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엔 방호복 입고 속옷까지 땀이 젖어도 겨울 한파 속에 핫팩 꼭 쥔 채 시민들 보호 쉴틈없는 전화벨로 화장실 가는 것도 ‘사치’, 3년간 버틸 수 있던 힘은 따뜻한 말한마디 규제 완화됐지만 아직도 ‘기약 없는 사투’...“새해엔 마스크 훌훌 벗고 웃는 날 꿈꿔”
아직도 긴장의 끈 꽉 묶고 ‘코로나 막아라’ 동분서주
대한민국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발생한 지 3년이 넘었다. 미세먼지를 차단하기 위해 착용했던 마스크는 바이러스 차단용으로 아예 일상이 됐고 생활패턴도 완전히 변했다. 코로나19 감염 확산이 정체기를 맞으면서 거리두기 전면 해제 등 코로나19로 인한 규제가 서서히 없어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확진자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어 코로나19 종식이 언제인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여전히 코로나19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방역 최일선에서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코로나19 사태가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 중인 남양주시보건소를 찾아 그들의 변화된 하루를 돌아봤다. 편집자주
코로나 최전선 남양주시보건소 직원들의 하루
■ 여전히 코로나19와 사투 중...‘웃음’ 무기 장착
지난해 12월14일 오전 8시30분께 남양주시보건소. 보건소 앞에 위치한 선별진료소에서 근무하는 인원들은 겨울 한파 속에서도 상·하의 모자가 붙어 있는 일체형 방호복과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조금이라도 노출될까 온몸을 꽁꽁 싸맨 상태였다. 겨울철 선별진료소 필수템인 ‘핫팩’을 두 손에 꼭 쥐고 말이다.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이들은 이전과 달리 밝게 웃으며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검사 대상자가 밀접접촉자로 바뀌면서 검사자가 이전에 비해 많이 줄었다.
지난 여름에는 코호트 격리시설에 점검을 가던 한 직원은 무더운 날씨에 방호복까지 입어 기절해 쓰러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정신을 차린 뒤 병원으로 가지 않고 격리자들을 위해 곧바로 점검에 나섰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선별진료소 근무자 김아연씨(가명)는 “코로나19가 심할 때는 하루에 1만명 가까운 사람들이 오면서 몸과 마음이 지쳐 웃음을 잃었었다”며 “지금은 근무자끼리 서로 웃으며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여름에 더위를 막기 위해 입고 있는 조끼 안에 아이스팩까지 넣는 등 안간힘을 썼지만 속옷까지 땀으로 젖어 옷을 최소 두벌씩 챙겨왔었다. 지금은 한 벌만 챙기고 있다”며 웃음지었다.
출근시간인 오전 9시 보건소 2층 보건정책과에 들어서자 책상 30여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사무실에 보건소 직원들이 빼곡히 앉아 있었다. 이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조금이나마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지난 여름 ‘잃어버렸던 웃음’을 머금고 말이다.
코로나19 델타 변이, 오미크론 사태 당시 이들은 일 평균 2천여건의 끊임없이 울려대는 전화벨로 쉴 틈 없이 확진자와 밀접촉자들의 동선을 파악하면서 방역 지침과 확진자 노선 공개 요구 등 쏟아지는 민원에 진땀을 흘려야 했다.
민원 전화 대응, 건강관리 키트 제작 및 배포, 소독, 폐쇄회로(CC)TV 영상 판독, 확진자 이송 및 관리, 심지어 실시간 확진자 알림문자를 전송하는 것도 모두 보건소 직원들의 일이었다.
당시 보건소 직원들이 꼽은 가장 힘든 일은 바로 동선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들어야 했던 민원인들의 폭언이다. 직원들은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동선 파악 과정에서 들은 폭언에 남몰래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고 한다.
역학조사팀의 한 공무원은 “힘들어도 항상 밝은 목소리로 민원 응대를 하고 있었는데 따뜻한 말 한마디가 아닌 욕설이 들려오면 마음에 상처를 입었었다”며 “지금은 많이 줄어든 통화량에 민원인 한 명 한 명에게 좀더 집중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 이제 식사는 식당에서...컵라면 ‘그만’
예전보다 여유로운 오전 일과가 끝나고 시곗 바늘은 정오를 가리켰다. 직원들은 점심을 먹기 위해 구내식당으로 향하거나 보건소 인근 식당 메뉴를 알아보고 있었다. 사실 이들에게 ‘점심시간’이란 개념이 돌아온 지는 얼마되지 않았다.
지난해 상반기 직원들은 구내식당이 바로 옆 건물임에도 책상에서 컵라면이나 물 한 잔으로 끼니를 해결하곤 했다. 라면을 먹던 중 민원 전화가 걸려오면 먹다 남은 컵라면은 퉁퉁 불어 버리기 일쑤였다.
끊임없이 걸려오는 전화에 화장실을 가는 시간조차 ‘사치’라고 생각했었다고 한다.
특히 아이가 있는 엄마 직원들은 잦은 야근에 아이와 일주일에 밥 한 끼 먹는 날은 특별한 날이었다. 당시 보건소 엄마들은 ‘나쁜 엄마’였다. 그러나 현재는 ‘정시퇴근’ 후 아이와 함께 저녁을 먹는다.
직원들은 새삼스레 가족과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한 일이라고 느낀 것이 이때부터다.
■ 꿈만 같던 일상퇴근이 현실로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바쁜 오후 일과가 끝나고 오후 6시를 넘어가자 직원들은 삼삼오오 사무실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꿈에만 그리던 일상퇴근이다.
직원들과 함께 보건소 총 책임자인 정태식 보건소장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만 코로나19가 발생한 뒤 설치했던 간이침대는 아직 그대로였다.
보건소 직원들은 이제 퇴근 후 약속을 잡을 수 있다. 지난 3년간 개인생활마저 포기해야만 했다. 가족, 친구 등도 만날 수 없었다. 명절 때도 고향집이 아닌 사무실로 출근했다. 감염병 관리 최전선에 있는 이들 중 한 명이라도 확진되면 감염병 대응 업무가 마비되기 때문이다. 지금은 퇴근하면 ‘이제 뭐하지’라는 소소한 여유를 부린다.
지난 3년 동안 자신의 생활마저 포기하는 이들이 그래도 버틸 수 있는 힘은 동료, 시민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 진심이 담긴 소박한 감사의 선물이었다.
추울 땐 따뜻한 핫팩, 더울 땐 시원한 냉커피, 위로의 손편지 등 이들이 최전선에서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일 때 받은 시민들의 감사의 마음은 다시 힘을 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 규제 완화됐지만 아직도 긴장의 끈 ‘꽉’
지금 이 시간 거리두기가 전면 해제되는 등 규제가 완화된 상황에서도 보건소 직원들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교대로 간이침대에서 잠을 청하며 혹시나 모를 응급환자를 위해 24시간 야간·주말 근무를 실시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의 최일선에 놓인 보건소 직원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끝으로 보건소 직원들에게 ‘하루’란 무엇인지 묻자, 직원들은 이같이 답했다. “그저 코로나19 감염 예방에 최선을 다하는 시간”이라고 입을 모았다.
코로나19와 기약없는 사투를 벌이고 있는 98명의 남양주시보건소 직원들. 이들은 내일도, 그 다음 날에도 코로나19와 묵묵히 싸우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23년 계묘년에는 간절하게 그리워했던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현실이 되길 간절히 바라며 오늘 하루도 코로나19 방역 최일선엔 그들이 있다. 남양주=유창재·이대현기자/사진=조주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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