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균의 어반스케치] 가족 한담-용주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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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바람이 희뿌연 눈발을 뿌린다. 설 차례를 마치고 가족과 용주사를 찾았다. 산책도 하고 외식도 할 요량이다. 아들 내외가 왔고, 시댁을 다녀온 딸은 사위와 17개월 된 이란성 쌍둥이를 대동했다. 보행기에 아이들을 태우고 함께 경내를 돌아보니 마음결이 평온했다.

 

가족처럼 위안이 되는 공동체가 또 있을까. 불교에서는 전생의 원수였던 악연이 인연으로 맺어졌다고 했지만 어쩜 원수를 품고 사랑하라는 기독교적 수행의 의미와 상통할 것 같다.

 

며느리가 추천한 칼국수 집은 명절이라 붐볐다. 그런데 칼국수는 맛을 담기가 불편한 평범 이하였다. 투척된 해물의 오징어는 무척 질겼고 김치는 매워 먹을 수 없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최악이라고 짜증을 부렸다. 며느리는 당황했고 분위기도 가라앉았다.

 

부근의 커피숍은 조용하고 넓은 탁자가 있어 아이들과 함께하기에 좋았다. 신속히 분위기 반전에 노력했다. 아이들도 재롱을 떨며 부응했다. 사진도 함께 찍으며 일순 즐거웠다.

 

가족은 마주 바라보는 것보다 같은 방향을 함께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멸의 순간까지 서로를 지켜줄 불멸의 존재이므로. 고 최인호 작가가 가족을 주제로 샘터에 35년을 연재할 수 있었던 것도, 사소한 풍파가 잦은 우리 모두의 일상적 희로애락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며느리에게 삼가 고한다. ‘네가 권한 칼국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고 독특한 장르였어(오징어는 또 얼마나 부드럽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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