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석가탄신일, 여기에 아버지의 기일이 겹친 날이다. 때마침 연휴라 딸과 외손주들이 내려와 함께 제사를 올렸다. 영문도 모르는 아이들은 상을 바라보며 우리를 따라 연신 절을 한다. 한 세대가 가고 오는, 세월이 이렇게 빠르다.
날씨도 궂고 어디 나들이 갈 처지가 아니므로 딴은 작업할 게 많아 집을 나선다. 날씨만 좋으면 함께 봄나들이라도 가고 싶은데 조그만 봉투만 식탁에 올려놓고 조용히 집을 빠져나온다. 봉투에 이렇게 썼다. ‘사랑하는 이한이, 이서야 어린이날을 축하한다. 무럭무럭 잘 자라거라.’ 이렇게라도 하고 나오니 다소 마음이 놓인다. 딸에게 문자를 보냈다. ‘넣어 둔 용돈으로 아이들과 쇼핑하고 장난감이라도 사 주렴, 미안하구나.’
힘든 육아에 피아노 독주를 앞둔 딸이 과제처럼 엄습한 일들로 매우 피곤할 것 같다. 부모 마음도 다를 수 없다. 천천히 세류동 길을 걸어가는데 어린이집 앞에 ‘어린이날을 축하해요’라는 예쁜 현수막이 걸렸다. 지나가는 사람이 중요한 날이나 계절마다 바뀌는 이 어린이집의 멋진 그림에 흐뭇해할 것 같다. 다시 수원천을 걸으며 나날이 푸른 버들잎과 활력 있는 냇물을 바라본다. 지나치기엔 너무나 아까운 시절이다. 이 봄에 운명하신 부모님의 복받치던 슬픔을 건너 새싹 같은 아이들이 자라난다. 희망이요 기쁨인 어린이가 가장 아름답다. 꿈을 이을 미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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