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3번 방학… 근무 줄이고 능률 높인다
패션 소재 전문 기업 영우 T&F LEAD(안양시 동안구) 임직원의 지난해 근무시간과 근무일수다.
우리나라 법정 근로시간인 ‘주 40시간’에 따라 근로 246일, 1968시간에 비교해 상당히 낮은 수치다. OECD 평균 근로시간인 1766시간보다도 142시간 적다.
영우의 임직원들은 오전 8시30분에 출근하고, 오후 4시30분에 퇴근한다. 출퇴근 시간은 철저하다. 야근이나 당직은 없다. 일은 시간 안에 끝내야 하고, 모든 직원들은 4시30분이 되면 출퇴근입력기에 퇴근 시간을 찍고 나가야 한다. 행여나 직원들이 눈치를 볼까 대표를 비롯해 임원들은 20분 전, 부장들은 10분 전에 퇴근한다. 이미 오래전부터 익숙한 풍경이다.
전재성, 이영숙 대표가 이끌고 있는 영우는 1990년 설립된 패션 소재를 개발하고 연구하는 기업이다. 직원 34명이 근무하는 중소기업이지만 기업부설연구소의 신소재 연구와 체계적인 생산 시스템을 통해 국내 대기업 브랜드를 포함해 1천여곳과 거래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을 비롯해 중국, 영국 등으로 수출하며 ‘작지만 강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영우의 또 다른 타이들은 바로 ‘여성고용우수기업’ ‘가족친화기업’이다. ‘근무시간 단축’을 비롯해 ‘리프레쉬 기간’ ‘전 직원 연 1회 가족 해외여행비’ ‘생일자 당일 휴가 및 가족 외식비’ ‘임직원 가족초대 문화의 날’ ‘자유로운 문화회식’ ‘직원전용 카페’ ‘장기근속 포상’ 등 일과 삶의 균형을 이룰 수 있게 적극 지원하고 있다.
근무시간 단축은 7년전부터 꾸준히 30분 단위로 줄여왔다. 처음 7시30분에서 시작해 7시, 6시30분, 6시 그리고 올해 4시30분이 됐다. 내년에는 4시까지 당길 계획이다. 특히 근무시간 단축으로 인한 구성원들의 업무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자체 ERP 개발, 답돌이(자동응답시스템) 등 사내 시스템 개발을 위해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어른들에게도 방학을’이라는 키워드로 연 3회 방학을 제공하는 리프레쉬 기간을 도입했고, 전 직원들에게 연 1회 가족 해외여행비 20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리프레쉬 기간은 장미방학, 해바라기방학, 코스모스방학으로 총 3번이다. 4월28~5월7일(장미방학), 7월28일~8월5일(해바라기방학), 9월22일~10월3일(코스모스방학)에는 전임직원들이 방학에 들어간다.
가족 해외여행비는 그동안 직원 개개인에 소소하게 지원하고 있다가, 지난해 대상과 금액을 전직원 200만원으로 정하고 지급하기 시작했다. 생일자 당일 휴가 및 가족 외식비 지원은 오래전부터 진행해 왔다. 생일자는 당일 휴가를 쓸 수 있고, 가족 외식비 20만원을 지원받는다.
이 모든 것들은 단순히 1~2년 안에 이루어 진 것이 아니다. 전재성, 이영숙 대표의 ‘가족’에 대한 남다른 고집과 철학으로 설립 이후 부터 30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꾸준히 노력해 정착시킨 문화다.
영우의 문화는 직원 개개인의 삶을 변화 시켰다. 일과 가정의 양립은 물론 일에 대한 책임감, 직원간의 끈끈한 유대감, 회사에 대한 애사심까지. 아이 유치원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아버지의 병간호를 위해, 집의 이사를 위해, 출산을 위해 자리를 비우는 것에 눈치 받는 사람도, 눈치 주는 사람도 없다. 서로의 출산과 휴가, 가족행사를 제 일처럼 챙기고 독려한다.
중소기업의 가장 큰 문제인 인력난과 이직률은 남의 일이다. 34명의 직원 중 10년차 이상이 5명, 5년차 이상이 14명이다.
매출 상승은 자연스럽게 뒤따라 왔다. 직원들 스스로도 자신의 일에 책임감을 갖고 보다 업무에 집중했다. 근무 시간은 훨씬 효율적으로 돌아갔고, 섬유업계의 계속되는 불황에도 불구하고 매출은 지속해서 상승는 결과를 낳고 있다.
송시연기자
주인의식 가질 수 있는 환경 구축”
전재성, 이영숙 대표는 부부다. 네 아이를 둔 다둥이 부모다. 시골에서 올라와 맨손으로 지금의 영우를 만들면서 네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을 터.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진다는 ‘가화만사성’은 두 대표가 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깨달은 삶의 철학이다.
-가족친화제도를 도입하게 된 배경은.
처음 패션업계에 들어왔을 때 4대보험 조차 없었다. 그런 것부터 하나 하나 고쳐 왔다. 오랜시간 작은 것 부터 꾸준히 실천해왔다. 무엇보다 직원들이 진짜 애사심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했다. 모든 기업들이 직원에게 주인의식을 가지라고 말을 한다. 직원들은 한달에 한번 월급 받는 사람들이다. 주인이 아닌데, 어떻게 주인의식을 가지나. 진짜 주인처럼 대해야지 주인이 되는 것이다.
-근무시간 단축이 가장 눈에 띈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 같다.
퇴근시간을 조금씩 줄이기 시작했다. 헌데 일이 되더라. 줄이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고, 이게 정상적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30분 단위로 줄이기 시작했다. 내년에는 4시에 퇴근한다. 직원들도 업무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근무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할 것인지 스스로 고민하고, 일을 해결해 나간다. 물론 시스템도 뒷받침 돼야 한다. 직원들의 업무를 대신할 수 있도록 회사에 필요한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했고, 업무가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다.
-실제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는지.
근무 시간이 현저히 줄고, 시스템 도입에 따른 상당수의 예산이 투입됐다. 하지만 매출에는 지장이 없다. 요즘같은 경기에 매출이 떨어지지 않는 것만해도 대단한 일이다. 오히려 소폭으로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들을 체감했기 때문에 올해도 자신있게 추진할 수 있었다. 직원들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가족친화제도를 통해 크게 얻은 부분이다.
-많은 중소기업들이 이러한 제도들을 도입하는데 쉽게 나서지 못한다. 조언 한마디 해주자면.
이런 문화들이 많이 확산되길 바란다. 열심히 해라, 더 열심히 해라는 직원들은 움직일 수 없다.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다. 서로의 입장을 끊임없이 고려하고,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야 한다. 오너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추진해야 한다. 디지털 시대 아니냐.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
“아이와 함께 할 시간 많아 행복”
올해 11년차 이보란 과장은 영우가 첫 직장이었다. 영우에서 결혼을 했고, 출산을 했다. 지금 그 아이이가 5살이다. 워킹맘으로 살아가는 것이 힘들 법도 한데, “아이의 모든 순간을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하다”며 웃었다.
-실제 근무 환경은 어떠한가.
일과 육아를 병행하면서 느끼는 부담과 문제점들이 현저하게 적다. 회사에서 여러가지를 추진하면서 자연스럽게 가족을 중시하는 문화가 자리잡게 됐다. 처음 퇴근 시간을 앞당긴다고 했을때는 ‘한 해만 하고 말겠지’ 싶었다. 매년 조금씩 바뀌어 나가는 회사의 모습을 보면서, 회사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또 회사에 대한 애사심도 커졌다. 영업부에 있다보니 회사의 매출을 신경쓸 수 밖에 없다. 내가 조금이라도 회사에 도움이 되는 방법이 무엇일까 항상 고민하고 생각하게 됐다.
-제도의 도입 전과 후 개인적인 삶에는 어떤 변화가 찾아 왔는지.
퇴근 시간이 빨라지면서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늘었다. 함께 저녁을 먹고, 학습지를 한다. 입사 초기에는 꿈에 대한 포부가 컸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보니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가장 소중하더라. 내가 좋아 하는 일을 하면서, 아이의 모든 순간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할 따름이다. 지난해부터는 리프레쉬 기간과 해외여행비가 지원되면서, 가족들과 여행 계획을 짠다. 삶에 또다른 즐거움이 생겼다. 지쳤던 몸들을 힐링할 수 있는 시간들이 생기니까 일에 대한 의욕과 삶의 질, 모두 높아졌다.
-워킹맘에게 가장 필요한 가족친화제도는 무엇일까.
근무 시간이다. 퇴근 시간이 조금만 빨라도 많은 것들을 가족과 함꼐 할 수 있다. 상사 눈치를 보지 않고 퇴근을 정확한 시간에 할 수 있다는 것도 큰 기쁨이다. 주변에서도 다들 부러워한다. 올해 회사에서 방학 일정을 표시한 달력을 만들었다. 거래처에도 나눠줬는데, 달력을 보시고는 거래처 사장님이 직원들에게 ‘미안하다’고 이야기 했다는 말을 들었다. 영우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송시연기자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