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현장체험] 정조대왕 능행차 ‘호위무사’ 도전기

창덕궁부터 화성까지 능행차 부활
짝짝이 수염 忠臣 애민효심 길 따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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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행차 행렬이 수원화성 장안문을 지나고 있다.
“정민훈 기자, 정조대왕 능행차에 한번 참여해볼래?” 선배 기자의 말 한마디에 마음이 요동쳤다.

 

‘내가 정조대왕 능행차에 참여할 수 있다고?’, ‘어떤 역할을 맡을 수 있을까?’ 등 한 순간에 오만가지 생각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기자는 오래전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아 정조대왕의 효심(孝心)은 익히 잘 알고 있던 터였다.

 

정조대왕의 능행차는 평소 곱씹던 이야기 중 하나였다. 또 역사적 사실을 재현하는데 기자가 참여하는 것은 매우 뜻 깊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네. 꼭 해보고 싶습니다”라며 선배 기자의 물음에 답했다.

이 대화가 정조대왕 능행차에 참여하게 된 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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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조대왕능행차 공동재현 일일체험에 나선 정민훈 기자가 출발전 정조대왕역의 연기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수원화성 축성 220주년 역대 최대규모 능행차

이번에 참여한 정조대왕 능행차는 서울 창덕궁에서 출발해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을 배경으로 펼쳐졌다. 특히 수원화성 축성 220주년을 기념해 역대 최대 규모의 능행차가 재현됐다.

 

정조는 아버지인 사도세자 무덤을 융건릉으로 옮긴 후 13차례 수원화성으로 능행차를 떠났다. 능행차는 창덕궁을 출발해 시흥행궁에서 하루를 묵고, 안양과 지지대고개를 거친 뒤 수원화성까지 오는 조선 최대 왕실행렬이다. 

지난 1795년은 정조 즉위 20주년과 어머니 혜경궁 홍씨 환갑잔치를 기념해 7박8일 일정으로 수원화성을 찾았고, 당시 행렬에 참여한 인원만 6천여 명에 달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가진 대규모 행렬이 올해 처음으로 서울 창덕궁에서 수원화성 행궁까지 (약 48km) 이틀에 걸쳐 재현된 것이다. 총 참여 인원만 3천여 명에, 4백 마리가 넘는 말이 동원됐다. 또 능행차 중간마다 백성들이 임금에게 억울함을 호소하는 ‘격쟁’도 재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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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가 호위무사 의상을 입고 수염을 그리고 있다.

■ 능행차의 백미 역할… “나는 왕의 호위무사다”

정조대왕 능행차 참여가 결정되자 행사를 총 책임하는 곽선근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능행차에 앞서 역할을 맡기 위해서다. 곽 감독과의 첫 대화는 지금까지도 회자될 정도로 짧고 강렬했다.

그는 “능행차의 백미는 왕을 호위하는 무사니까 이번에 말 타는 호위무사에 도전해보시죠?”라며 기자가 의견을 묻기 전에 모든 답을 간단 명료하게 내놓았다. 

결국 5분도 채 되지 않아 대화는 끝이 났고 얼떨결에 말을 타는 호위무사 역할을 맡게 됐다. 이때까지 기분은 날아갈 듯 했다. 올해 최대 규모의 능행차 행렬에서 호위무사 역할을 맡는 건 ‘하늘에 별 따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윽고 수원 지지대고개에서 출발하는 정조대왕 능행차 날이 다가왔다. 9일 오후 1시 수원시 장안구 노송지대는 능행차에 참여하는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전쟁터를 연상케 할 정도로 북적였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대학생 참여자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이 한 곳에 모였다. 게다가 필리핀, 태국 등 국적이 다른 외국인들도 눈에 띄었다.

 

이런 가운데 스텝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모두 조용히 해주세요. 지시에 따라 움직여야 시간에 맞춰 행사를 진행할 수 있어요”라고 말하자 순간 침묵이 찾아왔다.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이 남성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참여자들의 역할을 나누기 시작했다. 20분도 되지 않아 무질서하던 현장이 어느새 질서정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눈코 뜰새 없는 현장… 우여곡절 끝에 분장까지

기자도 질서정연한 분위기에서 의상을 입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여야 했다. 이곳에 오기 전 곽 감독이 말해준 장성임 선생을 찾아야만 했다. 

머리가 하얗고 키가 작은 사람이라고 알려준 장 선생을 찾기는 그야말로 ‘사막에서 바늘찾기’였다. 결국 스텝들에게 물어보는 등 우여곡절 끝에 10여분 만에 장 선생을 만날 수 있었다.

 

처음 만난 장 선생은 “바빠, 있다가”라는 말로 기자를 맞았다. 그의 발은 쉴 새 없이 움직였고 이후 10분을 기다려서야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는 “눈코 뜰새 없이 너무 바빠. 호위무사 옷 한 벌 가져왔으니 입어봐”라며 옷을 갈아입을 수 있는 하얀색 임시 텐트로 안내했다. 

기자의 옷 입는 모습이 못마땅한지 장 선생은 혀 끝을 차며 “이건 이렇게 입는 거야”라며 손수 옷매무새를 고쳐주었다. 신기할 정도로 옷은 장 선생의 손길이 닿자 기자의 몸에 딱 맞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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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호위무사 의상을 입고 수염을 그리고 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장 선생은 이 업계에서만 50년이 넘도록 일 했고, 의상 업계에서는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실력이 빼어난 사람이었다. 그와 함께 일하는 직원은 “장 선생님은 의상 업계에서 대모로 통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의상을 입은 기자는 곧바로 분장을 받게 됐다. 그러나 분장을 받고 나서 기자는 수염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할 수 있었다. 분장팀은 기다란 숯처럼 생긴 뭉뚝한 붓으로 기자의 수염을 그렸고, 입가에 그려진 ‘짝짝이’ 수염에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분장을 마친 후 조금의 시간이 남았다. 남은 시간 동안 정처 없이 발을 내디뎠다. 그러다 공주 역할을 맡은 최선희씨(여)를 만날 수 있었다. 첫 만남에 최씨는 정조대왕 능행차는 평소 자신의 선망(?)의 대상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능행차를 보고 자라면서 ‘언젠가 꼭 참여해보고 싶었다’고 생각했다”며 “이번에 최대 규모로 열린다는 소식에 참가 신청을 했고, 운 좋게 공주 역할을 맡아 꿈만 같다”고 미소 지었다.

 

정조대왕 역할을 맡은 연기자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능행차를 하는 지점마다 정조를 연기하는 연기자가 바뀐다”며 “2시간 정도 정조를 연기하는데 어린 아이부터 나이가 지긋한 어른까지 정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시민들과 눈을 맞추며 연신 미소를 지어야 하는데 힘들기도 하지만 당시 정조가 어떤 생각을 했었을지 조금이나마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어 뜻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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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가 호위무사 의상을 입고 수염을 그리고 있다.
■ 능행차에서 느낀 왕의 뒷모습

본격적인 정조대왕 능행차 시간이 다가왔다. 창을 든 군사부터 말 수십 마리가 각자 자리에 맞춰 도열했다. 오합지졸을 연상케 했던 이전 모습과 달리 완벽한 위용을 갖춘 군대가 어느새 노송지대를 가득 메웠다. 생전 처음보는 광경이 눈 앞에서 펼쳐지자 주위에서 행렬을 기다리던 시민들도 환호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같은 기대감도 잠시였다. 곽 감독은 미안한 표정으로 기자에게 다가와 “어쩌지 말은 못 탈 것 같은데”라며 “갑자기 역할이 바뀌었어”라고 말했다. 결국 말을 탈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한껏 설레는 기분을 품고 온 기자는 좌절했다. 하지만 생애 한번 뿐인 이 기회를 놓치기 싫었다. “말을 탈 수 없다면 걷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오후 2시30분이 되자 정조대왕이 탄 흰색 말이 또각또각 발굽 소리를 내며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기자는 행렬 한 가운데서 걷기 시작했고, 처음으로 정조대왕의 등을 보며 걸을 수 있었다. 수원종합운동장까지 가는 길지 않은 코스지만 걷는 동안 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사상 최대 규모로 역사적 사실을 재현한 행사에 참여할 수 있어 뜻 깊었고 한편으로는 과거 정조는 13차례 능행차를 다니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라는 물음이 떠올랐다.

아버지를 찾아가는 머나먼 여정 위에 임금을 아버지라 부르는 백성을 만나고 그를 따르는 충신과 시간을 함께하면서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러한 물음에 기자의 걸음은 가볍지만은 않았다.

 

정민훈기자

사진=오승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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