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균의 어반스케치] 낙수 소리-선교장 열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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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바다로 갔다. 평창의 후배 전시 관람 때문이지만 나선 김에 동해로 향한 것이다. 혼자 여행은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웅장한 설산을 바라보며 작가들과 동행하니 흥이 오른다. 오죽헌에서 초충도를 본 후 바로크 시대에 등장하는 최초의 서양 여성화가 젠틸레스키보다 신사임당이 앞선 시대에 활동한 사실에 놀랐다.

 

선교장 사랑채 열화당은 출판사 열화당의 모태로 경운궁의 정관헌에서 커피를 마시던 고종의 카페를 연상케 하는 테라스가 있다. 러시아 공사관에서 선물한 것이라고 하는데 녹색 지붕을 서양식 기둥이 받치고 있다.

 

선교장은 효령대군 11대손 이내번이 지은 99칸 사대부의 살림집으로 300년을 이어 온 한국 최고의 전통가옥 유형문화재이다. 우람한 소나무가 도열한 뒷동산과 입구의 활래정은 크되 넘치지 않는 소박함이 묻어난다.

 

성실한 이내번은 소금을 판 돈으로 영동지방을 개간해 농토를 농민에게 제공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상이다. 길게 늘어선 행랑채 추녀에서 흘러내리는 낙수의 영롱한 파열음을 듣는다. 낙수는 먼 세월을 거슬러 오르기도 하고 멍하니 생각과 시간을 멎게도 한다.

 

고드름 타고 흐르는 밤의 낙수 소리는 행랑채 묵객의 하룻밤 시조일까. 거친 겨울 바다를 바라본다. 밀려오는 파도는 가슴과 시각을 심호흡처럼 열어준다. 유리창을 통과한 바다를 투명한 소주잔에 담았다. 젊은 날의 꿈은 사라진다 해도 영광의 추억은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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