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성격·특징따라…쉬운대로 그대로 불러
현대 사회에서 사람을 만날 때 서로 손을 잡는 악수와 더불어 명함을 교환한다. 명함을 나누는 취지는 상대방의 이름을 알기 위해서다. 명함에 나타난 이름을 통해 1차적으로 그를 평가한다. 그의 인품이 어떠한지도 모르지만 이름을 통해 그의 집안과 살아온 환경 그리고 상대방의 현재 위치까지도 파악하려 든다. 그만큼 이름은 중요하다. 비단 현대 사회만이 아닌 조선시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양반 사대부 집안에서 자손이 태어나면 집안의 최고 연장자가 참으로 많은 고민 속에 이름을 지었다. 이름을 지으면서 자손의 인생이 아름답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한껏 담아서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조선시대 평민들의 이름은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참 다행스럽게도 ‘화성성역의궤’에 조선시대 평민들의 이름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내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될 ‘화성성역의궤’는 말 그대로 화성성역에 대한 종합보고서다. ‘의궤’라고 하는 건 의식을 갖춰 궤짝에 보관한다는 말인데, 이는 한문을 해석하는 내용이고 실제로는 국왕에게 올리는 보고서이다. 이때문에 의궤는 10부 정도를 제작, 국왕에게 올리고 궁궐 안의 의정부, 비변사, 홍문관 그리고 오대사고 등에 보관한다. 그러니 아주 귀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종류의 의궤들이 있지만 ‘화성성역의궤’만큼 중요한 책은 별로 없다. ‘화성성역의궤’는 화성이 지난 97년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데다 각 시설물들 도면, 축성방식, 순서 등이 기록됐다. 특히 이 책에는 화성성역에 참여했던 모든 인부들의 이름을 비롯, 이들이 어느 시설물을 건축하는데 얼마나 일을 했는지 정확하게 적혀져 있다. 다른 사료에서 볼 수 없는 백성들의 생생한 이름들을 통해 ‘화성성역의궤’는 화성을 복원하는 성과는 물론 정조시대 백성들의 생활사 혹은 신분제도사까지도 알 수 있는 귀한 사료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과거나 지금이나 사람들 사는 건 매일반이다. 하지만 조선시대 백성들은 부르기 쉬운 이름들을 그대로 사용한 게 상당수이다. 즉 “이놈 저놈”하던 게 그대로 이름이 돼 기록으로 남고 있다. 아마도 일을 지휘하는 사람이 “이놈 저놈”하다 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니면 고향에서 혹은 관청에서 이미 그렇게 불리워졌을 수도 있다. 즉 “이놈 저놈”에서 나온 문노미나 홍노미 등이 그것이다. 앞에 성은 붙되 놈이라고 하는 말이 그냥 노미로 변한 것이다. 욕을 하다 지어진 경우 김개노미, 김언노미, 차언노미 등의 이름들도 나타나고 있다.
예전 사람들은 신체구조나 생김으로 이름이 지어진 경우들도 흔했다. 가령 사람의 신체중 특이한 점으로 많이 이름을 짓고 있다. ‘화성성역의궤’에 기록된 키가 큰 사람들의 이름을 보자. 박큰노미(朴大老味), 최큰노미 등이 보인다. 이들의 신장이 얼마나 컸는지는 몰라도 꽤나 큰 키였을 것이다. 그러니 큰노미란 이름이 지어진 것일 것이다. 키가 작은 사람은 김자근노미(金者斤老味), 임자근노미, 임소남(林小男), 김작은복(金者斤福), 구작은쇠(具者斤金) 등이다. 키가 큰 사람들은 주로 노미로 많이 끝나는데 작은 사람들은 소남이니 작은복이니 작은쇠니 하는 이름까지 나타난다. 더 특이한 점은 다리 길이가 작은 사람이 있어 조조자근노미(趙足者斤老味)라고까지 이름을 짓기도 했다.
한편 동물에 비유하는 이름도 보이는데 강아지처럼 생겼다고 강아지, 엄강아지, 방삽사리, 김삽사리 등으로 지었다. 망아지처럼 잘 달린다고 최망아지(崔馬也之), 부엉이처럼 눈이 나왔다고 이부엉, 지팽이처럼 말랐다고 신지팽(申之彭)이라고도 불렀다.
아주 재미있는 점은 혹이 나온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혹이 튀어 나왔다고 이혹불(李或不)이라고 이름을 지었고 도토리처럼 작고 단단하게 생겼다고 최유토리(崔有土里), 뚱뚱하고 느림보처럼 생겼다고 박뭉투리 등으로 지은 이름들도 보인다.
사람의 성격을 토대로 지어진 이름들도 보인다. 착한 사람과 성질이 더러운 사람은 누가 보아도 알 수 있다. 일을 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착해 지어진 박선노미(朴善老味)·조호노미(趙好老味)·김순노미(金順老味), 일을 잘해 기특하다고 박기특·김기특 등이다. 그런데 흥미있는 점은 성질이 못된 사람을 표현하는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우리 민족성이 착해 그런 모양이다.
이런 이름들도 보인다. 자신의 나이를 정확하게 모르는 사람들의 이름이다. 예전에는 전란도 많았고 흉년도 많이 들어 객지를 떠돌다 자신의 나이가 정확하게 몇살인지 모르고 이름도 뭔지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을 정확히 몰라 대충 나이로 이름 지은 사람도 있다. 나이가 한 오십쯤 된 것 같다고 김쉰동이(金五十同), 이름은 모르고 대충 태어난 달만 알아 지은 박시월쇠(朴十月金) 등을 비롯, 박정월쇠·김팔월쇠 등이 있다.
평민들의 이름에는 특별히 쇠자가 들어가는 경우들이 많다. 박장쇠, 김팔월쇠(八月金), 장막쇠, 고돌쇠, 안돌쇠, 하장쇠, 정복쇠, 윤좀쇠, 조은쇠, 강두쇠, 박가랑쇠, 오허무쇠 등이다. 이는 쇠가 곧 금(金)을 뜻하는 것이기에 돈을 많이 벌어 행복하게 살라는 의미이다. 돌자가 들어가는 이름들도 많다. 안기돌, 박복돌, 고검돌, 서귀돌, 김일돌, 이이돌, 김돌돌 등이다. 이는 돌은 잘 변하지 않고 오래 모양을 유지하기 때문에 자손들이 오래 살라는 의미로 지어졌다.
이처럼 ‘화성성역의궤’는 우리가 몰랐던 조선시대 백성들의 이름이 많이 등장한다. 단순하게 웃으면서 볼 게 아니라 당대 사회에서 이름을 지으면서 얼마나 고민했을 가장들의 모습을 떠올려야 한다. 비록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지만 보다 행복을 추구하면서 지은 이름, 그 이름값을 해주기 위해 온갖 고민과 노력을 아끼지 않은 국왕 정조의 모습을 떠올려야 한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고통받던 시기 화성 축성이라는 대 토목공사를 통해 돈을 벌어 가정을 살렸던 그들의 환한 미소를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수원시 학예연구사
■ 세계기록유산이란…
세계유산은(World Heritage) 문화유산·자연유산·복합유산이 하나로 합쳐진 말이다. 세계 역사 속에 존재하는 가치 있는 문화유산과 아름다우면서도 더 이상 훼손되지 말아야 하는 자연경관을 자연유산으로 등재, 보존하는 것이다. 세계자연유산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나이아가라폭포다. 나아아가라 폭포 역시 수량이 줄어 시간이 지나면서 과거와 같은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주긴 어려울 것 같다. 이 역시 자연은 스스로 존재하고자 하는데 우리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파괴되는 것이다.
세계유산과 함께 존재하는 게 바로 기록유산이다. 물론 세계무형유산도 존재한다. 우리나라에 무형유산으로는 종묘제례악과 판소리 그리고 지난해 등재된 강릉단오제이다. 단오제는 중국에서 자신들과 유사하다며 시비를 걸어 3년만에 등재되기도 했다. 유네스코에 유형이든 무형이든 세계유산으로 가입하는 게 얼마나 중요하고 한편으로 힘든 것인지 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이다.
문화유산과 무형유산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게 바로 기록유산인데 우리나라의 보유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편이다. 최초의 금속활자인 ‘불조직지심체요절’과 우리 글인 ‘훈민정음’, 조선시대 국가의 모든 일을 숨김 없이 기록한 ‘조선왕조실록’, 국왕의 일거수 일투족을 기록하는 사관과 국왕의 명을 받아 업무를 추진했던 승정원의 모든 내용을 담은 ‘승정원일기’ 등이 우리의 세계기록유산이다.
최근 놀라운 점은 훈민정음이 아프리카의 자기 글이 없는 민족과 국가 등의 국어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문과 같은 뜻 글자가 아닌 말로 하는 소리글자이기에 세계 어느 나라 말이라도 표기할 수 없는 게 없기에 이제 나라 글이 없는 국가의 글이 되고 있다. 우리 민족의 우수성, 아니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이제 세계인의 눈과 귀와 말이 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세계기록유산이 많다는 건 그만큼 문명국가란 이야기다. 기록을 남기는 민족과 기록이 없는 민족은 전혀 다르다. 한때 우리나라를 침략했고 중국 대륙을 지배했던 청나라의 만주족은 지금 흔적없이 사라졌다. 자기 글을 만들었는데도 자기 글을 사용하지 않고 한자(漢子)를 사용하다 민족의 정체성이 사라지고 자연스럽게 한족(漢族)에 흡수돼 끝내 지구상에서 민족이 사라지고 만 것이다.
우리는 세계기록유산의 10%를 차지하고 있는 문명국가이자 앞으로 ‘화성성역의궤’를 비롯한 조선시대 의궤가 추가로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는 진정한 문명국가이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아야 한다. 인터넷의 보급과 핸드폰의 발달 등으로 표준화되지 않은 이상한 언어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으며, 자기 글을 천시하고 오로지 국적 없는 영어가 판을 치고 있는 이 사회가 지속된다면 우리는 만주족과 같은 운명이 될 수 있다.
자기 말과 글을 사랑하지 않는 민족이 어찌 나라를 보본할 수 있으며 어찌 세계의 일류 국가가 될 수 있겠는가? ‘화성성역의궤’가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역사와 민족 앞에 우리를 반성하고 이처럼 자랑스러운 유산을 남겨 주신 선조들에게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드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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