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현장체험] 아이스링크 ‘정빙사’

최고의 빙질 만드는 ‘빙판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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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광호 기자가 수원 탑동 아이스하우스에서 정빙차량인 ‘잠보니’를 운전하며 빙판을 정비하고 있다. 전형민기자
사시사철 얼음으로 덮인 곳이 있다. 

빙판위를 신나게 달리고 싶을 때면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도 언제든 찾아 갈 수 있는 곳, 바로 아이스링크다. 드넓은 링크에 1년내내 최고의 빙질을 유지하기 위해선 그만큼의 숨은 노력과 열정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과학과 기술의 힘도 빌려야 한다. 최고의 빙질을 만드는 직업 ‘정빙사’는 화려한 빙판뒤에 숨은 주인공이다. 체육부 기자가 되기 이전부터 링크장을 찾을 때마다 빙판은 어떻게 관리되는지 늘 궁금했다.

사람들의 스케이트날에 부서지고 깨진 얼음조각은 어떻게 하는지, 움푹 패이고 깎인 곳은 어떻게 메우는지, 또 30도를 넘나드는 무더위속에서는 어떻게 빙판을 식히고 다시 얼리는지 의문투성이었다. 그 해답을 찾기위해 나섰다. 단 하루만이라도 얼음 마법사가 돼보기 위해서다.

 

■ ‘김연아 키즈’부터 ‘제2 이상화’까지 꿈이 모이는 곳

1일 정빙사 체험을 위해 지난 17일 수원 탑동에 위한 아이스하우스를 찾았다. 봄비치고는 제법 많은 비가 내리는 가운데 오전에 찾은 링크에는 어린 아이들로 북적였다. 

강사 선생님의 수업을 듣는 아이들은 제2의 김연아, 이상화를 꿈꾸며 저마다 열심히 스케이트를 타고 있었다. 링크장 옆 사무실에서 만난 정빙사 이병일(62)씨는 초보 정빙사(?)를 반갑게 맞아줬다. 

교육이 끝날 때까지 우선 사무실에서 대기하라고 말한 그는 두꺼운 겨울점퍼를 내주었다. 안그래도 링크의 한기에 몸이 움츠러드는 찰나 이 정빙사가 건네준 두꺼운 패딩점퍼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이 정빙사는 패딩점퍼를 건네며 “오늘 1일 조수가 생겨서 적적하지는 않겠구만”이라며 사람좋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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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빙사 이병일씨로부터 정빙사의 주요 업무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이 정빙사는 본격적인 정빙작업을 하기전에 먼저 기계실로 인도했다. 기계실에는 일명 ‘잠보니’로 불리는 정빙차부터 보일러, 냉동기까지 복잡한 기계들로 가득했다. 가장 먼저 보일러부터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정빙사로서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 위해 아침에 눈뜨자마자 해야하는 일이 보일러로 물을 데우는 일이라고 했다. 

언뜻 듣기엔 ‘링크에 뜨거운 물이 왜 필요하냐’ 싶겠지만 훼손된 빙판 표면을 뜨거운 물로 녹여서 다시 매끄럽게 만들기 위해 중요한 작업이다. 보일러부터 가동해서 물을 60도까지 데운 뒤 정빙차 물탱크에 물을 보충하는게 첫 번째 업무다.

 

다음으로 냉동기에 대해 소개했다. 이 정빙사는 “냉동기가 링크 안에서 온도를 유지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수시로 체크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링크 온도는 계절마다 다른데 여름에는 -9.0도를 기준으로 하고, 겨울에는 -7.8도, 봄ㆍ가을에는 -8.7도 정도를 유지하고 있단다. 실내빙상장 안에 사람들 때문에 실내온도가 올라가면서 빙판이 녹기 때문에 적절한 실내온도를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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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빙차량을 꼼꼼히 정비하고 있는 모습.
■ ‘정빙차’를 잘 다뤄야 진정한 정빙사

이제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정빙차에 대해 배워보기로 했다. 링크에 갈 때마다 한번쯤은 보게 되는 정빙차는 실제로 보니 불도저를 연상케하는 육중한 몸을 자랑했다. 

정빙차는 빙판 위에 뿌려진 얼음 찌꺼기를 1톤짜리 폐빙 탱크로 흡입하고, 정빙 칼날(블레이드)로 빙판을 0.1~0.2㎜ 정도로 깎아내면서 빙판 표면에 온수를 뿌려 파인 얼음판의 틈새를 채워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 모든 작업이 거의 동시에 이뤄지면서 유리알 같은 얼음판으로 만들어 준다. 정빙작업의 진짜 주인공이기 때문에 수억원을 호가하는 덩치만큼 엄청난 몸값을 자랑한다.

 

정빙차의 작동법을 배우던 중에 아이들의 교육이 끝나면서 링크장 휴식시간이 됐다. 이 정빙사는 “이제 정빙차를 타고 나가도 되겠다”며 링크로 향하는 문을 열고 정빙차를 빼냈다. 정빙차를 링크로 옮기는 동안 빙판을 살펴보니 군데군데 패인 곳과 떨어져 나간 얼음 조각이 많이 보였다. 이 상태로는 다음에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정빙차를 제 위치에 옮긴 뒤 정빙차에 올라탔다. 

자동차 운전면허 학원에 등록한 후 처음으로 운전대를 잡던 때처럼 떨리고 긴장된 순간이었다. 배운대로 정빙 작업이 가능하게끔 조작한 뒤 조심스럽게 전진 기어를 넣고 엑셀을 밟자 정빙차가 이동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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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광호기자가 정빙차량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기하게도 정빙차가 지나갈때마다 움푹 패이고 깎인 얼음판이 매끄럽게 정돈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링크를 한바퀴 돌며 정빙작업을 이어갔다. 이 정빙사는 정빙차 운전에 재미가 들린 기자의 모습을 보면서 “어때 할만 해? 그래도 운전에 소질이 있구만. 속도는 안나지만 또다른 매력이 있지?”라며 대견하다는 표정이었다.

 

약 10분정도 링크를 이러저리 돌면서 정빙 작업을 마치자 이 정빙사는 정빙차를 기계실에 넣고 이번에는 수동 정빙기를 꺼냈다. 정빙차가 닿지 않는 사이드와 구석의 경우 이 수동 정빙기로 정빙사가 직접 밀며 깎아내야 한다고 했다. 그의 시범을 보고 난 뒤 크게 어려워 보이지 않아 가볍게 생각하고 수동 정빙기를 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바닥은 미끄러운데다가 무거운 정빙기를 직접 밀자니 발바닥과 팔에 있는대로 힘을 줘야하는 이중고가 계속됐다. 한 면을 미는데 만도 온몸에 땀이 비오듯 흘렀다. 이를 지켜보던 이 정빙사는 “정빙차 타는 것은 이거에 비하면 일도 아니야. 매일 하는 일이 아니어서 다행이지 나도 할 때마다 힘에 붙인다”고 말했다.

 

어렵게 사이드 정빙작업을 마친 후 기계실로 돌아와 정빙차 청소를 시작했다. 정빙차 곳곳에 얼음 조각이 끼어있었는데 특히 스크류 사이에 낀 눈이나 얼음 등을 더운물로 꼼꼼이 씻겨야 했다. 이 정빙사는 작은 조각이라도 정빙차 운행 중에 고장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구석구석 잘 청소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청소를 마치는 중에 또다른 아이들이 수업을 위해 링크로 들어가서 신나게 스케이트를 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그는 빙판위에서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볼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나도 내가 정돈한 링크를 아이들이 타는 모습에 뿌듯함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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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빙차 엔진을 점검하며 다음 정빙을 준비하고 있다.
■ 24시간 링크에서 살아가는 ‘얼음 장인들’

아이들이 링크를 이용하는 동안 사무실에서 이 정빙사에게 정빙사의 다른 업무들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정빙사는 빙판만을 관리하는게 아니라 링크 전체를 관리하는 관리자이자 운영자였다. 

또다른 정빙사와 24시간 2교대로 근무한다는 그는 링크에 있는 동안은 빙판에 온 신경을 써야 한다고 전했다. 우선 정빙차 밑에 들어가는 칼날은 13일에 한번씩 교체작업을 하는데 혼자 작업을 해야하기 때문에 교체하는 데만 한 시간정도 소요된다. 

또한 정빙기로 같은 곳을 계속 돌다보면 얼음판 평형에 뷸균형이 생겨서 한달에 한번씩 균형을 잡아주는 작업도 해야 한다. 많이 깎여서 낮아진 부분을 높여주기 위해 물을 호수로 분사시켜 낮은 부분을 채워 높이를 맞춰주는 것이다. 이 정빙사는 “이 작업의 경우 손님들이 모두 나간 야간 12시 이후 진행해야하기 때문에 철야로 이뤄지는 어려움이 있다”고 털어놨다.

 

이 밖에도 부수적으로 링크장 내 시설과 전기 시설 등을 함께 관리하면서 고장이 났을 경우 이를 직접 수리하거나 외부업체에 의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링크장 내 강화유리가 많이 파손돼서 강화유리로 교체할때까지 파손된 부분을 PE판으로 대서 임시보수하는 일이 많다고 한다.

 

원래 에어컨 제조 대기업에서 일했다는 이 정빙사는 “은퇴하고 자격증 학원을 다니면서 공조냉동기계기능사와 보일러 자격증, 위험물관리자격증, 소방관리사2급, 흡수식 냉동기 자격증 등 5개 자격증을 취득했다”며 “지난 2012년 이 곳에 정빙사로 취업해 5년째 일하고 있다. 

정빙사는 내가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게 해준 고마운 직업”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내년에 우리나라에서 평창 올림픽을 개최하게 되면서 링크가 더 늘어나고 저변이 확대돼 정빙사의 수요가 많이 늘어날 것이다. 누구든 도전해 볼만한 직업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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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냉동기의 온도를 체크하며 이상 유무를 확인하고 있다.
정빙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그에게서 정빙사로서의 자부심과 긍지를 느낄 수 있었다. 김연아와 이상화, 이승훈이 이 분들 손에 의해 태어났다고 생각하니 정빙사라는 직업에 경외심과 존경심마저 들었다. 아울러 내년도 평창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서는 이분들의 역할이 누구보다 중요할 것이라는 확신도 들었다. 

이 정빙사와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는 사이 아이들의 수업이 끝나고 링크장에 또다시 휴식시간이 돌아왔다. 자리에서 일어난 우리는 또다시 정빙차로 향했다.

 

정빙차가 링크장으로 향하는 문을 활짝 열어준 이 정빙사는 “이봐 신참, 자네 차례야. 이번에는 더 잘할 수 있지?”라며 내게 정빙차를 맡겼다. “네, 물론입니다. 이제 잠보니는 저한테 맡겨주세요!” 나는 그렇게 기자가 아닌 정빙사로 이날 빙판을 몇 번이고 돌고 또 돌았다. 사람들의 안전과 최고의 빙판을 유지하기 위해 오늘도 잠보니는 얼음 위를 달린다. 

김광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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