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지
최영재
내 손으로 밥 먹고
내 발로 걸어 다니니
고맙지.
새소리 들으며 가을볕 쬐고 앉아
노란 은행나무 바라보니
고맙지.
-하하하, 할머니
그까짓 게 뭐가 고마워요?
너의 존재만으로도 고맙지
가을볕 아래 할머니와 손자가 나란히 앉아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뜬금없이 할머니가 뚱딴지같은 말을 한다. 내 손으로 밥 먹고 내 발로 걸어 다니니 고맙다고. 그러자 듣고 있던 손자가 깔깔대며 할머니를 쳐다본다. 그까짓 게 뭐가 그리 고맙냐고. 그럴 만도 하다. 손자가 할머니를 이해하기에는 너무도 어리다. 할머니는 말없이 손자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고맙다는 말을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면서. 옆집의 누구는 다리가 아파서 꼼짝 못하고, 누구는 병원에 누워 있는데, 자기는 손수 밥을 먹고 바깥나들이까지 하니 고마울 수밖에. 그뿐인가? 귀도 멀쩡해서 아직은 새소리를 들을 수 있고, 눈도 아직은 괜찮아서 은행나무의 노란 잎까지도 볼 수 있으니 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하냐고. 백번 옳은 말이다. 나이 들어 보면 자기 몸 하나 추스르는 게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그러니 고마울 수밖에. 제 발로 걸어 다니는 것 하나만으로도 축복이요, 인생 만세다. 이 동시를 쓴 시인의 나이도 어느새 칠십을 훌쩍 넘겼다. 이번에 펴낸 동시집 『고맙지, 고맙지』는 세월 속에서 여문 생각이 밤알처럼 불거져 나와 읽는 이의 마음을 흐뭇하게 한다.
윤수천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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