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을 걸고 탈북했던 30대 남성이 한국에 머물면서 북한의 지령을 받아 움직이다 적발(경기일보 6월30일자 7면)됐다. 법원은 그에게 실형을 선고했지만, ‘간첩’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하며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함경북도 온성군에서 태어난 A씨(33)는 지난 2007년 10월 두만강을 건너 탈북했다. 이듬해 중국 등을 거쳐 국내로 입국한 그는 오산지역 휴대전화 부품 공장에서 일하거나, 대학을 졸업한 뒤 성남의 한 병원에서 물리치료사로 근무하는 등 무난하게 ‘남한 생활’에 적응하는 듯했다.
그러나 탈북 10년째가 되던 지난 2018년 2월 북한에 있는 친형으로부터 “너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는 연락을 받으며 변화가 찾아왔다. 그는 몰래 구한 중국 휴대전화로 북한에 있는 형과 계속해서 연락을 주고받는 상태였다.
A씨는 그 ‘사람’이 인민군 소속이라는 걸 알면서도 접촉을 시도했다. 중국으로 건너가 북한 접경지역에서 만난 사람은 보위국 소속 B 지도원. 보위국은 과거 보위사령부로, 북한에서 군 내부 통제는 물론 인민보안성을 비롯한 기관 활동까지 감시ㆍ통제하는 곳으로 알려졌다.
B 지도원의 요구사항은 탈북 브로커와 그들이 ‘줄’을 대는 경비대 군인에 대한 정보, 북한의 자료를 미국 등에 넘기는 사람들에 대한 정보 등이었다. A씨는 형의 안위를 지켜주는 조건으로 제안에 응했으며, 다시 국내로 잠입했다.
이때부터 A씨는 수년에 걸쳐 국제통화, 위챗(Wechat) 메신저 등으로 북측과 연락했다. 보위국 소속 지도원을 큰아버지, 삼촌 등으로 부르며 지령 이행 상황을 보고하기도 했다.
A씨는 북측 지령에 따라 탈북을 시도하려는 북한 주민들의 정보를 보위국에 넘기거나, 북한에서 요구한 탈북민의 소재를 추적했다. 이 과정에서 탈북 브로커를 이용하기 위해 해당 브로커에게 탈북 대금을 지급하지 않은 탈북민의 재북 가족을 협박하기까지 했다.
검찰은 당초 A씨에게 간첩 혐의까지 적용ㆍ기소했으나, 법원은 간첩 활동에 대해 일부 무죄라는 판단을 내놨다. 그가 빼돌린 정보들이 국가 안보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하지 않았다고 봤기 때문이다. 또 A씨가 북에 남은 가족의 안위를 걱정했다는 점을 참작, 처단형의 최소치에 해당하는 징역 3년 6월을 선고했다.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센터장은 “통신으로 정보가 오고가는 건 사실상 막기 어렵지만, 대가성을 갖고 대북 정보를 주고받는 건 분명히 옳지 않다”며 “간첩 행위에 대해 규정하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데, 국가 안보를 우선하는 게 아닌 정치진영의 논리로 비화하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한편 경기남부경찰청 안보수사대는 국가보안법상 특수잠입ㆍ탈출ㆍ목적수행 등 혐의로 지난해 말 A씨를 붙잡아 검찰에 구속 송치했다.
양휘모ㆍ장희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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