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학의 거목’ 소설가 최인훈 별세

향년 84세… 대장암 투병 중 눈 감아
소설 ‘광장’ 204쇄 찍은 기념비적 작품
고교 문학 교과서 최다 수록 기록도

▲ 23일 별세한 최인훈 작가의 빈소가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돼 있다. 연합뉴스
▲ 23일 별세한 최인훈 작가의 빈소가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돼 있다. 연합뉴스
소설 ‘광장’ 등으로 한국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작가 최인훈이 23일 84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지난 3월 말 대장암 말기 진단을 받고 투병하다 고양시 명지병원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

 

고인은 1936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목재상이었던 아버지 최국성과 어머니 김경숙 사이에 장남으로 출생했다. 원산중학교를 거쳐 원산고등학교 재학 중 한국전쟁이 발발해 전 가족이 월남했다.

 

목포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952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해 6학기를 마쳤으나 중퇴하고, 1958년 군생활을 시작했다. 군복무 중이던 1959년 <라울전>을 ‘자유문학’지에 발표하며 등단했다.

 

특히 4ㆍ19혁명이 있고 7개월 뒤인 1960년 11월 ‘새벽’지에 중편소설 ‘광장’을 발표했다. 이 소설은 발표 직후부터 문단 안팎에 적지 않은 파장을 가져왔고, 전후 한국문학의 지평을 새롭게 연 기념비적 작품으로 평가되며 지금까지 널리 읽힌다. 출간 이후 현재까지 통쇄 204쇄를 찍었다.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 최다 수록 작품이라는 기록도 보유한다.

 

그는 군제대이후에 본격적인 문학활동을 시작했다. <회색인>(1963~1964), <서유기>(1966),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1969~1972), <태풍>(1973) 등 5대 장편과 <가면고>(1960), <구운몽>(1962), <열하일기>(1962) 등 중편, <우상의 집>(1960), <웃음소리>(1966), <국도의 끝>(1966) 등 단편을 쉴새없이 내놓았다.

 

1970년대 후반기에는 희곡 작업에 몰입했다. 1979년 펴낸 희곡모음집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에는 우리 민족의 심상이 투영된 신화나 설화 속에서 보편적인 모티프를 찾아 재창조한 희곡들을 실었다. 또 같은해 문학과지성사에서 소설, 희곡, 수필, 문학론 등 모든 양식의 글들을 묶어 총 12권으루 구성된 <최인훈전집>(1979)이 간행되기도 했다.

 

1977년부터 2001년 5월까지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하며 많은 문인 제자를 배출했다. 퇴임 이후에도 명예교수로 활동하며, 문학계 거목으로 후배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대학에서 오랫동안 교편을 잡았음에도 정작 본인은 대학 졸업장을 받지 못한 데 대해 “열악한 환경에서도 최상의 혜택을 줬는데도 누리지 못한 그때의 내가 너무 밉다.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크다”고 깊은 회한을 표현하기도 했다. 이 얘기를 들은 서울대는 지난해 2월 그에게 명예 졸업장을 수여했다.

 

마지막 작품은 2003년 계간지에 발표한 단편 <바다의 편지>다. 그는 2009년 자신의 희곡이 올려진 무대에서 관객들과 만나 “창작하는 사람들에게 은퇴란 없다. 지금도 여전히 글을 쓰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더 이상의 작품 활동은 없었다.

 

수상 이력은 동인문학상(1966), 한국연극영화예술상 희곡상(1977), 중앙문화대상 예술 부문 장려상(1978), 서울극평가그룹상(1979), 이산문학상(1994), 박경리문학상(2011)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장례는 ‘문학인장’으로 치러지며, 위원장은 문학과지성사 공동창립자이자 원로 문학평론가인 김병익이 맡았다. 영결식은 25일 오전 8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내 강당에서 열린다. 발인은 영결식 직후인 같은 날 9시에 이뤄진다. 장지는 고양시에 있는 공원묘원 ‘자하연 일산’이다.

 

송시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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