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사는 데 앞을 보지 못하는 일처럼 어려운 일이 어디 있을까. 시각장애인에게 세상은 위험천만한 곳일 수밖에 없다. 길이란 길은 온통 어둠뿐인 데다가 곳곳에 장애물도 널려 있다. 이 동시는 시각장애인의 어려움을 체험하는 시간 이야기다. ‘안대를 하고/진우가 말하는 대로/진우가 이끄는 대로 걸음을 옮긴다.’ 앞을 볼 수 없으니 친구의 도움을 받으며 걸음을 떼어 놓을 수밖에. 여기까지는 그저 그렇고 그런 평범한 구절이다. 빼어난 시의 맛은 다음 구절에 있다.
‘나는 지금/진우 목소리가 아니라/진우 마음을 듣고 있다.’ 이 얼마나 깊고도 환한 울림인가. 길을 가는 것은 목소리가 아닌 마음이라는 것! 그건 곧 다음으로 연결된다. ‘믿으면/ 보인다.’ 시각장애인에게 ‘지팡이’(?)는 믿음 그 자체일 것이다. 지팡이를 믿지 못하면 어떻게 한 발짝이라도 뗄 수가 있겠는가. 믿음이 있기 때문에 앞이 어둠일지라도 내 몸을 맡길 수가 있는 것이다. 이 동시는 시각장애인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믿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우리 사회에 널려 있는 불신(不信)을 사정없이 내리치고 있는 것이다. 왜 서로를 믿지 못하느냐고 꾸짖고 있는 것이다. 참 아픈 시다!
윤수천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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