전할까. 어린 시절 함께 놀던 곤충의 새로운 변화를 주목해본다.
이관주기자
사진=김시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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