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막말의 부메랑
[데스크 칼럼] 막말의 부메랑
  • 이영수 인천본사 부국장 webmaster@kyeonggi.com
  • 입력   2017. 10. 26   오후 8 : 21
  • 2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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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삼국시대, 위나라 조조의 권세는 그야말로 막강했다. 한(韓)나라 마지막 황제 헌제(獻帝)를 허수아비로 세워놓고 온갖 권력을 향유했다. 그럴 즈음 공융(孔融)이 조조에게 예형(衡)이라는 인물을 천거했다. 공융은 공자의 20대손으로 당시 세간에서는 현자로 알려져 있던 인물이었다.

공융은 “예형의 본성은 도에 합치하며 묘안은 곧 신령을 안고 있는 듯하다”며 극찬했다. 조조 역시 예형의 뛰어남을 알고 있던 터라 공융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러나 예형의 반응은 달랐다. “조조는 신통치 않은 인물”이라며 폄훼하며 만남을 거절했다. 조조는 예형의 말에 기분이 상했다. 그렇지만 공융의 거듭된 설득으로 예형은 결국 조조를 만났고, 그에게 의탁하기로 했다.

당시 조조 곁에는 수많은 책사 중 순욱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러한 순욱을 본 예형은 “초상집 문상과 병든 사람 문병이나 할 인물”이라고 격하시켰다. 또 조조의 책사 순유에 대해서는 “묘지기 노릇이나 할 인물”이라고 했다. 당대의 명장 허저를 향해서는 “말이나 소를 기를 인물”이라고 깎아 내렸다.

그러면서 예형은 조조 곁에 있는 많은 책사와 장수들을 향해 “이들은 옷을 입었으니 몸은 옷걸이요, 밥 먹으니 밥주머니다. 또 술을 마시니 술독”이라며 거침없이 독설을 내뱉었다. 조조와 그의 측근들은 이러한 예형을 두고 이를 갈았다. 단칼에 숨통을 끊어놓고 싶었다. 그러나 조조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조직에 분란만 일으키는 인물을 곁에 둘 수 없었다. 결국 조조는 꾀를 내 형주에 있는 유표에게 예형을 보내기로 했다. 유표 역시 예형의 뛰어난 지식을 동경했지만 사람 됨됨이에 문제가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기꺼이 예형을 맞이했다.

그러자 예형은 글을 지어 유표에게 올렸다. 글을 본 유표는 “형주에는 예형을 따라올 자가 없다”며 극찬했다. 그러자 유표의 측근들도 유표에게 글을 지어 올렸다. 이를 본 예형은 한심하다는 듯 비웃으며 이들을 비난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인물들 곁에 두고 있는 유표가 한심하다며 조목조목 지적했다. 화가 난 유표는 참지 못하고 강하에 태수로 있는 황조에게 예형을 보냈다.

성격이 급한 황조였지만, 그는 예(禮)를 존중하는 인물이었다. 비록 예형의 독설이 상처를 주더라도 예로 대하면 응당 존중받을 것으로 여겼다. 황조는 예형이 올린 글을 보고 감탄하며 극진히 모셨다.

예형을 위한 연회에서 난리가 벌어졌다. 예형이 황조를 향해 “당신은 사당(祠堂)의 귀신이다. 그것도 반만 죽은 귀신”이라며 막말을 퍼부어 댔다. 이를 참지 못한 황조는 결국 예형을 끌어내 목을 벴다. 이를 두고 조조가 한마디 던졌다. 진정 부유설검(腐儒舌劍)이라고. 이 말은 진부한 선비의 혀는 칼이라는 의미다. 고루한 지식인의 독설은 자신을 죽인다는 뜻이다.

언어는 생각의 표현이다. 생각은 그 사람의 세계다. 언어는 그 사람의 세계를 보여주는 표현인 것이다. 언어는 그 사람의 인격을 보여준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이 정치권의 막말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국정감사장에서의 막말은 물론이고 여야간의 정쟁이 있는 곳에서는 막가파식 언어가 난무한다. 물론 여기에는 유명인도 한몫 거들면서 막말잔치의 정점을 이룬다. 막말은 묘한 쾌감을 불러일으키고 대중을 선동하는 기능도 있다. 하지만 막말은 결국 자신의 목을 겨냥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정제된 언어로 세련된 토론이 이어지는 우리나라 정치권을 보고 싶다.

이영수 인천본사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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