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합의했지만 범행 무거워 재판에 큰 영향 없을 듯"
열 살 조카를 수차례 폭행하고 물고문한 끝에 숨지게 한 이모 부부가 3차 공판을 앞두고 피해아동의 친모와 합의했다.
딸을 죽음에 이르게 한 가해자와 합의해준 친모의 결정에 의문이 제기되는 가운데 법조계에선 이 합의가 재판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수원지법 형사15부(부장판사 조휴옥)는 살인 및 신체적 학대 혐의로 구속 기소된 무속인 A씨(34ㆍ여)와 국악인 K씨(33) 사건과 관련, 피해자 측이 지난달 31일 합의서를 제출했다고 6일 밝혔다. 합의서를 낸 사람의 이름은 피해아동의 친모 H씨와 일치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A씨 부부는 지난 2월 용인시 처인구 자택에서 열 살짜리 조카의 손발을 묶고 물을 채운 욕조에 머리를 집어넣어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자신들이 키우던 개의 대변을 핥게 하고 이를 동영상으로 촬영하는 엽기 행각까지 벌였다. 지난 4월29일 이 사건 2차 공판에서 확인된 사실관계를 보면 사건 당일 피해아동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물고문은 50분 넘게 지속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앞서 수원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부장검사 김원호)는 이들 부부가 최소 지난해 12월부터 학대를 시작했으며 피해아동이 숨진 날에도 3시간에 걸쳐 폭행한 사실을 밝혀냈다. 검찰 관계자는 “숨진 피해자의 식도에서 물고문 도중 빠진 것으로 보이는 치아가 나왔으며, 그만큼 잔혹한 행위가 이뤄진 것을 뜻한다”며 “살인에 대한 미필적 고의를 인정하기에 충분하다고 봤다”고 말했다.
A씨는 현재까지 25건, K씨는 14건의 반성문을 법원에 제출했다. 합의 이후엔 각각 2건, 1건씩 반성문을 냈다. 반면 이들을 엄벌에 처해달라는 시민들의 진정서 및 탄원서는 지난 4일까지 415건 접수됐다.
친모 H씨가 합의에 이른 경위는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언니 부부의 형량을 줄여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선고 공판에서 판결을 내리기 전 양형기준에 ‘피해자 측과 합의 여부’를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하기 때문이다. 친모 역시 학대 사실을 알고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아 방임 혐의를 받고 있으나, 피해아동의 법적 대리인으로서 합의를 맺는 것엔 법리적 문제가 없다.
검찰 출신이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초대 처장 후보로 이름을 올렸던 장성근 변호사는 “법적 문제는 없지만 자녀를 죽게 한 범인과 합의를 맺은 결정엔 비난 여론이 거셀 전망”이라며 “합의는 ‘형량 감경’을 위한 의견 표명으로 작용하는데, 이 사건의 경우 범행 정도가 무거워 재판부에 큰 영향을 주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어 “판결은 전적으로 재판부의 재량에 달린 일이며 판사들이 이 사건에 대한 국민적 여론, 선처와 엄벌에 따른 사회적 효과 등을 깊이 고려하고 판단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수원지법 관계자는 “일반적인 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합의가 이뤄지면 양형사유에 중요한 참작 요소가 될 수 있다”면서도 “현재로선 양형기준 판단에 대해 확답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합의내용은 공판에서 밝혀질 전망이다. A씨 부부에 대한 3차 공판은 오는 8일 수원지법에서 열린다.
한편 피고 A씨는 지난 2019년 8월 자신의 아버지를 엄벌에 처해달라는 글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린 바 있다. A씨의 60대 아버지는 같은해 3월 전북 군산에서 다섯 번째로 재혼한 아내를 때려 살해한 뒤 논두렁에 유기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현재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당시 A씨는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모진 학대를 받아왔다고 호소하며 방송에 출연, 부친의 만행을 고발하기도 했다.
장희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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