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신년특집] 고려인 “이방인 아닌 동포, 우리도 같은 꿈 꿉니다”

3만2천169명. 경기도내 러시아ㆍ우크라이나ㆍ벨라루스ㆍ카자흐스탄 등 독립국가연합에서 살고 있는 한인교포 ‘고려인’의 수다. 구 소련 시절 스탈린의 소수민족 배제 정책에 따라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고려인은 안산, 안성, 평택, 화성 등 도내 곳곳 자리 잡고 있지만 한국 국적을 가진 사람은 300여명에 불과하다.

코로나19라는 유례없는 사태를 맞아 감염 확산 방지에 국민의 온 신경이 집중돼 있어 교육, 보육, 건강 등 여러 부문에서 소외받는 고려인들의 고립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특히 외국인으로 분류된 고려인 4세들은 동포로 인정받기 위해 한국어 교육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이들의 바람과 달리 여전히 정부의 지원이 부족한 것은 물론 주변 시선 또한 달갑지만은 않아서다. 2021년 새해를 맞이하며 고려인 4세에 대해 이방인이라는 타이틀보다는 먼 길을 돌아온 동포라는 생각을 그려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2021년 새해에는 한국어를 사용하는 친구들과 더욱 친해지고 싶어요”…고려인 4세 손바짐ㆍ이막심ㆍ먐기릴군의 새해 소망

안산시 단원구에 사는 손바짐군(9)과 이막심군(9), 먐기릴군(9)은 고려인 4세다. 이들은 각각 지난해와 2017년에 부모님을 따라 ‘할아버지의 나라’, 한국으로 입국했다. 같은 나이의 이 학생들은 안산에 있는 고려인문화센터 ‘너머’에서 만난 친구들로 초등학교 역시 같은 곳에서 2학년 생활을 함께했다.

‘고려인 4세’ 보다 ‘초등학생, 어린이’라는 단어가 익숙한 세 학생은 한국에서의 생활에 완전하게 적응하지 못했지만,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다. 초등학생들은 학교에서 또래들과 어울리며 언어와 학습, 문화 등을 많이 배우는 것이 중요한 시기지만 2020년은 코로나19로 학교에 갈 수 없어 센터에서의 활동이 소중하다.

고려인 4세 학생들은 비대면 수업을 완전하게 이해하기 어려워 센터에서 학년별로 5~6명씩 모여 통역사 선생님과 수업에 참여한다. 또한 부모들이 직장에 나가 돌봄에도 공백이 생기기 때문에 돌봄이 더욱 필요하다.

센터 너머에서 서로 가장 친하다는 세 학생은 한국에서 가장 힘든 점은 “수업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다”, “필기를 할 시간이 너무 짧다”고 입을 모았는데 모두 한국어에 서툴기 때문이다. 더욱이 2020년 한 해 동안 코로나19가 계속돼 대면 수업을 거의 진행하지 않고 온라인 수업을 진행해 이들은 더욱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특히 필기할 시간이 부족했다는 손바짐군은 선생님의 필기를 반도 못했는데, 지우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며 수업내용을 이해하고 정확한 필기를 하는 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손바짐군은 고사리손으로 공부하는 것이 재밌다며 ‘성적 우수상’을 받았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또한 손바짐군은 한국에서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다며 이막심군과 먐기릴군에게도 자신의 한국 친구들을 소개해주기도 했다. 한국에 온 지 이제 1년차이지만 공부와 사교방면에서 빠르게 적응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맨 몸으로 장애물을 넘는 운동인‘파쿠르’ 유튜버가 꿈이라는 먐기릴군은 코로나19로 씨름 학원에 가지 못하는 것이 가장 속상하다고 했다. 운동을 좋아한다는 먐기릴군은 평소에도 체육관과 학교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뛰어놀거나 축구를 즐긴다며 체육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먐기릴군은 운동으로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지만 한국 친구들과는 아직은 조금 어색하다고 한다. 한국에 온 지 3년 정도 됐지만 아직은 한국어보단 러시아어가 더 익숙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친구들을 사귀기 위해 한국어를 더 열심히 공부한다고 말했다.

차분히 자기소개를 하는 이막심군은 영화와 드라마에 등장하는 유명한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하며 쑥스러워하며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이막심군 역시 손바짐군, 먐기릴군과 같이 한국어가 서툴기 때문에 수업을 이해하고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에서 어려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만난 친구들과 대화하기에는 조금 어렵다며 러시아어를 쓰는 친구들과 대화하는 것이 더 편하다고 말했다.

세 학생들은 한국어가 익숙하지 않아 학습도 또래와의 관계에도 어려움이 있다며 “2021년에는 한국어가 더 익숙해져서 수업도 쉽게 이해하고 친구들과도 금방 친해지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고려인 4세 두 자녀의 어머니 최 야나씨(41)…“새해 소망은 그저 코로나19가 종식돼 자녀들과 블랙핑크 콘서트에 가보는 거에요”

안산시 단원구에 거주하는 고려인 3세 최 야나씨(41ㆍ여)는 “한국이 좋다. 한국어를 열심히 배워 쭉 한국에 머무르고 싶다”며 “이방인이 아닌 한민족으로 사는 새해 소망을 꿈꾸고 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러시아에서 나고 자란 최 씨는 지난 2009년 지금의 남편 문 알렉산더씨(42)를 만나 가정을 꾸렸다. 현재 두 딸이 가족 구성원의 한축을 담당하고 있다. 첫째 문 율리아양(15ㆍ관산중)과 둘째 문 슬라바양(11ㆍ선일초)이다. 두 자녀는 고려인 4세다.

이들은 지난 2017년 부푼 마음을 안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최 씨는 “마음 한켠 한국에 대한 묘한 끌림이 있었다. 한국행을 결심할 당시 러시아 생활에 지치기도 했고, 한국이라면 지금보다 조금이나마 나을 것만 같았다”며 “결론적으로 잘했다고 생각한다. 한국인들의 친절함과 교육 환경 등에 만족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 땅을 밟은 지 4년차를 맞은 최 씨는 두 자녀 모두 중학교와 초등학교에 진학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모습이 대견하다면서도 한편으로는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한국에 정착해 살면서 의사소통을 두고 오해가 생겨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 터진 코로나19 사태로 원격수업이 보편화되며 자녀들은 ‘언어의 벽’에 가로막혀 당장 수업을 따라가기가 급급한 상황이다.

최 씨는 “학교 수업이었다면 선생이나 친구들이 서로 도와가며 공부를 할 수 있었겠으나 지금은 아니다”며 “심지어 나 조차도 한국어에 미숙해 자녀들이 공부에 힘들어해도 도울 방법이 없다”고 토로했다.

또한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고용 충격이 일용직 노동자인 남편에게까지 미쳐, 쉽지 않은 한해를 보냈다.

그럼에도 최 씨는 새로운 한 해를 맞아 자신의 꿈과 소망을 풀어 놓았다. 그는 고려인 4세인 자녀들이 이방인이 아닌 동포로서 한국에서 꿈을 펼칠 수 있길 바란다고 기원했다. 최 씨는 “아이들이 예체능에 소질도 있고 관심도 많지만 코로나19로 문화센터나 체육관 등이 문을 닫자 갈 곳을 잃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새해에는 코로나가 발생하기 이전으로 돌아가 가족 모두 행복하게 지내기를 바란다”며 “아이들은 그저 한국에서 많은 친구들과 어울리며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어려서부터 춤을 좋아한 첫째 딸 문 율리아는 한류에 푹 빠져 가수 블랙핑크의 무대를 즐겨본다. 둘째 딸 문 슬라바는 활동적인 언니의 모습과 판박이다. 지난 해부터는 축구아카데미를 다니며 재능을 키우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주짓수에도 관심이 많아 주짓수 체육관을 다니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최 씨는 “한국을 사랑한다. 국적은 한국인이 아니지만,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는 사실에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며 “2021년에는 고려인에 대한 더 많은 관심과 배려가 있기를 기대해 본다”고 소망했다.

김현수ㆍ김은진기자 / 사진=윤원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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