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마가 할퀴고 간 이천
“말도 못해. 파도처럼 커다란 흙탕물이 집 안까지 덮치더니 다 떠내려갔어. 다 없어졌어…”
이천시 율면 산양1리에 사는 박정자씨(66)는 2일 오전 주택과 1㎞ 떨어진 산양저수지 붕괴로 난생처음 ‘물폭탄’을 맞았다. 사뭇 다른 빗소리에 저수지가 터질 거 같다고 생각한 박씨가 남편을 깨워 나왔을 땐 이미 물이 차오르기 시작해 인근 주민들이 혼비백산하고 있을 때였다. 빗줄기가 잦아 들어 정신을 차렸을 때는 농사에 쓰이는 경운기와 건조기, 오토바이 3대 등이 이미 떠내려간 상태였다.
박정자씨는 “마당에 둔 쌀 5포대가 물에 다 젖어 먹을 수도 없어 다 버려야 하는 상황”이라며 “수도도 끊기고 먹을 것도 없고 하루 사이에 다 없어졌다”면서 저수지 둑이 붕괴된 순간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몸서리를 쳤다.
0시부터 이날 오전까지 7시간 동안 193㎜의 기록적인 폭우 탓에 오전 7시32분께 축구장 2배 크기인 1만7천490㎡의 산양저수지(저수 규모 6만2천t) 일부가 붕괴됐다.
전체 길이 126m인 산양저수지 둑의 방수로 옆 30m 구간이 뚫리며 흙탕물이 쏟아졌고 순식간에 저수지 아랫마을인 산양1리가 물에 잠겼다. 마을 곳곳에는 물이 휩쓸고 간 상흔이 뚜렷하게 남아 있었다. 거센 물살에 도로 한쪽은 찢어진 것 같은 모습으로 토사와 함께 유실돼 있었고, 저수지 근처에 있던 컨테이너 박스가 약 1㎞ 떨어진 마을 도로까지 휩쓸려 내려왔다. 마을회관도 물의 습격을 피하지 못했다. 회관 입구에 설치된 지붕은 휘어져 있었고 유리는 모두 깨져 있어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이곳에서 만난 손종순 할머니(72)는 “비가 좀 약해졌을 때 집에 다시 들어가자 토사물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며 “혹여나 감전이 될까 전기도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다행히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아 마을 주민들은 불행 중 다행이라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와 함께 이날 이천 곳곳에서는 다리 등 도로가 통제됐다. 이천 장호원과 충북 감곡을 잇는 청미천 장호원교 양방향이 범람 위기로 완전히 통제됐고 이곳에서 약 3㎞ 떨어진 여주 원부교도 막혔다. 또 모가면 두미리 사실로는 폭우로 밀려온 토사가 도로를 덮쳐 차량운행이 통제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중부고속도로 등 고속도로 일부 구간도 토사가 들어차고 나무가 쓰러지면서 통제됐다.
기상청에 따르면 전날 오후 6시부터 이날 오후 3시까지 안성 286.5㎜·여주 264㎜, 충북 단양 284.5㎜, 제천 272.7㎜, 강원 영월 235.4㎜ 등의 집중호우가 쏟아졌다.
김정오ㆍ김해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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