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예방’ 기업 스스로 위험성 평가...실효성 지적 지자체 감독 필요하지만 조례 갖춘 시군 11곳에 불과 “안전은 노동부 권한” 자체 대책 부족
16. 중대재해로드맵 '셀프 규제' 불과…경기도 시군 70%는 산재예방 조례 無
올해 5월1일 근로자의 날이 제정된 지 50주년이 되는 해다. 그러나 근로 현장의 사건·사고는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다.
정부는 이번 달부터 중대재해 감축을 위해 기업의 규제를 강화한 ‘위험성 평가’를 시행한다는 방침이지만, 전문가들은 이 평가가 기업들의 ‘셀프 규제’에 그칠뿐이라는 우려를 내놓는다.
기업의 관리·감독을 위해선 지자체의 역할도 필수적이나, 경기도내 시·군 70%가 산재 예방을 위한 조례조차 제정하지 않는 등 대책 마련에 손을 놓은 모양새다.
■ 자율 규제 강조된 ‘위험성 평가’…결국 ‘나 홀로 규제’
30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해 11월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발표한 바 있다. 이 로드맵 안에는 기업 스스로 유해·위험 요인을 파악해 개선하는 ‘위험성 평가’를 의무화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간의 사후적 규제와 처벌 중심이었던 정책을 ‘자기 규율 예방’ 체계로 전환, 오는 2026년까지 사고 사망 만인율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0.29‱)으로 줄이겠다는 취지다.
그동안 위험성 평가는 위험성 산정 방식이 복잡하고 어려워 ‘현장에서 실적용이 어렵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에 정부는 근로자 사망·부상·질병의 빈도와 강도를 계량적으로 추정하는 문구를 삭제하고, 체크리스트법 등 간편한 방법을 도입해 기업의 선택권을 높였다.
개정된 위험성 평가는 이번 달부터 시행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기업의 자기 규율이 강화된 위험성 평가가 결국 ‘셀프 규제’로 이어져 큰 효과를 내지 못할 것이라고 꼬집는다.
유성규 노무법인 참터 공인노무사는 “예산과 인력을 지닌 일정 규모 이상 기업들에겐 효과를 볼 수 있겠지만, 4대 보험료도 제대로 내지 못해 산재보험 처리조차 막는 영세 사업장의 경우엔 위험성 평가를 통해 자율 규제를 하고, 사고 발생 가능성을 줄인다는 게 매우 현실성이 떨어진다”며 “여전히 고용노동부 및 지자체의 직접적 감독과 지원이 필요하며, 기업 규모나 업종별 특성, 노동조합 가입 여부 등을 섬세하게 구분해서 위험성 평가를 적용해야 ‘셀프 규제’로 전락할 것이란 우려를 해소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지자체 책무 규정 2년 지났지만…31개 중 20개 시·군 조례 無
유 노무사의 말마따나 산업 현장에선 고용노동부와 지자체 등의 적극적 관리·감독이 필요하다. 그 맥락에서 산업안전보건법에 산재 예방을 위한 지자체 책무가 규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세월이 지나기도 2년, 경기도내 지자체의 약 70%는 관련 조례조차 마련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21년 5월 시행된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각 지자체는 관할 지역의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대책을 수립·시행해야 한다. 그간 정부만의 영역이었던 산업재해 예방 의무가 지자체까지 확대됐고, 각 시·군이 해당 지역의 주력 산업 등을 고려해 맞춤형 대책을 세울 수 있도록 활로가 뚫린 것이다.
그러나 현재 ‘산업재해 예방 및 노동안전보건 지원 조례’를 갖춘 도내 기초지자체는 31개 시·군 가운데 단 11개(35.5%)에 불과하다. 과천, 광주, 동두천, 성남, 수원, 시흥, 안산, 안양, 양주, 오산, 이천 등 11개 시·군을 제외한 나머지 20개 시·군은 아직 산재 관련 아무런 조례가 없다.
이에 경기도는 올해 안에 최소 25개 시·군이 조례를 제정하는 것을 목표로 지자체들을 독려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도 관계자는 “조례가 없으면 산재 예방 사업 진행을 위한 조직 구성이나 인력 및 예산 확보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며 “각 지자체가 조례 제정에 나설 수 있도록 꾸준히 설득하고 있다”고 말했다.
■ 산재 예방 조례 있어도…맞춤형 정책은 태부족
아쉬운 점은 산재 예방 관련 조례가 제정된 도내 11개 시·군 역시 자체적으로 시행 중인 산재 예방 대책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는 것이다.
일례로 각 시·군의 관할 지역 내 산재 예방을 위한 대표적인 정책인 ‘노동안전지킴이’ 사업을 들 수 있다. 경기도는 현재 예산 총 24억원을 바탕으로 각 시·군 예산의 절반을 보조한다. 시·군에서 자체 선발된 ‘노동안전지킴이’는 사업장의 노동 안전에 위해가 되는 요소들을 점검하고, 개선·지도·건의 업무를 수행한다.
조례를 제정·시행 중인 11개 시·군은 자신들의 대표적인 산재 예방 정책으로 ‘노동안전지킴이’를 내세우고 있으나, 사실 이 제도는 각 지자체에서 조례를 마련하기 전인 2020년부터 이미 시행돼 왔던 사업이다.
다시 말해, 도비 지원을 받는 노동안전지킴이 사업을 제외하고, 조례가 마련된 각 시·군에서도 지역 주력 산업에 맞게 맞춤형 예방 대책을 수립·시행 중인 지자체는 사실상 없다.
이를 두고 도내 여러 지자체들은 ‘산업 안전 관련 권한은 고용노동부에 있고, 산업 안전 전문성도 부족한 상황에서 노동안전지킴이 같은 경기도 지원 사업 외에 실질적으로 사업을 섣불리 펴는 것은 어렵다’는 입장을 한목소리로 냈다.
고용노동부나 경기도에서 관련 사업 추진 계획이나 가이드라인이 내려오면 본격적으로 구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도내 한 지자체 관계자는 “개정된 산안법에 따라 조례를 마련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전문성 등에서 고용노동부보다 부족할 수밖에 없다”며 “어떤 맞춤형 사업을 해야 할 지 고용노동부 등에서 안내하는 지침이 내려오면 이를 파악하고 관련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유성규 노무법인 참터 공인노무사는 “지자체가 산재 예방에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는 우리나라 고용 형태와 구조가 다변화돼 있고, 노동법만으로는 모든 근로자들을 산재 사고에서 보호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며 “법적 장벽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지자체가 산재 예방에 적극 관여할 때 모든 근로자들의 산재 예방에 효과적인 행정 서비스 전달이 가능해진다”고 밝혔다. K-ECO팀
※ ‘K-ECO팀’은 환경(Environment), 비용(Cost), 조직(Organization)을 짚으며 지역 경제(Economy)를 아우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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