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현지는…
지난 6월 말 유럽연합(EU)의 탈퇴를 두고 진행된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Brexit)’를 결정하면서부터다. 거리로는 8천800㎞, 시차만 8시간(서머타임 적용) 나는 영국의 결정에 우리나라 경제는 요동쳤다. 주가와 환율이 롤러코스터를 탔고, 기업들은 영국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역사에 남을 한 장면을 바라보며 우리는 ‘글로벌 시대’라는 말을 새삼 체감할 수 있었다.
런던 최대 번화가 중 하나인 ‘피카딜리 서커스(Piccadilly Circus)’에는 런던 내 유일한 광고 전광판이 있다.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를 본따 만든 이 전광판에는 맥도날드와 코카콜라 등 글로벌 기업들 사이에서 국내 기업으로서는 ‘유이’하게 삼성과 현대자동차가 광고를 게재한다. 브렉시트 국민투표 당시 치열한 선거운동이 펼쳐지기도 했던 이곳은 현재 안정을 되찾았다. 이관주기자
■ 조용해진 트라팔가 광장…겉은 안정 되찾아
우리나라에 충무공 이순신이 있다면 영국에는 넬슨 제독이 있다. 프랑스의 영웅 나폴레옹의 영국 침공을 ‘트라팔가 해전’을 통해 좌절시킨 주인공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조성된 트라팔가 광장에는 당시 넬슨이 탑승했던 기함 ‘빅토리호’의 돛 높이와 같은 55m 기둥 위해 영불해협을 바라보는 넬슨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광장 뒤편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렘브란트, 모네, 고흐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돼 있는 영국 국립미술관(National Gallary)도 있어 빅밴, 타워브리지, 대영박물관 등과 더불어 대표적인 런던의 관광지이기도 하다.
관광객들에게는 첫 손 꼽히는 관광지이지만, 런던 시민에게 트라팔가 광장은 주요 집회장소다. 우리나라의 광화문 광장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지난 6월28일 브렉시트 반대를 외치는 5만여명의 군중이 운집한 곳도 바로 트라팔가 광장이었다.
앞서 23일 열린 브렉시트 국민투표 결과에서 찬성이 결정되자 시민들이 자발적인 대규모 집회를 연 것이다. 브렉시트 투표에서 6대 4로 반대 의견이 우세했던 런던지역의 성난 민심은 빗줄기 속에도 식을 줄 몰랐다. 집회 인원은 광장 앞 도로와 상점가까지 가득찼고, 이들의 목소리는 외신을 통해 이역만리 우리나라까지 생생하게 전달됐다.
그러던 영국은 어느새 안정을 되찾고 있었다. 브렉시트 투표가 끝난 지 꼬박 한 달이 되던 7월23일, 트라팔가 광장은 당시의 뜨거웠던 함성을 뒤로하고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이곳에서는 브렉시트 반대를 외치는 그 어떠한 모습도 볼 수 없었다.
휴가철을 맞아 광장을 찾은 관광객들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고, 한편에서는 ‘런던 버스킹 페스티벌’을 알리는 노란 현수막과 함께 미국에서 온 버스킹 그룹의 공연이 한창이었다.
트라팔가 광장 관광 안내원 카터씨(65)는 “2주 전만 하더라도 토요일이나 일요일에는 간간히 피켓을 들고 브렉시트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지만 이후 급속도로 줄었다”면서 “휴가철이라 시민들이 휴양지로 떠난 것 같다”고 말했다.
안내원 랄프씨(61) 또한 “테레사 메이 총리가 부임한 이후부터 앞으로를 지켜보자는 의견이 많아졌다”며 “타국에서 테러가 계속 발생해 이슈가 바뀐 것도 영향을 줬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영국 경제도 서서히 안정을 되찾고 있다. 브렉시트 투표 이후인 24일 장중 5천780대까지 떨어졌던 영국 FTSE100 지수는 7월 들어 6천500대를 회복하더니 22일부터는 6천700대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빠른 안정의 요인으로는 테레사 메이 총리를 중심으로 집권당인 보수당이 결집, 영국 정치가 안정권에 접어들면서 브렉시트 결정에 대한 여파가 최소한으로 줄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현지에서 만난 김윤태 코트라(KOTRA) 런던무역관장은 “브렉시트 초기와 비교하면 한 달 만에 이정도로 경제가 안정될 수 있다는 것은 그간 다져온 영국의 내공이 단단하다는 의미”라며 “금융시장이 주식시장을 중심으로 안정되면서 크게 동요가 없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렇다고 해서 영국 국민들이 완전히 브렉시트 여파에서 벗어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운수업에 종사하는 평범한 런던시민 조이씨(43)도 그랬다.
옛 영국의 식민지였던 스리랑카에서 태어나 20년 전 런던에 터를 잡고, 현재 아내와 두 딸과 오붓한 가정을 꾸려 살고 있는 그에게 이번 휴가철은 고민거리로 다가왔다. 매년 가족 모두 스페인 휴양지를 찾아 여름 휴가를 즐겼지만, 올해에는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아서다.
조이씨는 “파운드화 가치가 계속 떨어져서 올해는 휴가비용이 적어도 30%는 늘게 생겼다”며 “딸들을 위해서라도 좋은 곳으로 여행을 가고 싶은데 생각보다 금액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현지에서 만난 런던 시민들이 생각하는 브렉시트의 가장 큰 영향은 바로 ‘환율’이었다. 비가 많이 오고 습한 환경인 영국민들이 좋아하는 휴양지는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그리스와 같은 유럽 내 지중해 국가들이다. EU 내 왕래가 자유롭고, 최소 2주 정도 되는 긴 휴가가 주어지는 만큼 상당수는 영국을 떠나 해외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그간 영국의 휴가철 풍속도였다.
그러나 브렉시트 이후 파운드화가 꾸준히 약세를 보이면서 영국민들의 여행비용 부담은 늘고 있다. 지난해 여름의 유로-파운드 환율은 1유로에 0.69파운드 정도였지만, 올해에는 0.84~0.85 파운드로 거래되고 있다. 단순히 계산해도 파운드화를 유로화로 환전할 때 작년 휴가철보다 23% 이상 더 지급해야 하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면서 영국 내부에서는 이번 휴가철에는 자국여행을 하자는 캠페인도 전개되고 있다. 영국관광청(VisitBritain)은 북해변의 유명 해안가인 서포크(Suffolk), 아일랜드해 방면의 사우스포트(Southport) 등 국내 휴양지를 적극 소개하는 한편 피카딜리 서커스, 킹스 크로스 등 런던 내 주요 지하철역에 자국여행을 독려하는 포스터 광고를 게재했다.
해머스미스(Hammersmith) 소재 한 호텔에서 근무하는 코넬씨(37)는 “올해는 브라이턴(Brighton)이나 이스트본(Eastbourne) 같은 남부지방 바닷가로 휴가를 떠날 생각”이라며 “거리도 그리 멀지 않고 돈도 아낄 수 있으니 국내여행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영국 런던=이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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