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기해년(己亥年)의 새해가 밝았다. 특히 올해는 돼지의 긍정적인 힘이 무한대로 발현되는 ‘황금돼지의 해’라고들 한다.
사람들은 흔히 ‘돼지’라는 동물을 다산과 재물, 복과 연관 짓는 등 풍요로움의 대명사로 인식한다. 지극히 상징적이긴 해도 말이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돼지의 전 부위를 섭취한다. 한 마리의 돼지는 그렇게 삼겹살과 족발, 돼지머리, 순대, 부속고기 등으로 대표되는 음식물로 산화된다. 성선설, 성악설 등을 논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필요’라는 명분을 내세워 잔인함 또는 잔혹함 마저도 때론 합리화 시키곤 한다.
▶또 다른 면도 있다. 12년에 한번 그렇게도 돼지에게 수많은 미사여구를 사용해 훌륭함을 내세워 칭송하면서도 여전히 돼지를 탐욕과 게으름, 지저분함과 연결 짓는다. 그런데 그런 좋지 않은 모습들 마저도 사람들이 필요에 의해, 그렇게 키워 온 과정에서 나온 ‘파생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더 많은 돼지를 내다 팔기 위해 좁은 막사에, 위생은 뒷전인 상황에서 연출된 불명예가 꼬리표처럼 돼지에겐 숙명이 되고 마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선 적어도 행정가를 꿈꾸는 정치인은 유명세를 타지 말아야 한다. 유권자들의 인식은 성숙해 있는데도,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는 상황에서 유명세를 탄 정치인에게 불명예스러운 족쇄를 먼저 채우려 한다. 결국 화살은 그런 정치인을 뽑은 유권자들에게 되돌아오고, ‘유권자는 바보다’라는 명제로 귀결시킨다. 그런데 그렇게 뽑힌 정치인이 일을 엄청 잘한다면? 혁명적인 수준에서 국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영향을 미친다면? 그래도 안된다. 이미 미사여구로 칭송하면서도 돼지의 불명예를 꼬리표처럼 달았기 때문이다.
▶국외로 눈을 돌려보면 그 나라 국민들은 자신들이 뽑은 정치인의 사생활에 지극히 관심을 갖지 않는다. 왜? ‘개인사’이니까 말이다. ‘No Way’ 인 것이다. 그런데 일과 연관됐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폭동 수준까지 들고 일어나 결국 투표로 응징한다.
우리는 일 잘하는 행정가를 원한다. 돼지가 주는 ‘풍요로움’을 얻고 싶다면 적어도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양면성인 ‘불명예’는 훌훌 털어 버리자. 그러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김규태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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