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덕진산성(德津山城)'
바람과 '덕진산성(德津山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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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녁에서 불어 오는 높파람은 역시 위대했다.

어쩌면 수세기 동안 동아시아 최강의 제국의 영토에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힘차게 일어나 백두산에서 거칠게 포효한 뒤 두만강과 압록강 등을 건너 한걸음에 달려왔을….

한겨울 야트막한 뫼에서 맞이하는 그 바람에선 웬지 침엽수 냄새가 스쳤다.

파주의 덕진산(德津山). 얼뜻 들어서는 뫼의 이름이다. 돋보기를 들고 꼼꼼하게 찾아봤다.

하지만 2만5천분의 1로 축척된 지도를 아무리 찾아봐도 그런 지명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래서 ‘덕진(德津)’이란 나루 이름으로 조합해 다시 시도했다.

그래도 마찬가지였다. 분명한 사실은 사료에는 이 두어가지 지명들이 모두 기록돼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 두 지명은 어디에 있을까? 혹시 아틀란티스처럼 환상의 섬일까? 아니면 뫼와 나루 기능을 갖춘 뭐 그런 곳일까?

반나절을 그렇게 방황하며 찾은 곳은 뜻밖에도 반세기 동안 철저하게 사람들의 발길이 통제되고 있는 민통선 안에 차분하게 앉아 있었다.

2008년 1월26일 오후 3시께. 파주시 금촌읍에서 선유리로 나와 통일로를 따라 20여분 남짓 달리다 거대한 바리케이드가 앞을 가로 막았다.

통일대교 입구였다.

그곳에서 초병들에게 신분증을 제시한 뒤 수속절차를 밟았다.

꼭 외국으로 들어가는 국경선을 통과하는 것 같았다.

꼬박 반시간이나 걸렸다.

그렇지 않아도 계절이 계절인만큼 썰렁한 아스팔트 도로가 휑하게 비어 있었다.

30여분을 달려 말라 비틀어진 덤불꼭두서니 사이로 가람이 내려다 보였다.

그리고 한켠으로 석성이 고개를 내밀었다.

파주시 군내면 정자리 산 13.

덕진산성이 2천년의 세월을 밀어 버리고 이방인들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고구려였다.

그곳으로 가는 여정은 만만찮았다.

음력으로 섣달 초나흘이었으니 그럴만도 했다.

코끝으로 단 냄새가 누이처럼 달라붙었다.

그렇게 해야 조금이라도 안심이 되는 것처럼….

이곳은 천연적인 요새, 그 자체였다.

연천 쪽에서 내려오는 임진강은 걸쭉하게 앉아있는 초평도를 사이로 양 갈래로 흐르다 덕진산성 앞에서 만나 다시 서해로 흘러간다.

초평도 건너편은 장산뜰.

멀리 동쪽으로 파평산과 감악산이 내려다 보고 있었다.

탁 트인 들녘 한켠에 자리를 잡은 덕진산성.

이곳에서 연기를 피우면 순식간에 달음박질해 달려나갈 그런 거리다.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통용됐던 가장 빠른 통신수단이었던 봉화도 덕진산성에서 최고의 효과를 거두지 않았을까.

지금까지 본격적으로 조명되진 않았지만, 고구려의 위대함은 이처럼 효율적이고 현실적인 실용과학 측면에서도 짚어봐야 할 대목이었다.

덕진산성에서 내려다 보이는 임진강은 차갑게 얼어 있었다.

원래 만조시 서해의 소금기가 섞인 바닷물이 역류하기 때문에, 어지간한 추위에는 얼지 않는다는 강물을 이처럼 꽁꽁 묶은 추위도 위대해 보였다.

하얗게 응고된 빙판 위로 한마리 독수리가 저공비행을 하고 있었다.

부릅 뜬 눈매가 꽤 매서웠다.

이 녀석은 언제 몽골로 돌아갈까.

이 생각 저 생각에 고개를 갸우뚱거렸지만 맑은 결정체로 남아있는 잔설이 발길에 밟히는 소리만 “뽀드득”거렸다. /허행윤·김효희기자 heohy@kgib.co.kr
/사진=김시범기자 sbkim@kgib.co.kr



◇ 덕진산성은 어떤 유적

고구려 광개토태왕 시절 축조된 군사용 시설로 안쪽의 내성과 바깥쪽 외성 등으로 구성됐다. 지난 2000년대 초 지표조사에 이어 지난 2006년 시굴조사가 이뤄졌다. 본격적인 발굴조사는 아직 진행되지 않고 있다. 둘레는 내성 481m, 외성 948m로 야산 등성이를 따라 이어진다. 정상 부근에는 병사들을 위한 식수를 공급하기 위한 우물이 남겨져 있다. 둘레가 5m 정도로 규모로는 1개 대대 병력이 상주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은 축성시기를 광개토태왕이 집권했던 310~330년으로 기록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흙으로 쌓여진 토성으로 보이지만, 시굴조사 결과, 기초를 다진 뒤 암석으로 일정 높이를 올린 뒤 흙을 입힌 것으로 분석됐다.

“우리의 역사는 스스로 지켜야”
덕진산성을 안내한 이윤희 파주시 전문위원(43·사진)은 “임진강을 끼고 상당히 많은 고구려 성들이 축성됐던 것으로 파악된다”며 “이 가운데 덕진산성은 요새 중의 요새였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도움이 없었다면 덤불 속에 묻혀있는 덕진산성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그만큼 덕진산성은 지금도 외롭게 방치되고 있다는 증표이기도 하다. 중국의 고구려 역사 왜곡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던 게 지난해였다. 그런데 해가 바뀌면서 어느새 또 고구려가 잊혀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고구려는 분명 동아시아의 최고 강국이었습니다. 그 어느 시대보다 당당했던 시기였습니다.” 그는 아직도 발길에 채이는 와편(기와 조각)들을 소중하게 보듬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적지에서 발견되는 어느 것 하나라도 다 위대했던 조상들의 피와 땀이 서려있는 역사의 단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경기도가 저 아래에 있는 초평도를 관광지로 개발할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잘못된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고구려 유적만큼이나 초평도도 소중한 자산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초평도는 DMZ 못지않은 생태계의 보고(寶庫)입니다. 저곳에는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수종들도 상당수 서식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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