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균의 어반스케치] 산토리니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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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 가을 고향길에 올랐다. 청주를 거쳐 보은 터미널에 도착했다. 그러나 상주행 버스는 막차뿐이었다. 막차는 두 시간 후에 있었다. 요즘 버스터미널은 대부분 폐쇄됐다. 승객이 없어 한두 명을 싣고 먼 길을 떠나기도 하는데 빈 차로 출발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지방인구의 감소와 버스를 이용하는 수요가 낮아진 탓이다. 친구에게 전화했다. 포도 농사를 지으며 이장까지 보는 친구의 구릿빛 목소리는 군더더기 없이 명료했다. ‘금방 갈게 기다려!’ 친구는 국가보다도 나은 나의 이동권을 보장했다.

 

그를 기다리는 동안 터미널 주위를 한 바퀴 돌아봤다. 시장 가판엔 잘 익은 대추가 수북이 쌓여 있었고, 터미널 맞은편엔 산토리니 호텔이 있었다. 문득 십오 년 전의 산토리니 여행이 생각났다. 푸른 바다 절벽 위에 하얀 벽과 파란 지붕이 있는 이야 마을은 동화처럼 아름다웠다. 에게해의 추억 너머로 강릉(안목)항의 기억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곳에 멋진 산토리니 카페가 그리스풍으로 변장해 있었다. 겨울 바다를 바라보며 좋은 사람과 따뜻한 커피 한잔을 나눴다. 맛이 아름다운 내면의 감성적 조형이라면, 그때의 커피 맛처럼 함께라는 의미를 대체할 고귀한 관계 항을 나는 아직 찾지 못했다.

 

친구가 왔다. 그리고 그는 내 이상의 고향 산토리니까지 성실히 운행했다. 이런 시의 지시처럼.

‘내가 행복했던 곳으로 가 주세요.’ -택시, 박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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