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문화국민의 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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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집이나 음식점에 들어갔을 때 나는 종종 옆좌석의 대화에 관심이 가곤 한다. 그렇다고 해서 나쁜 의도에서 그러는 건 아니고 그들의 대화의 주종이 어떤 것인지 궁금해서다. 대화는 곧 사회의 관심사를 대변하는 것이자 한 나라 국민의 문화 수준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의 대화에서 바라는 게 있다면 책이니, 그림이니, 음악회니 하는 따위의 얘기가 나왔으면 하는 것인데, 섭섭하게도 그런 이야기를 듣기란 그리 흔하지 않다. 아니, 거의 없다 해도 과히 틀린 말이 아니다. 그만큼 우리는 문화나 예술과는 먼 거리에서 살고 있다.

그간 내가 엿들은 대화를 분석해 보자면 아파트 얘기, 주식 얘기, 드라마 얘기, 연예인 얘기 정도였다. 여기에다 최근 들어서는 시국 얘기도 끼어들어 목소리 톤까지 높아졌다. 정치 얘기는 어디서나 목소리가 한 옥타브 이상 올라가는 것 같다.

그저께는 한 주부 모임에 나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문학을 좋아하는 이들끼리 한 달에 한 번 꼴로 모이는 자리였고, 내가 한 이야기 역시 문학과 삶에 관한 신변잡기였다. 이야기 끝에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1년에 책을 몇 권 읽느냐? 연극을 몇 편 보느냐? 음악회에 몇 번 가느냐? 미술관은? 돌아온 반응은 나를 적잖이 실망시켰다. 그들은 입을 거의 봉한 채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기 바빴다. 개중에는 부끄러운 나머지 머리에 손이 가거나 얼굴이 붉어지는 여성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질문을 한 내가 오히려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때 한 주부가 손을 번쩍 들더니 “작가님, 텔레비전 드라마 보느냐는 말은 왜 안 물어보세요?”하는 게 아닌가. 텔레비전 드라마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본다는 말이었다. 나는 그 주부가 무안할까 봐서 “아 참, 텔레비전 드라마를 빼놓고 딴 것만 물었군요”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마음 한구석이 겨울바람처럼 냉랭했다.

그 주부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나가는 향우회 자리나 친구들의 모임 자리도 별반 다를 게 없다. 다들 나이가 나이인 만큼 건강 얘기가 주를 이룬다. 어떤 병엔 어떤 음식이 좋고, 뭘 먹으면 되레 좋지 않다는 둥 다들 의사 저리 가라다.

그러니 그림이니 음악회 얘기는 아예 끼어들 틈도 없다. 어쩌다가 책 얘기가 끼어드는 것도 글을 쓰는 윤 아무개가 좌중에 앉아 있으니 안부 정도로 묻는다. “어때, 요즘 책 좀 팔려?” “시도 쓴다며?” 친구들은 건성으로 묻고 나도 건성으로 대꾸한다. “뭐, 팔리긴. 만날 그렇지.” “시? 심심하니까 그냥 써보는 거야.”

우리 사회에서 문화나 예술에 관한 대화는 왜 이리도 찾기 어려운가. “요즘 무슨 책 읽어요?” “얘들아, 그저께 본 연극의 감동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어. 너희도 한 번 봤음 해.” “어쩌지? 다음 약속 날엔 우리 남편이랑 뮤지컬 보기로 했는데…” 이런 대화를 종종 들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기왕 내친김에 더 욕심을 내본다. 하루의 장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아주머니의 무릎에 놓인 시집 한 권, 공원 등나무 밑에 앉아 소설책에 정신을 빼앗긴 어르신, 아이를 업고 미술관에 온 젊은 엄마의 모습, 휴게실에 모여 앉아 최근 읽은 책에 대해 담소하는 도의원이나 시의원들의 여유 있는 모습… 얼마나 보기 좋을까.

윤수천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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