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스페셜'은 왜 지난 여름에 촬영하고도 이제야 방영되는 거죠?" "촬영도 덜 된 '늑대'를 방송한 게 이해되지 않네요."
촬영 중 문정혁(에릭)의 부상으로 방송이 중단된 MBC 월화 드라마 '늑대' 대신 지난 6일부터 '내 인생의 스페셜'이 방영되자 시청자들이 보인 반응이다. '줄거리가 탄탄하다' '배우들의 연기가 출중하다'는 칭찬과 함께 '사전에 잘 만들어 놓은 드라마가 있는데 굳이 촬영이 덜 된 드라마를 급하게 제작해 방송하려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불만도 나왔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사전에 드라마를 제작하는 경우는 드물다. 사전 제작된 드라마는 현재 1∼2편에 불과하다. 방송 한 달 전 촬영이 시작되면 그나마 다행이고 대부분 1∼2주 전 촬영에 들어가기 일쑤다. 두 세달 전 넉넉히 촬영에 들어가더라도 7∼8부를 넘기면 초치기 제작 관행을 면치 못한다. 방송사 등에서 드라마 사전제작은 '영원한 숙제'로 통할 정도. 사전 제작이 어려운 원인은 무엇이며 대안은 없는걸까.
◇대본이 없다=드라마 관계자들은 '대본이 나오지 않는데 어떻게 촬영에 들어가느냐'고 하소연한다. 6개월부터 1년 전에 세운 드라마 기획에 맞춰 연출자·작가를 결정하고,배우 캐스팅을 일치감치 끝내도 실제 대본은 방송이 임박해서야 나올 때가 많다. 그나마 시청자 반응에 따라 수시로 수정돼 촬영 당일 연기자들에게 건네진다. 바로 '쪽대본'이다. 한 방송사 PD는 "사전 제작의 선결요건은 사전 대본이겠지만 작가에게 재촉하기도 어려운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드라마 작가는 "김수현씨처럼 대작가가 아닌 이상 시청자 반응을 무시하고 미리 써놓는 작가가 어디있겠느냐"면서 "시청자 구미에 맞게 대본 수정을 요구하는 일부 연출자도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또 "작가의식 없이 시류에 편승해 (쪽)대본을 만들어온 대다수 작가들에게도 문제는 있다"고 덧붙였다.
◇캐스팅이 어렵다=대본이 늦게 나오더라도 드라마 전반의 줄거리는 잡혀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캐스팅이 자주 번복되면서 주연 배우가 바뀔 때마다 대본 수정이 불가피해진다. 심지어 일부 스타급 배우는 상대 역부터 조연까지 결정하며 '권력'을 휘두른다. '달콤한 스파이'(MBC)는 주인공이 갑자기 바뀌면서 줄거리가 대폭 수정됐고,'불멸의 이순신' 후속작 '서울1945'(KBS1)는 KBS가 중국 드라마 '칭기즈칸'을 방영하는 바람에 제작시간을 벌었지만 캐스팅 문제로 촬영 기간을 까먹었다. 한 방송사 책임PD는 "몇 개월이라도 일찍 촬영에 들어가고 싶지만 배우들이 그 기간에 해당하는 돈을 출연료와 별도로 요구해와 제작비 추가 문제도 걸림돌"이라고 말했다.
◇드라마가 넘친다=방송3사 드라마 관계자들은 "대본 및 캐스팅 문제가 선결되면 일부 사전 제작은 가능하다"면서도 완벽한 사전 제작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아침·주말 드라마,미니시리즈 등 일주일에 방송되는 드라마 수가 절대적으로 많은 상황에서 역량있는 작가와 일정 시청률을 담보하는 스타급 배우는 부족하게 마련이다. 이들 관계자는 "초치기 제작 관행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결국 드라마 수를 줄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 방송사의 드라마 고위 간부는 "현 70분 드라마를 단 10분 만이라도 줄이는 게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와함께 드라마 제작의 또다른 주체인 외주제작사 관계자는 "편성권을 쥐고있는 방송사도 외주제작사의 사전 제작을 가로막고 있다"면서 "방송사와 외주제작사 간의 '선편성·후제작' 관행도 '선제작·후편성'으로 점차 바뀌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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