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실패해도 좋다”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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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명성을 가진 휴렛팩거드(HP),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의 기업은 모두 실리콘밸리의 ‘차고(車庫·garage)’에서 탄생했다. 반짝이는 아이디어 하나만 들고 안정적인 학교와 직장을 박차고 나온 젊은 창업자들이 사무실 비용이라도 아껴보자는 마음으로 차고에서 사업을 시작했던 것이다. 차고 창업은 사업화 전까지는 각종 규제와 세금을 피할 수 있다. 무엇보다 실패에 대한 부담 없이 마음껏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다. 글로벌 기업의 창업자들은 혁신적 기술과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기존 통념에 얽매이지 않고 실패를 성공의 자양분으로 축적했다. 아마존 최고경영자 제프 베조스는 “실패와 혁신은 쌍둥이”라고 말했다.

최근 어느 때보다 혁신에 목마른 한국 대기업들이 실리콘밸리의 ‘차고 정신’을 강조하며 사내벤처 육성을 적극 장려하고 있다. 사실상 성장 한계에 다다르자 1990년대 말 사내벤처로 대기업에서 독립해 성공한 네이버나 인터파크 같은 제2의 벤처 신화를 만들어 보자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통해 새로운 사업 분야를 찾고 일자리도 늘리자는 취지다.

SK하이닉스가 지난 17일 이천 본사에서 사내벤처 프로그램 ‘하이개라지(HiGarage)’ 출범식을 가졌다. 유명 IT 기업들이 차고에서 창업했던 것에 착안해 ‘하이개라지’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들의 창의와 도전 정신을 본받자는 의미가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이 프로그램은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임직원이 기존 업무에서 벗어나 최대 2년간 창업이나 사내 사업화 준비에 몰두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지난해 8월 공모 이래 하이개라지에는 240여 건의 아이디어가 접수됐고, 이중 6건의 사업화 지원이 결정됐다. 회사 측은 임직원들이 이 프로그램에 과감히 지원할 수 있도록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실패해도 좋다”는 것이다. 사업화에 실패해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 인사상 불이익도 없다. 본인이 희망하면 기존 조직으로 복귀할 수도 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최태원 SK 회장이 며칠 전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기업인과의 대화에서 “혁신성장을 위해 도전으로 인한 실패를 용납하는 법을 적용하거나 규제를 완화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는데 같은 맥락이다. 최 회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혁신할 때는 무조건 실패한다. 혁신은 실패를 먹고 자란다. 실패를 해도 좋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말해왔다. “실패해도 좋다”는 SK하이닉스의 벤처 실험, 실패를 통한 혁신이 혁신적 창업 생태계 조성에 기여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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