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을 위한 미완성’.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이 지난달 3일 오후 1시 경기상상캠퍼스에서 진행한 ‘친일잔재 상징물 안내판 설치 사업 성과 공유회’에서 도출된 사업의 평가와 앞으로의 방향은 이렇게 종합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일제·친일잔재 청산을 위해 2019년부터 경기도와 도의회가 보여온 의지와 사업 추진을 높이 평가하며, ‘경기도 친일문화잔재 조사·연구 용역’ 2차 조사연구를 통한 친일잔재에 대한 더욱 치밀한 목록화 작업과 안내판 등 현재까지 설치된 결과물을 역사적으로 더 활용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 경기도와 도민의 친일잔재 청산 의지 수준 높아…이제 심도 있는 후속 조치 필요한 때
박환 수원대 사학과 교수는 ‘경기도 친일 청산의 의미와 방향-기억과 기념’을 주제로 한 기조발표에서 “친일청산은 반전운동”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친일청산을 하는 기본적인 이유는 우리가 역사적인 삶을 살기 때문”이라며 “우리의 삶이 역사의 한 부분이기에 어떠한 과오가 있다면 역사 속에서 모든 게 기억되고 심판 받는다. 친일청산의 궁극적 방안은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반대와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화, 현재 우리가 사는 시대에서 외치는 반전이 중요하다”고 포문을 열었다.
이어진 주제발표에서는 경기도 친일잔재 청산 사업에 관한 과제와 앞으로의 방향 등이 논의됐다.
강진갑 역사문화콘텐츠연구원장은 ‘경기도 친일문화잔재 조사·연구 용역 결과 보고서’ 보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보고서의 비판적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강 원장은 “현재 친일잔재 청산에 대해 공감대가 부족한 측면은 공청회를 열어 의견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고, 현재 나온 내용에 대해 논리적으로 정리될 부분들도 있다”면서 “건축물에서는 ‘일제 잔재의 범위 설정에 따른 문제’와 ‘일제 잔재 중 시설물의 양면성’을 고려해 일제 잔재라는 측면과 산업화 때 우리에게 유용했던 수단이라는 두 가지 시선을 다 밝힐 필요가 있다. 일제 강점기 용어에 대한 무조건적인 배척도 다시 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도와 재단이 2021년부터 2022년까지 도내 17곳에 설치한 ‘친일잔재 상징물 안내판’의 다양한 활용 방안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동근 수원박물관 교육홍보팀장은 ‘친일안내판 추가 설치의 전망과 개선방향’에서 “경기도 친일문화잔재 조사·연구 용역에서 1차 조사연구가 이뤄진 이후 나온 목록을 내부적, 학술적으로 정리하는 추가적인 용역 조사가 이뤄지지 못한 점이 아쉽다”면서 “다만 안내판 설치 과정에서 해당 인물이 아직 논란이 많아 지자체의 동의를 얻기 어려웠음에도 17개나 설치한 것 자체가 굉장히 큰 의미가 있다. 경기도가 2019년 기획하고 현재 2023년 성과공유회까지 이어온 만큼, 경기도의 친일청산 의지가 대한민국을 바로 잡는 초석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친일잔재 청산의 타 지역 사례와 시사점’에서 “2019년 3.1 운동 100주년을 맞아 지자체가 나서서 일제잔재 청산을 하겠다고 나섰지만 경기도가 앞서나가고 있다. 조사 연구 결과는 경기도를 제외하곤 아직 아무 곳에서도 올려놓고 있지 않고 비공개를 하고 있다”며 “이 지점에서 경기도가 사회적 논의를 함께 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아쉬운 점은 사업이 개별 부서에 산발적으로 분야마다 부서가 흩어져 있어 집중이 안된다는 점”이라고 짚었다.
■ 안내판 활성화 위해 ‘친일로드’ 등 다크투어리즘, AI 활용 등 고민해야
특히 전문가들은 현재의 연구 성과들을 토대로 지속적인 콘텐츠 제작과 확산, 이를 통한 사회적 환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자료화와 교육계 연계 등을 통해 2, 3차 사업이 진행되면 자연스럽게 인물에 대한 공과 과가 인식되고, 이런 논의가 확산되면 자연스럽게 친일잔재 청산의 범위가 넓어질 것이란 얘기다.
스토리텔링과 아카이브 구축 등 ‘친일로드’ 구축해 역사 콘텐츠, 교육 콘텐츠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동근 팀장은 “안내판 설치 사업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스토리텔링과 아카이브 구축 등으로 ‘친일로드’ 구축해 이러한 의미를 확산하고 이를 통해 도민들의 역사 의식을 고취시키는 게 중요하다”면서 “유튜브 영상 제작이나 QR코드 활용 등 현재까지 잘 구축된 안내판을 더 활성화 할 수 있는 지점을 충분히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한 전제 조건으로는 ▲지자체 차원의 항일과 친일교육에 대한 공감대 형성을 위한 공청회 진행 ▲친일잔재 목록의 전문적인 2차 추가 조사를 주장했다. 박환 교수 역시 현재 설치된 안내판에 대해 ▲현재 아날로그 형태인 안내판에 대한 시대 변화 반영 필요 ▲문구에 대한 심도있는 분석 등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친일 범주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 제시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박환 교수는 “친일행적에 대한 끊임없는 자료 발굴이 이뤄져야만 한다. 친일과 관련된 기초적인 작업으로 친일청산의 자료 발굴은 청산의 또 다른 첫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프랑스에서는 독립 운동가들의 피해, 가족의 고통에 관심을 갖는다. 제일 중요한 건 객관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점”이라며 “친일 조사가 일회성으로 끝날 경우 친일이라 하기 어려운데 친일이라 규정 짓는 사례 등이 발생할 수 있다. 객관적이고 지속적인 연구, 이를 위해 경기도민들의 공감대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을 경우 때에 따라 극단적으로 마녀사냥식의 친일 규정, 경기도민 갈등 조장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특히 전문가들은 경기도가 지난 2019년부터 진행해 온 친일잔재 청산 사업이 도민의 공감대를 얻고, 교육 등에 제대로 활용되기 위해서는 사업의 확산을 위한 도와 재단의 의지를 입을 모아 당부했다.
이학성 경기문화재단 정책사업팀장은 “앞으로 친일잔재를 발굴해 후세에 역사를 제대로 교육하고 친일잔재 청산의 계기가 확산되도록 유관기관과 협력하고 노력하겠다. 친일잔재 청산을 위한 다양한 사업과 활동에 더 많은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한편 경기도는 2020년 4월 ‘경기도 친일문화잔재 조사·연구 용역’을 시행하고 그 성과물을 아카이브 포털서비스를 통해 도민 누구나 확인할 수 있게 했다. 경기도의회 역시 2021년 5월 ‘경기도 일제 잔재 청산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일제잔재 청산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면서 일제·친일잔재 청산을 위해 힘쏟았다.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총 29개 지방자치단체와 광역교육청에서 일제·친일잔재 청산 관련 조례를 제정한 가운데 조례 제정 이후부터 현재까지 일제잔재 청산 사업을 지속한 지방자치단체는 경기도가 유일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인터뷰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
역사 사실 점검 인프라 구축 ‘친일청산’ 공감대 확산 노력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경기도 친일문화잔재 조사·연구 용역’에 참여하며 경기도의 일제잔재 청산 의지와 함께 해 왔다. 그는 “친일잔재 청산은 구성원들이 한 시대를 기억하는 공통의 기억에 대한 부분”이라며 “적은 예산이라도 사업을 지속적으로 이어가 이러한 의지를 확산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Q. 안내판 설치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들었다.
A. 친일잔재 상징물의 소유자는 대부분 공공기관이었다. 해당 면사무소와 시, 학교 등에 안내판을 설치하겠다는 공문을 보냈지만 회신 온 곳은 2년 동안 손에 꼽혔다. ‘홍난파 홍역’을 20년간 치르면서 친일에 대한 논의나 인물의 역사적 과오 등을 점검하는 인프라가 구축돼 있던 수원을 제외하고 다른 지역은 이러한 논의의 공감대가 부족했다. 지속적으로 설득하는 시간이 꽤 걸렸다.
Q. 경기도 친일잔재 청산 사업을 함께 하며 연구를 수행해왔다. 경기도의 친일잔재 청산을 평가한다면.
A. 친일잔재 청산에 필요한 추진력은 단체장의 의지와 지역민의 지지, 중앙정부의 지지, 사회적 배경이 필요하다. 경기도가 처음 친일잔재 청산을 시작했던 2019년에 다 맞아 떨어졌다. 의지도 강했다. 안내판 설치 사업 역시 2021년 진행되는 일몰 사업이었지만 이경혜 경기도의원이 의미있는 사업인 만큼 지속적으로 이어가야 한다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도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의원들께서도 모두 힘써주셔 한 차례 더 사업이 이어졌고 성과공유회를 끝으로 마무리됐다. 지금은 여러모로 상황이 쉽지 않다. 예산이 줄어들어도 사업을 지속적으로 이어가는 게 중요하다.
Q.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나.
A. 사실 많은 분들이 안내판의 존재 유무에 대해 잘 모른다. 확산하고 홍보하려면 또 다른 길을 만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친일잔재 청산은 이대로 끝나선 안 된다. 이번에 진행한 용역은 2019년 6개월 동안 9천만원의 예산으로 31개 시군을 조사한 거다. 저예산으로 꽤 두꺼운 자료로 나왔지만 빈틈이 없다고 할 수 없다. 더 조사하면 우리가 이 친일잔재를 어떻게 활용할것인가에 대한 고민에 다다를 수 있다. 또 친일잔재의 상당수는 비석이다. 비석의 해석이 되지 않았는데 탁본하고 아카이빙해서 자료로 남겨야 한다. 2차 사업이 필요하다.
Q. 친일잔재 청산이 지금도 필요한 이유는.
A. 공동체에 대한 보존, 사회통합 때문이다. 한 사회가 유지되려면 공통의 기억이 있어야 한다. 친일파에 대한 기억이 다르다면 사회 통합 역시 안 된다. 지속적으로 설득하고 이러한 공감대를 확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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