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나의 회화 인생 30년이 되는 해다. 내가 살고 있는 수원보다 아이러니하게도 용인의 한국미술관에서 규모 있는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인근 도시에서라도 초대받게 돼 매우 고맙고 기쁜 일이다. 그림을 끄집어내 전시를 준비하면서 지난 30년의 묵은 그림들을 비로소 다시 보게 됐다. 30년 아카이브 중에서도 스케치 작품이 유독 많았다.
1천여점의 오래된 그림들이 하나둘 밖으로 나왔다. 이 그림들도 함께하려다 워낙 방대해 언젠가 스케치전만 따로 해봐야겠다고 생각을 고쳤다. 아내가 많이 아쉬워한다.
이 많은 그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또 다른 임무가 억누르고 있는듯하다. 살 날이 점점 줄어드니 더욱 현실로 다가오는 모양이다. 문득 2003년쯤으로 기억되는 이집트 여행이 생각났다. 거대한 룩소르와 카르나크신전의 석주, 오벨리스크에 감동했고 파라오의 미라를 보며 삶과 죽음뿐 아니라 죽음 이후의 세계도 성찰하게 됐다. 물론 영원히 살고 싶은 신앙적 기원에서 비롯됐겠지만 과학이 죽음 이후를 증명해주는 오늘날엔 남은 분들에 대한 책임과 부담을 정리해주는 게 더 중요함을 느낀다.
무엇이고 현재에 존재감이 있고 가치가 있는 것이다. 죽어서 조명된다고 해서 본인에게 무엇이 도움이 되겠는가. 그런데도 우리는 꿈꾼다. 오래된 내일의 추억과 화려한 부활의 노래를. 알랭 드 보통은 말했다. 예술은 경험을 기록하는 방식이라고. 우리는 모두 경험을 기록하고 그리다가 경험의 유산을 남긴다. 죽음 이후의 일마저.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