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농촌드라마 ‘전원일기’(극본 김인강·황은경, 연출 권이상)의 마지막회 촬영이 16일 오후 MBC 제작센터 C스튜디오에서 진행됐다.
22년 2개월이라는 국내 최장수 드라마의 대미를 장식하는 촬영분이어서인지 이날 카메라앞에 나서는 연기자나 스태프들의 표정은 한층 진지했다.
제작진의 마무리 의도는 마을 잔치나 영남·복길의 결혼 등 큰 이벤트 없이 겨울 농촌의 일상적인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여전히 전원일기가 계속 될 것같은여운을 남기면서 끝내는 것.첫 촬영은 귀동(이계인)이네 방에서 시작됐다.
몸살로 며칠째 집에서 꼼짝 못하는 귀동(이계인)을 응삼(박윤배)이 찾아왔다.
“자네 무슨 일 있는줄 알고 얼마나 걱정했었다구?” “밤새 홀아비한테 뭔일 있을까봐? 일은 무슨 일? 몸살 정도 가지구”이때 반가운 전화벨이 울린다.
서울에 공부하러 간 귀동의 아들 노마(정인호)가 취직이 됐다는 소식이다.
이후 딸 인경의 돌 잔치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 금동(임호)네, 마을 회관의 모습 등 평화로운 농촌의 정경을 거치면서 일용네로 카메라가옮겨간다.
일용 어머니(김수미)를 말끔하게 차려입은 한 건장한 청년이 찾아온다.
“이게 누구야 노, 노마 아니냐? 서울서 취직이 됐데믄서? 으미 니 아부지도 좋지만 내가 더 좋다.(음료수병을 가리키며) 이게 뭐냐. 취직됐으면 돈 쓸 일도 많을텐디, 뭐 이런 걸 다 사오냐?” “아버지 편찮으실 때 할머니가 대추차도 끓여주시고다른 분은 몰라도 할머니한테는 꼭 사와야죠. 너무 감사합니다.”
이때 구수한 김수미씨의 애드립이 시작된다.
“아이구 녀석, 그러잖아도 대추차 말고도 내가 니 아부지한테 닭도 한마리 푹삶아줬다. 인석아.” 그러자 주위에 몰려 있던 제작진과 취재 기자들의 폭소가 터진다.
이 장면을 끝낸 김수미씨에게 취재진이 몰려든다.
특이한 노인억양과 표정연기로 ‘일용엄니’의 캐릭터를 확실하게 살려놓은 김씨는 “오늘을 마지막으로 세트를 뜯는다고 하니까 우리집을 다 부수는 것같아 서운한걸 이루 말도 못하겠다”면서 “제 나이 38살때인 100회 때 극중에서 환갑잔치를 했는데 그 장면을 본 할머니 시청자들께서 옷을 50벌 가까이 보내주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회상했다.
그는 작가가 그 옷들을 드라마에서 입을 수 있도록 한달간일용엄니가 일부러 마실 나가는 장면을 꼬박꼬박 넣어주었다면서 그 옷들은 아직도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고 전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일용처역의 김혜정씨도 “제가 83년도니까 20대 초반에 시집와서 모든 열정을 다 쏟아부은 셈”이라면서 “직접 농사를 지어보진 않았지만 비바람때문에 망친 고추밭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쓰러진 고추를 추스렸던 연기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고 말했다.이후 수남이가 비닐하우스를 고쳤다고 대견해 하는 김회장네가 무대가 됐다.
김회장역의 최불암씨는 “오늘 마지막 촬영을 하는데 눈물이 나려고 하데요. 공무원인 큰아들(김용건)말고 둘째 아들 용식(유인촌)에게 농사를 대물림하려고 할때반항하는 아들을 추스르고 하고 싶은 일을 못하게 막은 것 같아 아직도 용식이를 보면 가슴이 짠한게 미안하고 그래요”라면서 마치 친부자지간 같은 진한 정을 표현했다.
그러자 유인촌씨도 “막상 끝난다고 생각하니까 전원일기 출연진 모두 배우가 나가야 할 자세를 몸소 보여준 것 같아 너무 자랑스럽다”면서 “장인정신과 사명감이 없고서는 이렇게 오래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의 어머니상을 연기했던 김혜자씨는 “오랜 세월 동안 많은 것을 남겨준 소중한 것과 헤어지는 느낌”이라면서 “요즘에는 드라마의 주제가만 들려도 가슴이 찌릿찌릿할 정도”라고 소감을 전했다.
대기실에서 대본 연습에 한창이던 김용건씨는 고두심씨와 오늘 촬영전에 만나 “이제 우리도 정말 마지막이네. 이혼이네 이혼”이라고 농을 건네자 고두심씨가 “22년 같이 살고 이혼했으면 위자료도 많이 받아야겠네요”라고 받아치더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복길이 역의 김지영씨는 “아직도 길가에 지나가다보면 ‘복길이다, 복길이’하고부르는 시청자가 많을 정도로 기억해주시는 분이 많다”면서 “처음에는 이 역할에 한정되는 것 같아 조금 아쉬움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정말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고 섭섭함을 나타냈다.암투병중에도 성실한 연기를 보여줘 후배들의 귀감이 됐던, 극중 가장 큰 어른인 정애란씨는 “서운하지 않으시냐”고 묻자 “시청자도 서운하고 출연 연기자도 모두 서운할 것”이라면서 “1천편 이상 찍었지만 항상 끝나면 아쉽고 그건 왜 그렇게 연기했나 싶고 항상 아쉬움 뿐이다.
”라고 담담히 얘기했다.한편 16일 오후 7시 서울 여의도 63빌딩 르네상스홀에서는 여의도클럽(회장 유수열)과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회장 방성근)가 공동선정한 ‘2002 방송인상’ 수상자로 ‘전원일기’의 역대 연출자 13명, 작가 2명, 출연자 2명이 뽑혀 마지막 촬영일을 더욱 뜻깊게 했다.
이날 시상식에는 ‘전원일기’의 역대 연출자 이연헌, 김한영, 이관희, 이은규,강병문, 권이상, 이대영, 조중현, 김남원, 정문수, 오현창, 장근수, 최용원 PD(현재권이상), 초대 작가인 차범석씨와 가장 오래 집필한 김정수씨, 그리고 김회장 부부역을 맡아 한국적 아버지와 어머니 상을 보여준 최불암·김혜자씨가 함께 상을 받았다.
‘전원일기’ 최종회인 1천88회 ‘박수할때 떠나려 해도’는 오는 29일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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