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며 읽는 동시] 겨울철새

겨울철새

                     이경화

 

벼를 베고 난 들판에

차디찬 바람 몰고 온

집 나갔던 기러기

떼로 몰려 와

흩어진 낱알 허겁지겁

먹고 있어요

염치는 있는지

여문 곡식 거둔 뒤에

몰래 들어와

살그머니

눈치 보며 먹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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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투데이

 

적막한 들판 반가운 손님

겨울 들판은 쓸쓸하다 못해 적막하기 그지없다. 곡식은 말할 것도 없고 들풀마저 떠난 허허로운 들. 여기에 찬 바람까지 불어와 냉랭하기만 들. 그러나 이 적막한 들판을 기다렸다는 듯이 찾아오는 반가운 친구들이 있다. 바로 겨울 철새들이다. 그들은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몰려와서는 한바탕 놀다 간다. 시인은 이 고마운 친구들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보듬어 안았다. 추수 끝난 빈 들판에 떨어진 곡식을 ‘훔쳐’ 먹는 그들을 나무라기는커녕 장난기 가득한 필치로 그려 놓았다. ‘염치는 있는지/여문 곡식 거둔 뒤에 몰래 들어와/살그머니/눈치 보며 먹고 있어요.’ 염치, 눈치란 말이 참 재미있다. 아니, 그 의미를 곱씹게 한다. 농사꾼이 거둬 가고 남긴 낱알을 주워 먹는 걸 염치로 아는 기러기가 우리네 인간보다 나아 보인다. 염치를 아는 이런 기러기에 비하면 우린 언제부턴가 참으로 염치없이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눈치도 마찬가지다. 어디 주위의 눈치 보며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되나. ‘부끄럼을 가르칩니다’란 소설이 있었다. 오죽했으면 그런 제목의 소설이 나왔을까 싶다. 올해는 제발 염치를 아는 우리가 됐으면 좋겠다. 여기에 주위의 눈치도 보며 사는 우리가 됐으면 참 좋겠다. 윤수천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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