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 대 유학자 겸 경세가였던 율곡 이이 선생(1536~1584) 학문연구소인 파주시 파평면 소재 ‘화석정(花石亭)’이 기화요초(奇花妖草)와 괴석이 존재했던 별서원림(別墅園林) 이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현재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61호인 ‘화석정’은 지난 1966년 복원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花石亭’이 정문 현판으로 걸려 있는 등 엉터리 복원됐다는 지적(본보 2월19일자 12면)을 받고 있다.
차문성 파주문화원향토사연구소장은 14일 ‘화석정의 역사ㆍ문화적 가치와 활용방안연구’논문에서 “화석정은 단순 정자가 아닌 별서원림으로써 문화적 가치가 높다”며 별서원림 개념을 처음 제기 했다. 별서원림은 담양 소쇄원처럼 집에서 일정한 거리에 있는 별장으로 담장안의 내부공간만이 아닌 외부경관까지 감상대상으로 삼았다. 차 소장은 이 논문으로 지난 10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제2회 한국박물관학회 현상논문공모전에서 최우수상 없는 우수상을 수상했다.
차 소장은 화석정이 별서원림이었다는 것을 <이의무>의 ‘화석정부병서’와 율곡 이이의 증조부 <이의석>의 ‘묘표음기’에 기록된 ‘별서’를 근거로 삼았다.
그는 “ 서거정의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파주 화석정은 사시로 붉고 흰 꽃 가득하고(기화요초ㆍ옥같이 고운 풀에 핀, 구슬같이 아름다운 꽃), 정자앞엔 물이 유유히 흘렀다. 흥나면 작은 배 띄워 물결을 가로 지른다 등 자연ㆍ인공의 차경요소를 엿볼 수 있다”면서 “ 임진강가에서 구한 괴석도 심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18세기 <이덕무>의 시문집인 ‘ 아정유고’를 보면 화석정 벽에는 송강 정철, 문곡 김수향은 물론 명나라 칙사인 황홍헌, 왕경민의 글과 서거정의 시, 송시열, 박세채 시문이 걸려 있었다”며 “노산 이은상 선생이 1934년 ‘적벽유’를 기록하면서 이를 확인했다. 화석정은 당대 문인들의 시ㆍ기판이 있는 현판 박물관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특히 “화석정은 율곡 이이의 5대 조부인 이명신이 지었는데 임진왜란 중 불에 타 없어진 후 증손인 이후방ㆍ이후지에 의해 1673년 복원됐다 6ㆍ25전쟁 때 다시 소실되는 등 무려 270여 년 동안 유지 됐었다. 이를 기록한 <윤증>의 ‘명제연보’에는 화석정은 정면 세칸, 측면두칸의 판장문(널빤지로 만들어 달아 놓은 문)을 설치했다”면서 “잠을 잘 정도로 방도 있었다. 원래 정문현판은 지금의 반대편인 임진강 방향이었다”고 말했다.
차문성 소장은 “화석정은 1673년 모습으로 복원해야 한다. 현 건물의 정면을 임진강방향으로 옮기고 별서원림, 기화요초 개념을 도입해 복원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파주=김요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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