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인천] 인천문화양조장의 시작을 기대하며

동인천역에서 도원역 방향으로 걷다 보면 상가지역이 침체한 중앙시장 거리가 나온다. 문을 닫은 상가거리를 지나면 배다리라고 불리는 지역이 나오는데 역시 배다리도 침체한 거리에 속한다.

배다리에 대한 설은 명확하게 정리되어 있지 않다. 1983년 인천항(옛명칭, 제물포항)이 개항된 이후 배가 오가며 배다리 지역까지 활발하게 드나들었다는 설과 배들로 임시 다리를 형성하여 사람들이 오갔다는 설들로 나뉘게 된다. 이후 동인천역 부근을 메워 시가지를 형성하였기에 배다리 지역이 거리로 형성되었다.

배다리를 걷다 보면 문 열고 영업하는 상가보다 문을 닫은 상가들이 더 많아 보인다. 다행히 침체기를 견뎌내며 운영하는 헌책방들이 아직도 남아 있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뭉클해진다. 책값이 부족할 때 배다리에서 헌책을 사 읽고 지식을 쌓던 시절들의 기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배다리 헌책방 거리를 기억의 장소라고도 말하는 것이다.

배다리의 거리를 좀 더 걷다 보면 오래된 낡은 건물의 입구에 설치된 깡통로봇과 만나게 된다. 이 건물이 1920년대 건립되었던 인천양조장이다. 인천양조장은 막걸리를 제조하며 판매했는데, 1970년대 부평구 청천동으로 이전하면서 배다리의 인천양조장 건물은 공간으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배다리의 역사와 문화라는 장소가 한순간에 휩쓸려 나갈 뻔했다. 소위 배다리 관통도로 개설이라는 명목으로 인천시가 배다리 지역의 중간으로 도로 계획을 추진한 것이다. 역사와 문화가 부재한 도시공학의 결과로 배다리 마을의 중간이 도로계획으로 철거돼 볼썽사납게 변한 것이다. 문화와 지역의 공동체에 관심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배다리 관통도로를 반대하며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는데, 이들 중 일부가 배다리 지역의 비어 있는 공간들을 찾아 입주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지역의 현안에 참여하며 역사와 문화를 되살리기 위한 행동의 하나로 배다리를 살리기 위한 행동에 집중했다. 이들이 모이고 논의하고 다양한 준비들을 할 수 있던 장소가 인천양조장 건물이었는데, 이 건물은 대안미술운동을 추구하는 스페이스빔이 입주하며 임대한 것이다.

양조장은 재료를 가지고 시간과 과정을 거치며 술을 빚어내는 공간을 말한다. 그 과정과 재료들은 단 한 순간에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역사 속에서 경험이 축적된 결과로 술을 빚어낼 수 있고, 인천양조장은 그러한 결과를 토대로 술을 빚어낼 수 있었다.

문화는 단시간 내에 특정분야의 사람들만으로 좋은 문화를 탄생시킬 수 없다. 개방성을 토대로 충분한 시간을 갖고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논의하고 협력할 때 생명력이 긴 새로운 문화가 탄생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술을 빚어내던 인천양조장의 공간을 다양한 단체와 사람들이 함께 사용하며 문화를 빚어낼 수 있도록, 인천문화양조장이라는 이름으로 개방하는 것은 공간적 개념을 넘어 역사와 문화의 미래가치라 볼 수 있다.

그래서 과거와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철학이 부재한 도시공학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모인 공간 인천문화양조장의 시작은 미래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기대를 하게 한다.

곽경전 前 부평구문화재단 기획경영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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