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차 베테랑 씨름장 아나운서 임형숙씨 [화제 인물]

전문가 능가하는 해박한 지식·시원하고 명쾌한 중계로 팬사랑 ‘듬뿍’
“현장 멘트에 민감한 선수들 위해 공정한 중계 위해 계속 노력할 것”

국내 유일의 씨름전문 장내 아나운서인 임형숙씨가 수원 추석장사씨름대회에서 경기를 진행하고 있다. 황선학기자

 

“결승에 오른 태백장사 4회의 허선행 장사. 지난해 추석장사 주인공이죠.…(중략)태백장사 결정전은 5판 3선승제로 치러집니다.…(중략)허선행 선수 들배지기로 첫 판을 먼저 따냅니다.”

 

남성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지던 씨름판에서 전문가 못지 않은 해설과 화려한 입담을 곁들여 경기장을 찾은 씨름팬들의 이해를 돕고 귀를 즐겁게 해주고 있는 28년 차 국내 유일의 씨름 전문 장내 아나운서 임형숙씨(51·성남시).

 

지난 12일부터 17일까지 수원체육관에서 벌어진 ‘2023 추석장사씨름대회’에서 만난 임 아나운서는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추석 연휴와 겹치는 이유로 예년보다 2주 앞당겨 치른 대회 덕에 오랫만에 가족과 함께 명절을 보내고 며느리 역할을 하게 됐다고 즐거워했다.

 

교통방송 리포터를 하면서 기상 캐스터 준비를 위해 한국방송공사의 아나운서 아카데미를 다니던 중 당시 씨름 전문 캐스터인 지도강사 이규황 아나운서의 권유로 씨름과 인연을 맺게 됐다.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역동적인 스포츠 현장에 적합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그는 1995년 프로리그 한국씨름연맹 아나운서로 첫 발을 내디뎠다.

 

초창기에는 실수는 물론 ‘금녀의 벽’이었던 씨름장에서 원로들로부터 혼도 많이 나고 울기도 많이 했다고 한다. 자신은 공정한 방송을 했다고 생각하는 데 “여자가 그러면 안돼. 응원하는 목소리로 방송하면 쓰나”하면서 야단을 쳐 울면서 방송을 하는 등 힘든 시기를 보냈다.

 

하지만 공정한 방송을 늘 가슴 속에 새기며 인고의 시간을 보낸 임 아나운서는 경기 상황을 관중들에게 잘 전달하기 위한 기술과 용어 이해에 힘썼다. 매일같이 씨름경기 비디오 테이프를 돌려보며 배웠다고 한다. 한 원로 씨름인은 “임 아나운서가 웬만한 젊은 지도자들 보다도 더 기술을 잘 알고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고 귀띔했다.

 

출산으로 약 4년간 공백기를 가진 것을 제외하곤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 씨름대회의 진행을 위해 어린 두 자녀를 데리고 출장을 다니는 등 열정적인 시간을 보냈다. 보다 더 상세하고 재미있는 멘트 제공을 위해 선수들의 특성과 가족관계 등을 파악하다보니 이제는 웬만한 선수들의 가족사와 신변을 꿰뚫을 정도로 전문 씨름인이 됐다.

 

임형숙 아나운서는 “어린 선수들이 제 멘트를 듣고 힘이 돼 성장했다는 후일담을 들으면 큰 보람을 느낀다”면서 “IMF 사태로 인해 민속씨름이 고사 위기에 몰렸었다. 이 때 ‘모래판 영웅’인 이태현 장사와 최홍만 장사가 격투기에 진출해 얼굴에 멍이들고 피투성이가 된 사진을 접했을 때 가장 가슴이 아팠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내 멘트에 가장 예민하게 반응한다고 한다.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으려고 하지만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여전히 그렇지 못한 것 같다. 더욱 공정성을 기하고 팬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공부를 계속하겠다”고 덧붙였다.

 

민속씨름리그는 물론 각종 전국대회까지 1년 중 절반을 씨름판에서 보낸다는 임 아나운서는 “사람 신체 중에 목소리가 가장 늦게 늙는다고 한다”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씨름판에서 필요로 하는 한 오래 활동하고 싶다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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