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대의 연쇄살인마 이춘재에 대한 경찰 수사가 마무리됐다. 그가 저지른 만행의 공소시효도 끝난 지 오래다. 그러나 30여년 전 이춘재가 머물렀던 그곳엔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공포가 숨 쉬고 있었다.
1986년 9월15일, 딸의 집에서 잠을 자고 새벽에 귀가하던 L씨(당시 71세)는 화성 태안읍 안녕리 일대 목초지에서 피살됐다. 이춘재가 저지른 연쇄살인의 첫 번째 사건이다.
7일 오전 이곳에선 당시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안녕 IC를 중심으로 뻗어나가는 6차선 도로 위에는 수많은 차량이 달리고 있었고, 도로 오른편으로 700여세대가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버스 정류장에 삼삼오오 모여 앉은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듯 깔깔대며 웃고 있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 이곳에서 살아온 주민들의 이야기는 달랐다. 이춘재가 태어나고 자란 동네로 알려진 화성 진안동에서 만난 박원교씨(67)는 1987년의 봄을 똑똑히 기억했다.
당시 중장비 부품 공장에서 일했던 박씨는 미간을 찌푸리며 이춘재의 6번째 연쇄살인을 떠올렸다. 1987년 5월2일 아침, 철야 작업을 마치고 동료들과 막걸리를 마시러 가던 그는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전날 밤사이 인근 야산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이튿날 박씨와 동료 30여명은 모두 경찰서로 끌려가 신원조사를 받아야 했다.
박씨는 “당시엔 그곳(범행 장소)을 원바리고개라고 불렀다”며 “공장에 출퇴근 할 때마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다녔는데 그 길에서 사건이 터진 뒤로는 다른 길로 다녔다”고 말했다. 이어 “끔찍한 괴물과 한 동네에서 나고 자랐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며 “다시는 사회로 돌아올 수 없도록 무거운 처벌이 내려지길 바랄 뿐”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날 오후 황구지천 인근에서 만난 임청옥씨(74)와 최미진씨(42) 모녀는 ‘이춘재’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말도 말라며 몸서리를 쳤다. 하천을 두고 수원 곡선동과 화성 화산동이 마주하는 이곳에선 진범 논란을 빚었던 8차 사건을 비롯해 4건의 살인이 벌어졌다. 이춘재는 자신이 죽인 피해자(8차 사건, 당시 13세)의 이웃집에 신혼 살림을 차렸었다.
어머니 임씨는 “아마 8차 사건에서 처음으로 어린 아이가 살해 당했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결혼 10여년 만에 어렵게 낳은 딸을 잃게 될까 너무나 두려웠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정미소에서 일하는 남편을 따라 밤까지 일하는 날도 많았지만, 연쇄살인이 시작된 뒤로 해가 지면 딸과 함께 집밖으로 벗어나지 않았다.
1988년 10세 소녀였던 딸 최씨는 “학교에 가면 친구들 사이에서 ‘빨간옷을 입거나 치마를 입으면 표적이 된다’는 등의 괴담이 많이 돌았었다”며 “그땐 어머니가 42세였고 이젠 내가 42세가 됐지만, 아직도 이춘재를 떠올리면 등골이 오싹하다”고 전했다.
앞서 배용주 경기남부지방경찰청장은 지난 2일 ‘이춘재 연쇄살인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하며 살인 14건, 성폭행 9건에 대해 이춘재가 저지른 연쇄범행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경찰은 이춘재가 자백한 사건 외에 여죄를 찾아내고자 검찰 송치 후에도 수사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다만 공소시효가 끝나버린 탓에 그가 저지른 모든 혐의에 대한 처벌은 이뤄질 수 없다.
장희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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