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세상을 보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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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다 보면 예기치 않은 시선과 종종 맞닥뜨린다. 예를 들면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물건의 위치를 묻느라 직원을 불러 세우면 그들의 시선은 십중팔구 손수레에 실린 상품들로 갔다가 내게로 돌아온다. 그는 순간적으로 내 소비 성향과 경제 수준을 한눈에 파악했을 것이다. 상품들이 손수레에 실려 있는 상태를 보아 어쩌면 내 성격까지 간파했을지도 모른다.

동네 미용실에 갔을 때의 일이다. 새로 주인이 바뀐 후 두 번째로 간 것인데 말없이 머리를 만지던 원장이 뜬금없이 “글 쓰는 일을 하세요?”라고 묻는다. 나는 저이가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깜짝 놀랐다. 뒤이은 설명에 따르면 머리를 쓰는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은 머리에 열이 많아 머리카락이 건조해서 푸석푸석하게 된다고 한다. 또 사람이나 사물을 바라볼 때 일반인과 달리 시선이 깊다는 것이다. 오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그이의 말에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한 분야에 오래 종사하다 보니 사람을 파악하는 방법도 남다르다 싶었다. 머리카락으로 그 사람의 직업이나 하는 일을 알아보는 것은 일종의 기술일까? 그러나 누구나 그러하지는 않을 것이다. 치밀한 관찰력이 바탕이 돼야 가능할 것이다.

우리들은 각자의 시선으로, 방식으로 세상을 본다. 명품을 좋아하는 사람은 처음 만나는 사람이 어떤 명품을 걸치고 있는지, 몇 개의 명품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그 사람을 판단할 것이다. ‘지방시givenchy’를 ‘기븐키’로 잘못 읽는 나 같은 사람과는 상종도 안할 것이다. 자신의 실수를 뒤늦게 알고는 되려 “사람이 명품인데 무슨 명품이 필요하냐”고 큰소리치는 뻔뻔함은 더 못 참겠다고 할 것이다.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해 소설을 쓰겠다고 하는 학생들이 ‘쓰기’부터 배우는 것이 아니라 ‘보는 법’부터 배우는 것을 본 적이 있다. 1단계가 관찰하기인데, 지하철에서 맞은편에 앉아 있는 사람의 신발을 면밀히 살펴보고 나이·직업·취향·성격 등을 추측한 후 그 다음에는 옷을, 마지막에 얼굴을 보고 그 사람의 삶을 재구성해보라는 과제를 내준다. 사물, 인물, 사건 등을 평면적으로 보지 않고 이면을 들여다보는 습관은 이렇게 형성이 된다. 찬찬히, 꼼꼼히 들여다보기.

원근법으로 대변되는 서양미술은 서양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사고를 반영한다. 고정된 위치에서 최적의 시점을 찾아 바라보는 것은 주체의 위치와 시선이 모든 것을 장악하게 되며 주체의 관점이 강조될 수밖에 없다. 동양화의 경우에는 산점투시라고 해서 시점의 위치를 바꾸어 가면서 관찰한 여러 대상을 하나의 화면에 조화시켜 그리기도 한다. 세상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에 사물을 제대로 인식하려면 하나의 시점만 가지고는 부족하다는 생각에서다.

무용가들은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까? 9박10일간 신연암로드 기행을 함께 한 무용가는 사람들의 몸짓이 직업에 따라서 다르고, 체제와 사회에 따라서도 다르다고 했다. 예를 들면 작가들은 글을 쓰느라 팔꿈치가 늘 구부려져 있기 때문에 팔꿈치가 쫙 펴지지 않는다고 했다. 북한과 같은 통제 사회, 폐쇄적 사회일수록 사람들의 의식이 갇혀 있기 때문에 몸짓도 그에 따라 굳어 있고 딱딱하다고도 했다.

그 무용가, 안은미의 ‘북한춤’ 공연이 얼마 전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있었다. 북한춤이라는 춤이 별도로 있는 건 아니니 북한에서 이루어진 공연예술자료를 검토하고 평소 화면에 비치는 북한 사람들의 몸짓을 유심히 살펴서 재구성했을 것이다. 국제적 교류로 인해 서양 무용의 영향을 많이 받은 우리와는 달리 북한춤의 동작은 절도 있고 역동적으로 보였다. 공연을 보며 우리 사회의 몸짓과 춤이 타자에게서 어떤 모습으로 발견될지 궁금했다. 이왕이면 매의 눈과 따뜻한 가슴을 가진 시선이면 좋겠다.
박설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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