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가마쿠라와 스토리텔링

도쿄 여행자 중 인근의 가마쿠라(鎌倉)를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가마쿠라는 도쿄 남서쪽의 해안 지역으로 역사적으로는 일본 막부정치의 발원지여서 많은 신사와 사찰을 가진 관광. 휴양도시이다. 또한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가마쿠라 대불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에는 고레에다 히로카츠(是枝裕和) 감독이 만든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촬영지로 더 유명해진 곳이다.

2015년 국내에서도 개봉된 이 영화는 15년 전 바람나 집을 나간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그간 모르고 지냈던 이복 여동생을 만난 세 자매가 동생을 가족으로 받아들여 동고동락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증오심을 사랑으로 치유해가는 이야기이다. 이 영화는 주로 가족을 소재로 삼는 감독 특유의 감성을 통해 가족의 진정한 의미를 소환하며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다. 관광객들은 에노선이란 시골 기차를 타고 영화의 배경이 된 이곳저곳을 찾아 나선다.

주인공들이 단골로 가던 요시노 식당에서의 쉬라스동(찐 잔멸치 덮밥)을 먹어보기도 하고, 네 자매가 아버지를 추억하며 함께 올랐던 기누바이산을 찾아 오르기도 하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인 해변을 거닐기도 하면서 영화가 보여준 삶의 의미들을 반추한다. 뿐만 아니라 이 지역은 만화가인 이노우에 다케이코(井上雄彦)의 <슬램덩크>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애니메이션 <슬램덩크>의 첫 장면의 배경인 ‘가마쿠라고등학교앞’ 역 건널목은 강백호의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는 유명한 포토존으로 관광객들의 성지가 되었다. 이런저런 연유로 카마쿠라 여행의 필수 수단인 전차 에노덴은 비수기에도 국내외 관광객들로 만원을 이루고 조용한 시골마을은 활기가 넘친다. 이곳은 객관적으로 보면 그저 평범한 바닷가 시골마을에 불과하다. 조금 색다른 풍경이 있다면 에노시마라는 섬이 있어 밋밋한 해변 풍경에 변화를 주고 있을 뿐. 하지만 장소에 이야기가 결부되면서 장소의 가치와 의미는 전혀 달라졌다.

우리의 ‘도시재생’이니 ‘마을 만들기’가 하나의 사회적 이슈가 된 지 이미 오래다. 최근 정부의 도시재생 뉴딜 정책의 비중도 높아지고 있다. 최근 한 정치인이 목포의 쇠락한 거리를 전통 문화적 요소를 도입하여 재생시키고자 한 사건을 계기로 도시재생은 전국민의 관심사가 되었다. 일반적으로 이 개념은 2.3차 산업 쇠퇴의 여파로 인구가 빠져나가 쇠락해진 원도심 지역을 살리기 위해 개발보다는 역사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새롭게 활기를 불어넣기 위한 시도이다. 이를 위해 원도심 특색을 살린 문화공간 조성이나 벽화제작, 공공조형물의 구축 등의 정책을 추구한다. 과거와 달리 개발논리에 급급하지 않고 기존의 여건을 최대한 유지하며 새롭게 변화시키려는 정책적 변화는 바람직한 방향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도시재생이나 마을 만들기조차도 유형화되고 획일화될 수 있는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음을 간과해선 곤란하다. 이러한 정책이 자칫 유사한 벽화마을을 양산해내거나 커피숍만 늘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시는 생물체와 같이 쉼 없이 변화하는 것이어서 작위적으로 급격하게 무엇인가를 조성하려 할 때 늘 기형이 탄생한다. 그 공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가치를 중시하여 정책은 그 삶이 좀 더 자유롭고 창의적인 의미를 가지도록 조력하는 수준에 그쳐야 한다는 것이다. 외부로부터의 물리적인 환경변화나 작위적인 공간의 조성은 단기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몰라도 본래의 공간이 가진 정신적 가치를 높일 수는 없다. 물리적 개발보다는 장소와 공간에 스토리를 덧입히는 작업이 몇 십 배의 효과를 가진다. 우리의 도시재생이나 마을 만들기의 전략을 물리적 조성에서 스토리를 결부시킨 의미의 구축으로 바꿔보면 어떨까? 우리가 사는 마을에 작은 이야기들을 개발해 내는 것이다. 스토리텔링이 결여된 가마쿠라(鎌倉)였다면 그곳은 여전히 무명의 바닷가 시골마을로 남아있었을 것이다.

김찬동 수원시립미술관사업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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