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업무상 위력’이라는 사회적 흉기, 제거해야 한다
[데스크 칼럼] ‘업무상 위력’이라는 사회적 흉기, 제거해야 한다
  • 유제홍 기자 jhyou@kyeonggi.com
  • 입력   2018. 03. 22   오후 9 : 21
  •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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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상 위력’이라는 사회적 흉기, 제거해야 한다. 온 국민을 신경쇠약(mental breakdown) 상태로 몰아넣고 있는 미투(#Me Too나도 당했다)의 가해자에게 적용되는 법규는 형법 제303조 1항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죄’다.

당연히 이 형법은 이성간 벌어진 범죄적 행위에 한해 적용된다. 성범죄는 신고율이 2% 미만일 정도로 암수율(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숫자의 비밀)이 높은 범죄다. 미투의 빙산일각(氷山一角)만으로도 나라가 이 지경인데, 빙산의 실체가 모두 드러나면 거덜나지 싶다.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한 동성간 ‘업무상위력이나 조직상 지위 등에 의한 폭력(괴롭힘)’에 비하면 미투 또한 빙산일각이라는 항간의 지적을 듣고 보니 ‘헬조선’이라 해도 할 말이 없다. 직장과 거래처, 학교, 심지어 가정 주변에서까지 공공연히 벌어지는 ‘업무상 위력에 의한 폭력’은 공공연하지만, 표면으로 드러낼 수 없어 피해자 처지에서는 고통스럽고 두렵다.

특히 가족의 생계를 볼모로 잡힌 채 모욕적 폭언이나 부당한 지시를 감수해야 하는 직장인들이 대표적인 피해자들이다. 고용노동부가 최근 공개한 직장 폭력의 가장 일반적인 사례인 ‘직장 괴롭힘’에 대한 실태 조사 보고서를 살펴보면 충격적이다.

고용노동부의 ‘직장 내 괴롭힘 대책 마련을 위한 실태조사’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직장 괴롭힘 피해자 10명 중 9명꼴인 88%가 우울증 등의 정신적 피해를 호소했다. 17개 조사 대상 사업장의 피해자 가운데 자살한 피해자도 4명이 있었다. 지속적인 직장 폭력이 피해자의 인격과 정체성을 파괴하며 결국에는 자살까지 몰아넣는 격이다. 17개 조사대상 사업장 가운데 15곳의 피해자에게서 우울증, 자살 등의 정신적 피해가 나타났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진행한 ‘우리 사회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에서도 1천506명 중 73.3%인 1천104명이 직장 내에서 괴롭힘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인권위원회 연구용역보고서는 ‘직장 괴롭힘’이란 직장 내에서 노동자의 신체·정신적 건강을 침해해 노동자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직장 폭력은 가족의 생계가 걸린 직장에서 일어나는 만큼 피하기가 불가능하다.

미투나 직장 폭력 대부분은 힘의 차이가 있는 곳에서 발생되고 있다. 가해자들은 온갖 방법으로 힘의 차이(업무상 위력)를 만들고 그 힘을 흉기 삼아 교묘하게, 때로는 잔인하게 폭력을 휘두른다. 가해자 중 상당수가 힘의 평등과 상생을 유지하는 것은 내가 지는 것이고, 결국은 내가 사라져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빠져 있다. 그러니 상대방을 짓누를 수밖에….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죄’라는 법령은 있지만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동성간)폭력 이나 괴롭힘’이라는 법령은 없다. 미투 피해보다 더 광범위하고 관행화된 직장 폭력을 직접 규율하는 법령이 아직 없다. 여러 보고서가 직장 내 폭력 근절을 위한 차별금지법(폭력 및 괴롭힘 등) 제정 등의 대안이 필수적이라고 제언하는 이유다.

이제는 ‘업무상이나 지위상 위력’에 의한 모든 폭력이 명백한 ‘법범 행위’라는 사회적 인식 확산이 이뤄져야 한다. 미투 사태를 계기로 우리 사회 전반에 관행이란 미명 뒤에 숨겨져 있는 ‘업무상 위력’이라는 흉기를 제거해야 한다.

정부가 올 상반기 중에 ‘직장 괴롭힘 종합대책’을 발표한다고 한다. 직장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모든 사회에서 ‘업무상 위력’이라는 흉기가 사라지기를 기대해 본다.

유제홍
인천본사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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