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우리 선조들은 꿈에서 용이 몸을 칭칭 감았다면 부귀를 얻거나 장차 훌륭하게 될 귀한 자식을 낳을 태몽이라고 하였다.
용은 농경문화권에서 기후를 다스리는 절대적인 지존의 존재로 인식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용의 능력은 국가 최고자로서의 군왕과 연결되어 ‘왕권의 상징’으로 자리잡기도 하였다.
이렇듯 용은 예사롭지 않은 길조로 여겨져 누구나가 원하고 바라는 신령스러운 동물로 숭상되면서 민간신앙과 생활곳곳에 그 모습이 어려있다.
용은 기린(麒麟)·봉황(鳳凰)·거북「龜」과 더불어 사령(四靈)이라 불려온 상상적인 동물로 순수 우리말로는 ‘미르’라고도 불리운다.
용은 12지 중 다섯번째 동물로 9종류의 동물이 가진 최고의 상징성을 모두 갖추고 형성된 존재이자 무궁무진한 조화능력을 가지고 있어 신령스러운 존재로 믿어졌다.
때문에 풍요와 기우의 상징으로서 물을 다스리는 수신·불법과 나라를 지키는 수호신·복을 가져다 주는 초복신·시간과 방향을 맡은 지신·제왕의 신·예언의 신·벽사의 신으로 우리 민족의 심성에 깊게 자리잡아 왔던 것이다. 이러한 능력을 지닌 용이 되기 위해서는 천년이 지나고 오백년을 더 지나고 또 천년이 지나야 여의주를 물로 하늘을 날 수 있는 응룡(應龍)이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 불교에서도 용은 호법과 호국의 역할을 수행하는 특징을 보인다. 특히 불교설화에 등장하는 용들은 불교가 흥하고 나라의 기운이 크게 뻗을 때는 활기차고 적극적인 활동을 보여주지만 불교가 침체되고 나라가 혼란해지면 무력하고 허약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불교경전에서 말하는 세간 중생들이 법행을 따르는가, 그렇치 못한가에 따라 법행용과 비법행용이 각각 그 세력을 증강한다는 설과 부합하는 것이다.
민간신앙에서의 용은 지금도 수신과 벽사의 기능을 가진 존재로 풍농과 풍어, 마을과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는 민긴신앙의 대상으로서 우리 일상속에 남아있다.
예를 들면 정월 보름 무렵이면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은 무당을 청해 용굿을 지내면서 고기잡이의 무사고와 풍어,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였고 농촌에서는 마을 공동우물에서 지신밝기를 하고 우물고사를 지내면서 맑은 물이 잘 나와 마을 사람들이 건강하고 농사가 풍년이 되기를 기원하였다. 또 집안에 있는 우물에도 고사시루를 차리고 벼를 넣은 용단지를 마련해 두고 가족들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했다.
입신 출세를 꿈꾸는 선비들의 세계에서도 한결같이 용이 숭상되었던 것은 선비들의 문방용품인 벼루, 먹, 고비, 연적 등에 용의 문양을 새긴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또한 용이 새겨진 그릇, 향로, 세수대야, 실패, 비녀, 빗첩고비 등의 생활용품이나 장신구 등은 대부분 왕실이나 상류층에서 사용하였던 물건인데 이는 기복(祈福)과 벽사(壁邪)의 의미를 담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왕궁이나 사찰등 나무로 지은 건물에도 용을 그리고 새겨 불을 막는 수신을 자리잡게 했고 대문에 붙이는 호죽삼새(虎逐三災)·용수오복(龍輸五福)을 뜻하는 용과 호랑이 그림이나 )글씨는 대중적인 민화로 자리를 잡았다. 풍수에서는 좌청룡·우백호로 사는 터와 뭍히는 터를 구별하여 인간의 삶을 지키게 했고 신라의 왕릉에서 볼 수 있는 병풍호석의 12지상에도 상여, 석관, 현화(縣畵) 등 장례의식용품에도 용은 빠지지 않았다.
이렇듯 용은 인간의 미래를 예언해 주고 온갖 액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하며 입신출세의 길을 열어주어 행복하게 이승을 살다가 저승길로 인도하는 지킴이로서 우리 생활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박인숙기자 ispark@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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