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섬 우편’ 자치사무냐, 국가사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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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복 인천 옹진군수

지난 4월 인천 옹진군 자월면에 속한 4개 섬(자월도, 대․소이작도, 승봉도) 주민들은 우편(택배) 사무의 갑작스러운 중단 소식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무리 발달된 스마트폰, 인터넷 세상에도 고령화가 심한 섬 지역 사람들은 우편물 수요가 높을 수밖에 없고, 더군다나 주로 농어업의 종사하는 지역경제는 우체국 택배 없이 꾸려가기가 쉽지 않다.

 

정보격차가 심한 농어촌, 특히 섬 지역에는 우편물이 소식꾼이고 우체국 택배가 곧 살림꾼인 셈이다. 민간 택배도 없지는 않지만 시간도 오래 걸리고 비싸 이용하기에 배보다 배꼽이 더 커 그야말로 언감생심이다. 사건의 발단은 우체국에 기간제로 근로 계약된 특수지 집배원들의 우편(택배) 수거 업무 보이콧이다.

 

좀 더 들여다보면 인근 덕적도에 소재한 덕적우체국이 자월면의 우편사무까지 함께 봐왔지만 소속 집배원들은 대가없이 자월면 우편사무까지 덤으로 수행해왔던 것이다. 애초에 자월면에 우체국이 없던 것이 화근이다. 주민들은 그간에도 덕적우체국을 경유하느라 우편 수·발신에 애를 먹었는데 업무 거부까지 겹쳐 생계까지 걱정할 처지에 놓였다.

 

다행히 지난 7일 자월면에도 우편취급국이 개국하며 그간 가슴 졸였던 주민들은 한시름 덜었다. 옹진군이 나서 우정사업본부로부터 우편업무를 위탁받아 설치한 것이다.

 

하지만 내면을 살펴보면 마냥 기뻐할 일만은 아니다. 우편취급국은 우정사업본부에서 위탁하는 순수 우편 업무만 취급하는 미니우체국이다. 운영의 주체도 국가가 아닌 지자체인 옹진군이 떠안았다. 군은 면소재지인 자월도에 우편취급국을 설치하고 인력을 채용했으며 나머지 3개 외곽 도서에는 군의 행정기관에까지 접수창구를 마련하고 인력도 추가 배치해야 한다. 국가의 사무가 아무런 비용과 인력 지원 없이 자치사무가 돼 버린 이상한 구조다.

 

본래 정식 우체국이 설치돼야 하지만 우정사업본부의 경제논리를 앞세워 국가가 자기사무로부터 도피한 모양새다. 비슷한 사례는 2021년 연평도에서도 발생할 뻔했다. 1962년부터 별정우체국으로 운영을 이어오다 2018년 일반우체국으로 전환됐던 연평우체국을 적자라 해서 우편취급국으로 축소하려다 주민들의 큰 반발로 철회했다. 이렇듯 섬 주민들은 시장논리에 맞서 도시주민들은 당연하게 여기는 권리까지 쟁취해야 하는 혹독한 현실에 내몰려 왔다.

 

우정사업은 전기, 수도, 가스, 철도같이 전 국민을 대상으로 보편적인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공익사업이다. 또 국방, 외교, 치안, 공원, 도로같이 누구도 소비 혜택에서 배제할 수 없는 공공재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이용에 차별을 받지 않아야 하며 누구보다 더 비싼 비용을 치러서도 안 된다. 우편법 제14조에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게 효율적인 전국 우편 송달 체계 마련과 공평한 요금 등 기본적인 우편역무 제공을 국가의무로 부과하고 있다. 법에서 규정한 국가의 의무가 현실에선 외면받고 무시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과기부와 우정사업본부는 되짚어 봐야 한다.

 

만약 대도시 중심지 한곳에 제공되고 있던 우체국 업무가 중단되거나 신도시에 우편취급업무가 배제될 때도 우정사업본부는 인력과 예산을 탓할 것인가. 우정사업은 여건이 열악한 도서벽지에 더 큰 관심과 배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시장논리에 사로잡혀 수익성만 좇는다면 민간기업과 다를 바 없으며, 신성한 국가의 의무를 저버린 결과를 초래해 나아가 국가의 존립 근간까지도 부정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기부와 우정사업본부는 섬 주민을 위한 보편적 우편역무 제공에 적극 나서야 하며 자치단체에 일부 역할을 부여하려면 합당한 소요예산과 인력을 지원해야 한다. 비용과 수익을 따져가며 경제논리에 더 이상 숨지 말고 국가기관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해 섬 주민들이 눈물과 차별 없이 공평하게 우편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지혜로운 통찰과 혜안을 보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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