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1,l,000}"제 얼굴은 알아도 이름을 정확히 아는 시청자는 별로 없었어요. '사랑과 야망'이 제게는 굉장히 큰 전환점이 됐죠."
갈수록 인기를 얻고 있는 SBS TV 주말드라마 '사랑과 야망'에서 자신의 욕망을 거침없이 발산하는 인물들 속에 전노민(40)이 연기하는 홍조는 단연 눈에 띈다. 여유로운 가정에서 반듯하게 자라 의사가 된 뒤 주변에 아낌없이 애정과 직언을 쏟아낸다.
신통치 못한 점을 하나씩 가졌으면서도 불같이 살아가는 주인공들과 달리 홍조는 무엇 하나 부족한 점 없이 다른 이들의 짐까지 덜어준다. 그러면서도 그 부드러움이 나름의 강단과 주관을 좀먹지 않는다.
"김수현 선생님은 홍조를 산소 같은 캐릭터로 그리길 원하시는 것 같아요. '세상에 이런 남자 정말 있어?' 싶은 정도까지요. 홍조가 자칫 우유부단해 보일 수도 있고 중심이 없어 보일 수도 있는데 저도 사심 없이 그런 마음으로 연기하려고 해요."
김수현 작가 특유의 대사 톤이 입에 착착 붙는 것도 홍조를 눈에 띄게 하는데 한몫했다.
괜한 말꼬리 없이 탁탁 끊어지는 말투가 어색하지 않아 시청자들이 금세 전노민과 홍조를 밀착시킬 수 있었다.
"아내가 20대에 김수현 선생님 드라마를 연달아 하면서 인기를 얻었는데 제가 연기하는 걸 보더니 '당신 대사 톤이 잘 맞아'라고 하더라고요. 대본에는 입에 안 붙고 뜻을 잘 모르는 옛날 단어도 많아요. 인터넷으로 뜻을 찾아보면서 연습하죠. 사실 캐릭터가 어려웠지 대사 톤이 크게 어렵지는 않았어요."
1995년 CF로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고서 10여 년이 지나서야 자신의 이름으로 불렸다. 홍조를 연기하기 전까지 여러 드라마에서 주ㆍ조연을 맡았지만 김보연과의 결혼 후에는 '김보연의 남편'에 이름이 가렸다.
아내의 유명세가 기분 나쁠 일은 아니지만 탤런트 전노민으로 불리고 싶은 마음은 한 구석에 꾸준히 자리했다. 홍조 역은 그래서 전노민에게 남다르다.
"길을 가다 보면 '저 사람 누구지', '김보연 남편이잖아' 하는 대화가 들렸어요. 연기자로서 내 이름을 듣고 싶은 욕심이 계속 있었죠. 홍조가 비중이 작지 않아 제작진이 저를 선택하신 게 굉장한 모험이셨을 겁니다. 홍조를 연기하면서 누가 되지 않았으면 하고 조금씩 제 이름을 찾아가고 싶어요."
연기 인생 10년차에 '사랑과 야망'을 시작하면서 따로 3개월간 연기도 배웠다. 방송계의 지인도 '그냥 연기자로 남거나 전환점이 되는 기회일 것'이라며 용기를 북돋웠다.
결국 전노민은 기회를 잡았다. "이제 전노민이라고 불러주겠다"는 농담을 건네는 사람이 있을 만큼 이름으로 자연스럽게 얼굴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을 스스로 실감한다.
드라마도 시청률 20%대를 돌파하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80회로 30회가 연장돼 앞으로도 갈 길이 멀고 손 안 닿는 데가 없는 홍조 캐릭터 때문에 여기저기 야외 촬영이 많아 힘들지만 전노민에게 지금만큼 즐거운 때가 없는 것 같다.
"홍조가 27살로 시작해서 이제 제 나이대까지 왔어요. 앞으로 나이 든 연기를 하기 위해서 비슷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몸놀림을 유심히 보고 배우고 있습니다. 성격이나 생활도 홍조와 비슷하게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무엇보다 초심을 잊지 않도록 더더욱 노력해야겠죠."
이제 비로소 자신의 꿈을 제대로 펼치게 된 전노민의 행보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도 좋을 듯하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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