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정명 1000년, 경기문화유산서 찾다] 40. 에필로그
[경기정명 1000년, 경기문화유산서 찾다] 40. 에필로그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대부터 현재까지 경기도는 ‘민족의 심장’이었다

천년 경기, 그 장엄한 한해가 마무리 되고 있다. 1018년 시작된 경기가 2018년을 맞아 경기 천년의 역사문화적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며 한 해를 시작했는데, 어느덧 1년여의 시간을 흘러갔다.

그렇다면 우리는 경기의 이름과 정체성이 드러난 지 천년이 되는 올해 경기의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하였는가? 그간 우리는 천년의 역사만이 아닌 경기로 이름 지어진 땅위에 존재하는 수많은 문화유산 중 우리 역사 속에서 최고의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을 찾았다. 그리고 이 문화유산의 숨결을 느끼고, 그 문화유산을 기반으로 한발 한발 나아간 역사의 발전을 되새겨 보았다.

그리고 우리는 이 문화유산을 통해 경기 천년의 의미를 찾아냈다. 그 결과 우리는 매우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1018년에 처음 경기제도가 만들어지면서 현재의 경기지역이 한반도 중심부에 설정되며 우리 역사발전의 중추가 되었다는 평범한 듯 하지만 비범한 진실이었다. 경기지역의 문화유산은 동시대 최고의 문화 산물일 수 밖에 없고, 이 문화 산물은 오늘날 우리 경기지역의 도민들에게 상당한 자부를 가져다주는 것이다.

경기도는 고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지였다. 더불어 시대의 격변기마다 정치변동을 해결하는 주역의 터전이었다. 특히 경기도는 한강을 중심으로 고대국가가 수립되었고, 이후 삼국간의 통일국가를 만들기 위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이와 같은 경기도의 지리적 특성으로 인하여 다양한 인물들의 탄생과 성장이 이어졌고 이를 통해 시대를 주도하는 사상이 태동되었다.

경기도가 국가의 중심지이기에 전국 각지의 인물들이 모여들어 지역의 특성들이 합쳐지면서 포용과 융합의 문화가 나타나고 소통이 자유로운 정체성을 지니게 되었다. 또한 역사속에서 외세의 침입시에도 경기지역 백성들의 헌신적 희생과 투쟁으로 국난을 극복했으며 일제강점에 대한 항거 역시 경기지역이 가장 활발했다. 그리고 해방 이후에도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중심으로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기여하였다. 그래서 경기천년은 이제 단순히 경기도가 천년이 되었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의 미래 천년을 경기도가 이끌어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시금 말하지만 우리나라 역사는 곧 경기도의 역사와 함께 했고, 경기도는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의 핵심이었다.

■ 경기의 인물이 시대의 사상을 만들어 내다
경기지역은 최고의 문화유산이 만들어지는 것만이 아니라 최고의 인물도 태어나게 했다. 경기지역의 대표적 인물인 황희는 성리학을 실학으로 인식하고 세종대 실용적 경세사상을 보여주었다. 그의 경세사상의 핵심이 ‘인권존중과 민본의식, 개혁을 통한 백성의 불편과 고통 해소’를 목표로 하고 있음과 더불어 구체적인 경세 정책으로는 ‘기강 확립 방안, 치안과 국방강화책, 빈민구제책, 교육정책, 언론과 여론 중시’의 5가지 측면으로 나타났다.

황희와 같은 파주 지역 출신인 율곡 이이 역시 실학을 추구한 인물이었다. 율곡은 경세학을 추구한 인물로 실천이 수반되지 않으면 학문과 지식은 의미가 없다고 보았다. 학문은 실천적으로 현실에 적용이 되어야 그 존립 기반이 확보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이처럼 이이는 성리학 전성기와 실학의 맹아기에 위치하여 성리학을 하면서도 실학적 사유에 앞장섰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경기지역의 실학과 개방성을 주도한 인물은 성호(星湖) 이익(李瀷)이다. 성호는 퇴계를 사숙하고 이기론이나 예학 등에도 상당한 조예를 가졌지만 그의 학문적 관심은 사회제도의 개선에 있었다. 정약용은 실학의 완성자라고 불리울 정도로 경기지역의 대표적 실학자이다. 그는 일찍부터 성호를 사숙하면서 가학으로 토목학, 건축학, 상수학 등 다양한 학문을 익혔다. 이러한 학문적 기반이 그를 실학자로 성장시킬 수 있었고, 정조시대 한강의 주교(舟橋) 설치와 화성 설계 등 개혁추진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이와같이 경기지역은 조선 유학의 기틀이 만들어진 곳이기에 그 사상의 맥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역사를 갖고 있기 때문에 경기지역에서는 유교의 문화 산물이 대대적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우리 역사 최고의 유교유산이 태동되었다. 포은 정몽주를 배향하는 용인의 충렬서원, 정암 조광조를 배향하는 용인의 심곡서원, 율곡 이이를 배향하는 파주의 자운서원, 오산의 궐리사는 조선 최고의 유교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경기지역의 최고 문화유산은 단연코 조선왕릉이다. 조선왕릉은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만큼 이미 국제적으로 인정된 최고의 문화유산이다. 600년간 지속되어 온 제례문화와 풍수적 가치를 두고 만든 왕릉의 조건 그리고 이를 기록한 의궤 등이 바로 조선왕릉이 우리 역사만이 아닌 세계역사에서도 인정받는 최고의 문화유산이 될 수 있었던 기반이다.

여기에 더해 정조시대 개혁의 상징인 수원 화성이 존재한다. 정조는 화성을 통해 새로운 나라를 만들려고 하였다. 화성을 기반으로 추진했던 정조의 개혁을 우리는 근대화의 시작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 경기 천년의 지속 이유는 무엇일까?
경기도가 천년을 역사와 문화의 중심으로 지속 가능했던 특별한 이유가 무엇일까? 이는 당연히 한반도의 중심에 있으면서 한강과 임진강 등의 큰 강을 이용한 교통로와 대로를 통한 교류가 이루어진 것이 대표적이다. 이와 더불어 개방성, 창조성, 혁신성, 실용성 등이 항상 존재하였기 때문에 경기도가 천년만이 아니라 민족의 태동부터 오늘날까지 한반도의 중심인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경기지역은 한반도의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으면서도 그 동안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해왔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중앙에 수도 서울이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며, 경기도만의 독자적인 발전계획을 수립하지 못한 채 수도권이라는 이름아래 ‘주변’으로 인식되어 왔던 것이다. 특히 개발제한구역, 수도권 정비계획, 군사시설 보호구역, 상수원 대책지역 등 여러 가지 규제로 인하여 대부분 지역의 개발이 제한됨으로써 경기지역의 잠재력이 온전히 발휘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는 우리 민족을 지켜왔다. 경기도는 지리적 위치로 인하여 외세 침입이 많이 존재하였다. 하지만 경기도민의 자주성으로 인하여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는데 가장 중심적 역할을 하였다. 몽고 침입시 용인 처인성과 안성의 죽주 전투에서 승리하여 위기를 극복하였고, 임진왜란 당시 고양 덕양산에서 행주대첩으로 일본군으로부터 한양도성을 탈환 하였다. 임진왜란 당시만 자주성을 보인 것이 아니다. 병자호란 당시에 수원과 용인의 광교산에서 김준룡 장군의 승리가 있었다. 관군의 역할과 이 일대 백성들의 공동의 노력에 의한 결과였다.

일본에 의해 나라를 강탈당할 때 가장 격렬하게 항쟁한 곳이 바로 경기도였다. 이천수창의소를 중심으로 전국 13도 의병대가 조직되었고, 그 사령부가 바로 이천이었다. 경기지역을 중심으로 전국 의병이 조직되어 일본과 투쟁한 것이다.

■ 경기 천년 이후의 천년 경기의 미래
경기는 우리 역사의 진보와 개혁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1608년(광해군 즉위년)에 우리 역사상 최고의 개혁이라고 이야기하는 ‘대동법(大同法)’이 경기도에서 처음으로 실시되었다. 그리고 1791년(정조 15) 모든 백성들이 자유롭게 상업행위를 할 수 있는 개혁인 신해통공(辛亥通共)이 경기도에서 성공하여 전국으로 보급할 수 있었다. 이처럼 경기도는 오랜 역사속에서 위민정책을 실현하기 위한 혁신의 터전이었다. 이러한 혁신의 정신과 실천을 새로운 경기 천년에서 지속적으로 계승하여야 할 것이다.

삼국시대 세계와의 교역 중심지가 오늘날 경기도 화성시의 당성(唐城)이었고, 고려시대에 전 세계 최고의 무역기지가 개성의 벽란도였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도 개성과 수원 그리고 안성은 국내 최고의 상업도시이기도 했다. 이와 같은 경기도의 역사성과 실용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문화콘텐츠와 경제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 경제 활성화를 막는 규제를 과감히 철폐하고 세계인과 교류해야 한다.

세계의 주도권은 대서양에서 태평양 지역으로 옮겨오고 있어 21세기는 ‘태평양시대’가 될 것이다. 특히 한?중?일로 대표되는 동북아시아는 국제적 교류관계에 있어 지정학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동북아 경제권‘의 중심에 있으며, 그 핵심역할을 담당할 곳이 바로 경기도 지역이라 할 수 있다.

더불어 경기지역은 지정학적으로 한반도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어 남북 화해만이 아닌 남북통일이 된 후에도 여전히 한민족 역사의 중심무대일 수밖에 없어 그 중요성이 크다고 하겠다. 이를 위해 경기도의 정체성을 더욱 세밀하게 연구하고 보급하며, 이를 계승하는 문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경기 천년 이후 도 다른 천년 경기의 미래를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 세계가 우리 경기를 기다리고 있다.

김준혁(한신대학교 정조교양대학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