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구장 맥주보이 일일체험에 나선 조철오 기자가 수원 케이티위즈파크에서 관중에게 맥주를 판매하고 있다.
‘딱!’ ‘안타~’ ‘와~’
kt 위즈 소속 박기혁 선수가 두산 베어스의 에이스 유희관 선수를 상대로 안타를 쳤다. 중전 적시타였다. 선취점을 올린 건 kt였다.
kt가 상승분위기를 타기 시작한 3회, 다음 타석에 오정복 선수가 들어섰다. 이번 상승세를 놓치면 안 될 것을 직감한 kt 팬들은 자리에 서서 주먹을 불끈 쥐고 ‘오정복!’ 이름을 목놓아 외쳐댔다. 상당한 긴장감이 관중석을 맴돌았다.
덩달아 관중들의 목이 갑자기 타기 시작한 것도 아마 이때쯤이었을 것이다. “시원한 생맥주 있습니다” 갈증을 호소하던 관중들 사이로, 그들의 목을 축이게 해줄 한 명의 맥주보이가 관중 사이사이를 구세주처럼 파고들었다.
관중들은 사막에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크게 기뻐하며 여기저기서 “여기 생맥주 한잔만 달라!”라고 애원하듯 맥주보이를 불러대기 시작했다. 10분 사이에 맥주 8잔을 팔았다.
돈을 받고 맥주를 파는 거래였으나 이곳에서 시원한 생맥주의 값어치는 그보다 셀 수 없이 높았다. 그리고 곧바로 터진 오정복선수의 중전안타와 박경수 선수의 3점 홈런.
kt를 응원하는 관중들의 갈증이 완전히 해소되는 순간이었다.
▲ 기자가 맥주를 팔기전 주의할 점을 교육 받고 있다.
기자는 8일 kt위즈와 두산베어스 경기가 있는 수원시 kt위즈파크를 찾아 ‘야구장 맥주보이’를 했다. 최근 정부가 “야구장에서 맥주의 이동식 판매(맥주보이)가 주세법 위반으로 볼 수 있다”며 맥주보이를 규제 한다고 발표했었다가 야구팬들의 거센 반발로 호되게 혼이 나자 부랴부랴 허용하겠다고 입장을 바꿨을 만큼, 맥주보이는 야구장 내에서 관중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존재다.
맥주보이는 야구장 운영 측에서 선정된 외주 업체가 운영한다. 시원함을 위해 영상 2도 냉장고에 평상시 맥주를 보관하고 그 시원함이 관중들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한 시간 이내에 한 번씩 맥주통을 냉장고에서 교체해 간다. 또 맥주의 참맛을 유지하고자 경기 당일에 팔지 못한 맥주의 경우 전량 폐기처분한다. 이 같은 정성을 들인 맥주를 맥주보이는 15㎏ 무게의 맥주통을 등에 짊어진 채 관객들 사이 속으로 들어간다.
맥주보이의 역할은 간단하다. 한 손에 빈 맥주잔을 들고 천천히 걷기만 해도 관중들이 알아서 “여기요~”라고 맥주보이를 불러댄다. 그리고 잔 가득 맥주를 채우고 이를 건넨다. 그리고 이를 받은 관중은 마시면 된다. 이렇게 맥주보이 한 명당 파는 맥주는 100~200잔 정도 된다. 주말같이 관중이 구름같이 몰리는 경기에는 최대 250잔까지도 판적도 있다. kt 위즈파크안에 맥주보이가 5~7명이니 이들이 준 맥주를 마시는 사람이 어림잡아 계산해도 경기당 평균 1천명은 족히 넘는다는 의미다.
▲ 야구장 맥주보이 일일체험에 나선 조철오 기자가 수원 케이티위즈파크에서 관중에게 맥주를 판매하고 있다.
기자도 수원토박이 인지라 수원을 연고로 하는 kt 위즈 팬이다. 하지만, 이날만큼은 공정한 맥주보이의 사명감을 다하고자 두산 팬들이 모여 응원하는 곳도 역시 함께 챙겼다. 원정 응원석에 모여 있는 두산팬들은 생각보다 이날 경기가 제대로 풀리지 않자 전반적으로 표정이 어두웠다. 답답한 마음에 목이 탈만도 하다.
그러던 5회 초 갑자기 두산 쪽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닉 에반스 선수와 김재환 선수의 연속 우전안타로 점수를 낼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다. 반등의 기회는 맥주보이들에게 또다른 판매의 기회다. 맥주보이 역시 함께 분주하다. 다른 곳에서 팔던 맥주보이들도 두산 원정석으로 합류, 맥주를 원하는 이들을 찾고자 매의 눈으로 관중의 표정을 훑어댔다.
보통 관중은 경기장을 바라보지만 맥주보이는 정 반대로 경기장을 등진 채 관중들을 향한 채 쳐다봐야 한다. 만약 경기에 한눈을 팔고 털레털레 경기장 내부를 걷다가는 목이 타 맥주를 찾는 이의 소리를 들을 수 없어서다. 관중들의 환호성이 맥주보이를 부르는 이의 소리를 쉽게 묻히게 하는것도 맥주보이가 매의 눈으로 관중들을 봐야 하는 또 다른 이유기도 하다.
이후 허경민선수의 적시 2루타 등으로 2점을 내는 데 성공한 두산을 두고 팬들은 신이 난 듯 맥주보이를 찾아댔다. 맥주를 조심스럽게 따르는 맥주보이를 지켜보던 관중은 1초라도 더 먼저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싶었는지 설레는 마음이 앞서 엉덩이를 들썩였다. 한 손에는 맥주잔을, 다른 한손에는 주먹을 불끈 쥔 채 ‘역전해보자’는 의지를 다졌다.
이렇게 한 바퀴 돌다 보니 생각보다 체력소모가 무척 컸다. 15㎏의 맥주통을 짊어지고 관중석 곳곳을 누비는데다 그 과정에서 맥주 원하는 이를 정확히 찾는 집중력까지…. 생각보다 고된 일과다.
맥주보이 운영자는 “사람들이 흔히 ‘맥주보이는 야구경기도 보면서 일을 해 편하고 재밌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큰 오산”이라며 “일본이나 미국의 경우 맥주‘걸’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하던데 우리나라도 맥주걸을 고용해 이를 운영하려면 맥주통의 무게를 줄이던가 하는 식의 대책 마련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그래도 맥주를 시원하게 마셔주는 이들이 있고 함성으로 응원하는 이들의 기운을 받을 수 있어 피로감이 금세 회복된다”고 맥주보이로서의 자부심을 드러냈다.
함께 일을 하던 맥주보이 동료들에게 관중들이 맥주를 가장 많이 찾을 때가 언제인지를 묻자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을 때”, “상대에게 호되게 당하고 있을 때”, “경기 흐름이 지지부진할 때” 등이라고 제각각 답했다. 종합해 풀이하면 상황 구분없이 아무 때나 맥주를 원한다는 뜻이다. 그러한 맥주보이를 두고 정부가 규제한다고 처음 발표했을 때 나왔던 거센 반발은 당연했다.
▲ 야구장 맥주보이 일일체험에 나선 조철오 기자가 수원 케이티위즈파크에서 관중에게 맥주를 판매하고 있다.
정부가 규제하겠다고 KBO에 통보한 날이 20대 국회의원선거일(4월13일) 직전인 4월11일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정부의 졸속행정에 화가 난 야구팬들이 투표를 통해 정부의 무능함을 강하게 질타한 것이 아니었을까라는 합리적 의심까지 들었다. 현장에서 기자는 당시 여당의 선거참패 요인 중 하나를 맥주보이 규제로 판단했을 만큼 야구팬들에게 맥주보이의 인기는 대단했다.
사실 맥주보이도 사람인지라 개인마다 응원하는 야구팀이 하나씩 있다. 한 맥주보이 동료는 “나는 기아 타이거스 팬”이라며 “전라도 광주에서 멀리 원정 온 같은 팀 팬에게는 측은한 마음에 맥주를 한 방울이라도 더 따라주려 한다”고 귀띔했다.
이날 경기는 kt가 두산을 5대4로 이겼다. 이날 6명의 맥주보이는 술을 팔았다기보다 승리한 팀 팬들에게 기쁨의 축배(祝杯)를, 진 팀 팬들에게 아쉬움의 고배(苦杯)를 건넨 것이 정확한 표현이겠다.
그리고 이를 받은 팬들이 건넨 한 잔당 3천원은 맥줏값을 지급했다기 보다 무거운 맥주통을 짊어지고 경기장 곳곳을 누빈 맥주보이의 수고에 대한 팁이 아니었을까 싶다. 조만간 맥주보이와 함께 맥주걸까지 야구장에서 만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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