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저물어가는 연말을 앞두고 세시행사인 동지(冬至)와 기독교의 대표 축일인 크리스마스가 이어진다. 동북아 농경문화의 세시절인 동지와 서양의 축일인 크리스마스는 담고 있는 내용이나 역사적 배경은 다르지만 한해를 마감하는 시점에 위치해 있고 달을 중심으로 한 음력(陰曆)의 영향을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동지는 정월의 입춘에서 시작한 24절기 중 22번째 절기로 낮이 가장 짧고 밤은 제일 길다. 동지를 지나며 다시 낮의 길이가 길어지며 태양이 부활한다 하여 동지를 아세(亞歲) 즉 작은 설이라 부를 정도로 전통 농경사회에서는 중요한 세시풍속으로 삼았다.
동지에는 다양한 풍속이 있었는바, 궁중에서는 동지책력(冬至冊曆)이라고 신하들에게 새해 달력을 나눠주는 풍속이 있었으며 만조백관이 모여 임금께 동지 인사를 나누고 연회를 베푸는 동지조하(冬至朝賀) 의례와 중국에 동지사(冬至使)를 보내 외교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민간에서는 동짓날에는 팥죽을 쑤어 먹는 것이 가장 보편적인 풍속이었다.
팥죽은 먼저 사당에 올려 조상님들께 천신(薦新)한 다음 마루, 광, 헛간, 장독대, 우물 등에 한 그릇씩 놓으며 팥죽을 그릇에 담아 들고 다니면서 대문, 벽에 뿌리고 난 후에야 비로소 가족들이 먹었다.
이렇게 하면 액이나 질병이 없어지고 잡귀가 근접하지 못하고 사라진다고 믿었으며, 동짓날 뱀 사(蛇)자를 써서 부적으로 거꾸로 붙여 두면 악귀가 집안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믿었다.
또한 밤이 길다 보니 사랑방에 모여 이야기책을 읽거나 윷놀이, 종경도 놀이 등을 즐기고 새끼를 꼬거나 새해 농사에 쓸 농기구를 손보기도 했다. 이처럼 겨울의 중심에 있는 동지는 한 해를 마무리하며 새로운 한해를 준비하는 휴식과 정중동의 시간이었다.
연말이 다가오면 거리에는 구세군 자선 냄비가 설치되고 사랑의 열매 온도탑이 설치되어 십시일반(十匙一飯) 온정을 모아 소외된 이웃을 도와주고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이런 기부와 나눔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국민들의 비율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한다.
복지와 사회 안전망은 국가나 자치단체 등 공적 영역에서 먼저 해결해야 할 부분이지만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에 대해서는 기부와 나눔을 통한 보살핌이 필요하다.
며칠 전 언론을 통해 보니 이름 없는 익명의 독지가가 적지 않은 금액을 익명으로 기부하며 내년 연말에 또 보자는 메모를 남겼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 곁에는 남모르게 자선과 나눔을 실천하는 작은 천사들이 있어 아직은 희망을 가질 수 있다.
말 그대로 다사다난했던 한해가 지나고 있다. 세계적인 경기침체의 여파로 우리 경제 역시 저성장을 겪고 있고 이에 따라 서민경제는 위축되었고 서민들의 삶은 팍팍하기만 하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팥죽을 나누고 김장김치를 나누며 이웃을 배려하던 전통사회의 아름다운 미덕을 되살려 소외된 이웃과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 관심을 가져야겠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내 곁을 돌아보고 작은 기부를 할 수 있는 방범을 생각해봐야겠다. 직장 송년 회식비를 아껴 함께 기부할 수도 있고, 크리스마스 선물비를 아껴 가족이나 연인이 함께 이웃 사랑에 참여하는 방법도 있을 것 같다. 말보다 실천이라고 나부터 시작하자는 다짐을 한다.
(이 글의 내용 중 일부는 한국문화재재단의 ‘위대한 문화유산’을 참고했음을 밝힌다.)
한덕택 남산골한옥마을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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