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죽동의 만석거공원은 수원시의 향토유적지로 1795년(정조19년) 축조됐다고 한다. 원래는 대유둔이라는 대규모 농장을 설치할 목적으로 조성한 일종의 담수호였다. 단순한 농업용수를 위했다기보다는 계획적 조경까지 해 아름다운 멋을 입혔다. 호수 가운데 섬을 조성한 것이나 호수 남단에 영화정을 세워 주변을 조망하게 한 것이 그 증거다.
가을이 익을 때마다 이곳에 왔다. 수강생들과 산책 겸 스케치를 위해서다. 따뜻한 볕을 쬐며 벤치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사색적이다. 단풍 든 나무들도 곱고 호수의 연잎도 미라처럼 쭈그러진 누런 연밥 줄기를 걸치고 있다. 이곳이 수원의 추팔경(秋八景)에 속한다는데 누렇게 익은 벼의 황금 물결이 이름 하여 석거황운(石渠黃雲)이라고도 불렸다니 만석거는 명실공히 가을 공원이다.
가을을 노래한 시는 참으로 많다. 시를 부르는 계절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가을을 가지고 있다. 덕수궁 돌아 정동길 가던 언덕길과 양지 쪽 집 뒤란에 붉은 홍시가 터지던 갑사 가던 길의 추억을. 그곳에서 속으로 삭였다. 지난 시간의 아픈 기억들과 바람같이 사라진 정한이 지기 시작해서다. 가을은 소리 없이 낙엽이 된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주신/겸허한 모국으로 나를 채우소서/가을에는/사랑하게 하소서/오직 한사람을 택하게 하소서/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김현승 ‘가을의 기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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