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수호천사’ 따뜻한 위로 ‘백의천사’
‘나는, 나의 간호를 받는 사람들의 안녕을 위하여 헌신하겠습니다’
간호대생들이 간호사가 되기 전 낭독하는 ‘나이팅게일 선서’다.
간호대생들은 대학을 졸업할 때 나이팅게일의 숭고한 정신을 상징하는 촛불에 점화한 뒤 나이팅게일 선서문을 낭독하고, 전문 간호인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할 것을 서약한다.
선서문은 현대간호의 선구자인 백의 천사 플로렌스 나이팅게일(Florence Nightingale)을 기념하기 위해 그의 이름으로 만들어졌다.지난달 16일 기자는 이날 하루 나이팅게일의 삶을 살아보기 위해 경기도의료원을 찾았다.
오전 8시30분 도의료원 간호과장실에서 박효숙 간호과장과 조주연 수간호사를 만났다. “보통 일이 아닐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어떻게 간호조무사 체험을 할 생각을 다하셨어요.” 박 과장이 걱정스런 얼굴로 입을 뗐다.
옆에 있던 정 수간호사도 거들었다. “각오 단단히 하셔야 할 텐데요. 생각하는 것보다 힘든 일이 많을 겁니다.”
사실 이때 까지만 해도 나이팅게일의 선서가 무엇을 말하는지, 간호사가 지닌 사명과 책임의 무게가 얼마나 큰지 알지 못했다. ‘까짓것 매일 있는 욕 없는 욕 다 먹고, 마감시간에 쫓겨 아등바등 살고 있는 기자만하겠어. 오죽하면 평균수명이 67세 밖에 안 되겠냐고’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이것이 얼마나 안일한 생각인 줄. 그리고 또 몰랐다. 내 직업에 얼마나 감사하게 될 것인지.
가장 강조한 것은 손 씻기. “손 씻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감염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나 자신과 환자를 위해 빼놓으면 안 되죠. 환자와 손이 닿거나 환자의 물건을 만진 뒤에는 반드시 손 소독제로 손을 닦아줘야 해요.”
그리고 업무분장표를 건네받았다. A4용지에는 이날 해야 할 일들이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호흡기치료부터 코와 목의 이물질을 빨아들이는 석션(suction), 식탁 닦기 및 식사준비, 금식환자체크, 식사보조, 체위변경, 등 마사지, 낙상예방, 체중측정, 안약, 화장실 부축, 냉찜질, 온찜질, 세발, 세안, 틀니세척, 구강간호, 회음부 간호, 이불교환, 환의 교환, 입ㆍ퇴원환자 체크까지 몸이 둘이라 해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업무분장표에는 단순히 할 일들만 적힌 것이 아니었다. 각 세부 사항별로 환자의 이름과 특징이 상세하게 적혀있다. 환자 개개인에 맞는 간호행위를 하기 위해 매일 밤 확인해 두는 것이다.
손 씻기 교육과 할 일들을 전달받고, 조 수간호사를 따라 병실로 이동했다.
“먼저 환자를 체크할 거예요. 병동을 돌면서 간밤에 특이사항은 없었는지, 환자들이 불편한 부분은 없는지 확인하는 일입니다.”
환자 대부분의 머리가 희끗희끗했다. 조 수간호사는 입원 환자의 평균 연령이 70세라고 설명했다. 치매나 알코올의존증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 많으며,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 등 저소득층이 많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아무래도 경기도에서 운영하는 의료원이다 보니 일반 병원을 이용할 수 없는 환자들이 많아요. 몸도 마음도 외로운 분들이기 때문에 간호행위에 더 신경을 써야 하죠.”
생각지도 못한 복병이 찾아온 순간이었다. 기저귀라. 아기 기저귀도 갈아본 적 없는 기자가 환자의 기저귀를 간다는 사실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런 기자의 마음을 알아챘는지 조 수간호사가 “처음이 어렵지 하면 다 할 수 있다”며 위로했다.
마음을 추스르고 조 수간호사를 도와 기저귀를 갈기 시작했다. 헌데 웬걸 기저귀를 갈고 나니 할머니가 우시는 게 아닌가. 조 수간호사는 “아이고 우리 할머니 또 우시네, 뭐가 그렇게 서러워. 우리 할머니는 눈물이 너무 많은 게 탈이야. 기저귀 잘 가셨으니까 우리 요플레 먹자”고 할머니를 달랬다.
그리고는 기자에게 “기저귀를 갈 때 우시는 분들이 있어요. 어쩌다 자기 신세가 이 이렇게 됐을까 하는 생각에 눈물을 보이시는 같아요. 마음이 아프죠”라고 귀띔했다.
할머니의 눈물에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나이팅게일의 선언문이 떠올랐다. 간호사와 간호조무사가 가진 사명과 책임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간호행위는 단순히 아픈 환자를 돌보는 일만이 아니다. 몸이 아픈 만큼 마음이 아픈 환자를 돌보는 일이었다.
그 뒤로 식탁 닦기 및 식사준비, 식사보조, 체위변경, 화장실 부축, 세발, 세안, 이불교환, 병상청소 등 오늘 하루 나의 환자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일과를 진행했다.
도의료원에는 이런 간호행위가 24시간 끊이지 않고 계속된다. ‘24시간 간호ㆍ간병통합서비스’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립의료원은 여타 공공의료기관 중 ‘간호ㆍ간병통합서비스’ 운영에 있어 선제적인 역할을 했다.
이날 체험한 결과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인력. 46개의 병상을 한조에 평균 5명의 간호사와 간호조무사가 교대로 근무하고 있다. 한명의 간호사가 10명의 환자를 돌보는 셈. 단 몇 시간의 체험이었지만 사명과 책임의 무게는 컸고, 그 무게를 견디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기자가 든 생각이다.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는 분명 고된 일이다. 일만 고된 것이 아니고 마음도 고되다. 하지만 이날 하루 함께한 조 수간호사와 다른 간호사, 간호조무사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환자 한명 한명을 마치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처럼 돌보는 그들의 모습에서 진한 감동과 감사를 느낄 수 있었다.
이들의 헌신과 노력을 3천자에 다 담을 순 없지만, 누군가의 생명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지면을 통해 독자들에게 잘 전달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송시연기자
사진=전형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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