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12일 망자가 된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과 백선엽 예비역 대장의 조문 및 예우를 놓고 격랑에 휩싸였다. 성추행 의혹으로 고소된 직후 극단적인 선택을 하며 생을 마감한 박원순 서울시장과 6·25 전쟁 영웅으로 추앙받지만 과거 친일 행적 논란에 휩싸인 백선엽 장군을 둘러싸고 ‘조문 정국’이 펼쳐지면서 여야 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야권은 박원순 시장 조문을 둘러싸고 대립하는 모양새다. 민주당은 고인에 대한 추모가 우선이라며 주요 인사들이 조문 행렬에 동참하고 있다. 박 시장에 대한 애도에 집중해야 할 때인 만큼 사실 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의혹에 대해 언급하는 건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지난 10일 취재진으로부터 고인의 성추행 의혹 질문에 대해 “예의가 아니다. 그런 걸 이 자리에서 예의라고 하는 것이냐. 최소한 가릴 게 있다”고 역정을 냈다.
김진표 의원(수원무)도 “고인을 위해 오늘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예의”라고 답했고, 권칠승 의원(화성병)은 “잘못하면 돌아가신 분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 될 수도 있기에 최소한의 예의는 차려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이에 맞서 야권은 박 시장이 극단적 선택을 하기 직전 성추행 혐의로 고소됐다는 점을 지적했다. 특히 고소인에 대한 신상 털기 등으로 2차 가해가 우려되는 점을 고려해서라도 무조건적인 ‘애도 모드’로 치우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야권은 또한 장례가 서울특별시장으로 치러지는 것 역시 비판했다.
미래통합당 지도부는 공식 조문을 하지 않고 있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지난 11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으려던 일정을 보류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도 지난 11일 페이스북에서 “이번 일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될, 참담하고 불행한 일”이라면서도 “고인의 죽음에 매우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지만 별도의 조문은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의당 류호정 의원도 박 시장 고소인에 대한 연대를 표하며 조문 거부 입장을 밝혔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 최민희 전 의원과 진중권 동양대 전 교수는 조문 여부를 놓고 정면충돌했다. 최 전 의원은 SNS에 “정의당은 왜 조문을 정쟁화하나”라며 “지금은 애도할 시간”이라고 쓰자, 진 전 교수는 “한 여성에게 수년간 고통을 준 이에게 조문가는 게 적절하지 않다고 말하는 게 정쟁화냐”며 “애도를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하면 본인이나 입 닥치고 애도하라”고 꼬집었다.
고 백선엽 장군과 관련해서는 대전현충원 안정을 놓고 통합당과 다른 당들이 대립하고 있다. 통합당은 정부가 백 장군을 대전현충원에 안장하겠다고 발표한 것과 관련, 백 장군의 공적을 고려해 서울현충원에 안장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통합당 김은혜 대변인(성남 분당갑)은 이날 논평에서 “오늘날 대한민국과 국군을 만든 구국의 전사를 서울현충원에 모시지 않으면 누구를 모셔야 하느냐”며 “12만 6·25 전우가 있는 서울현충원에 그를 누이지 못하는 것은 시대의 오욕”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정의당 김종철 대변인은 논평에서 “백선엽씨는 일제 식민지 시절, 일본이 조선독립군 부대를 토벌하기 위해 세운 간도특설대에 소속되어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한 장본인”이라고 반발했다. 김 대변인은 “일부 공이 있다는 이유로 온 민족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준 인사가 국립현충원에 안장된다면 과연 앞서가신 독립운동가들을 어떤 낯으로 볼 수 있느냐”고 직격했다.
송우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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