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대구간송미술관과 경기도박물관, 그리고 뮤지엄파크

이동국 경기도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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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엄은 유물창고가 아니다. 전시를 통해 유물의 사회적 가치를 창조하는 공장이다. 전시도 그냥 학예사가 작품을 늘어놓는 행위가 아니다. 학예사의 철학이 유물을 통해 전시되는 곳이다. 전시는 신규 모델의 자동차 출시와 같다. 대구간송미술관 개관전 ‘여세동보’가 한 달 만에 10만명의 관객을 훌쩍 넘기면서 대구문화를 넘어 대구시민의 삶 자체를 바꾸고 있다. 그 동인은 물론 40건, 97점의 보물이다. 이것은 간송 전형필과 위창 오세창의 컬렉션 위에 최완수 학파의 연구가 쌓여 사립의 대구간송과 공공의 대구시가 다시 합작으로 피워낸 100년의 꽃이다.

 

그러고 보면 뮤지엄의 성격도 수집→연구→전시로 포개지면서 진화하고 있다. 전시장에서 만난 혜원의 ‘미인도’만 해도 관객들로부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와 만나 문명의 동서를 넘어 시공초월로 대화하고 있는 지경까지 왔다. 유물의 존재 이유나 가치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렇게 보면 경기도박물관의 장한종 ‘책가도’와 청나라 보물 중의 보물인 낭세녕의 ‘낭견도’와의 동서 문명 대화도 늦었지만 당연지사다.

 

이런 맥락에서 여세동보는 전시를 넘어 상생모델의 사건이고 경기도박물관의 크나큰 타산지석이다. 망국기 간송의 필사적인 유물 컬렉션 정신만큼이나 기계시대 오늘날 유물의 진짜 가치를 각성하고 존중하는 대구시의 태도도 대단하다. 그 결과가 민관 합작의 대구간송인데 골자는 관은 하드웨어와 돈을 대고 민은 기획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파괴적인 가치창조 행정을 예술로 일으켜 낸 시발점이다. 사실 대구는 근대미술 발상지였지만 서울, 광주와 비교하면 문화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훈민정음은 논외로 하더라도 49건, 297점의 경기도박물관의 보물급 유물은 간송과 비등하다. 조선시대만 해도 간송의 겸재, 단원, 혜원, 추사의 걸작과 도박의 독보적인 초상화와 복식유물은 뮤지엄 각자의 정체성과 세계성을 각인시키고도 남는다. 하지만 경기도박물관은 이런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당장 대구간송과 같은 전시혁명을 일으켜내지는 못한다. 그 이전에 경기도박물관의 해묵은 선결과제가 있다. 지속적인 유물 구입과 깊이 있는 학예연구 수행이 그것이다. 컬렉션의 경우 고미술 값과 가치평가가 땅에 떨어진 지금이야말로 유물 구입 최적기임은 역설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국내총생산(GDP) 3만5천달러로 세계 10대 경제대국이고 그 선도가 경기도다. 더구나 간송은 망국이라는 암흑천지 시공에서 개인이 국가를 대신해 땅과 집을 팔아 유물을 샀지 않은가. 여기서 문제의 본질은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의식이 없다는 데 있다. 예술에 대한 투자는 경부고속도로와 차원이 다른 천년만년의 정신고속도로를 개통하는 행위다. 결국에는 경제와 정치 판도를 변화 도약시켜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하는 ‘정신 공간(Spritual space)’을 창출하는 행위의 시작이 컬렉션이다. 경기도박물관의 2024년 유물 구입비는 7천만원이다. 국립박물관 40여억원과는 비교 불가다. 국립박물관 역시 국가 위상에 비하면 400억원이 돼도 부족하다.

 

경기도박물관의 당면 과제인 경기뮤지엄파크 브랜딩작업도 결국 지속적인 유물 구입과 학예연구가 토대가 된 전시프로그램으로 완성된다. 경기도박물관의 유물이 어린이박물관에서 기획 전시되고 백남준의 비디오아트가 경기도박물관의 유불도(儒佛道)와 무(巫)를 주제로 한 유물과 격의 없이 만날 때 경기뮤지엄파크는 피가 돌면서 그 실체가 만천하에 저절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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